사림정치의 권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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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림정치의 권력구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치라고 하는데, 왕은 여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쪽의 피혐이 다른 쪽의 피혐을 불러오거나 출사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거듭 피혐하는 경우가 많아 분란이 점점 커지곤 하였다. 이런 이유로 최명길은 삼사의 피혐을 없애고 그 처리도 왕이 직접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공론의 수렴을 위한 공개적인 비판과 합의과정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의 표현으로 최명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인조대부터 내려온 공신세력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심사와 더불어 낭관들 역시 비판을 받는데 선조대 李珥, 인조대 최명길의 주도로 자천제가 잠시나마 혁파되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있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이는 낭관권이 관행으로 유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훈신권신의 위협 속에서도 유지될 정도로 강인한 논리적 타당성과 강인한 유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위와 같은 문제 제기는 이를 바탕으로 한 붕당 정국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된 것으로 국왕들 역시 붕당을 문제 삼았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것이 왕의 정치적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붕당은 공론을 통하여 정치 참여 층을 재야 사림까지 확대하는 정치 운영 방식이었으므로 이전 방식보다 긍적적인 영향이 많아 17세기까지 붕당을 통한 정국운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언관권과 낭관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18세기 당파 간 정치보복과 대립이 극단적 방향으로 흐르면서 그 긍정적 기능이 희미해져 새로운 차원의 정치 운영방식이 요구되었다. 이것은 영조 중반부터의 탕평 정치와 순조 즉위부터 세도정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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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7.09.08
  • 저작시기201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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