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문화 공통)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공복제도에 대해 설명하시오 (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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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복식문화 공통)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공복제도에 대해 설명하시오 (공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공복제도란

2. 고구려 공복제도
1) 공복제도 및 공복의 품목
(1) 고구려의 공복제도
(2) 공복의 품목
2) 공복의 변천
(1) 고려초기, 중기 공복제도
(2) 고려후기 공복제도
3) 고구려 공복제도의 의미

3. 백제 공복제도
1) 공복제도 및 공복의 품목
(1) 백제의 공복제도
(2) 공복의 품목
2) 공복의 변천
3) 백제 공복제도의 의미

4. 신라 공복제도
1) 공복제도 및 공복의 품목
(1) 신라의 공복제도
(2) 공복의 품목
2) 공복의 변천
3) 신라 공복제도의 의미

5. 고려 공복제도
1) 공복제도 및 공복의 품목
(1) 고려의 공복제도
(2) 공복의 품목
2) 공복의 변천
(1) 고려 초기 공복제도
(2) 자․단․비․록 4색 공복제도 시행 시기
3) 고려 공복제도의 의미
(1) 단(丹)의 의미
(2) 단삼층의 의미

6.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후에서 성종 14년 사이에 중간단계인 단색이 제외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3) 고려 공복제도의 의미
공복제도가 공로에 대한 보상체계로 사용되었다. 고려 초기 공복제도는 외형적으로는 관품과 관직에 의해 구분되었지만 ‘재능’이라는 기준에 의해서도 지급되었다. 전시과 제도의 ‘인품’이나 ‘재능’은 공로에 따라 권력자의 주관적인 판단 하에 평가되어졌다고 여겨지며, 공복을 기준으로 군(群)을 나누어 전시를 지급한 것은 공로에 대한 관리들의 경제적 보상체계를 마련한 것이라 생각된다. 공복은 외형적으로 관리의 공복을 나타내며 착용자의 신분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복제정은 율령반포 등의 체제안정장치를 통하여 왕권을 안정화시킨 후에 이루어지고 있다. 공복제도를 공포하여 관리들을 복색에 따라 세력군 별로 구분하고자 하였고, 공복 착용은 통치자에게 종속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여 고려 초기 공복제도는 통치자와 신하간의 종속적 관계를 강조하는 역할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에만 나타나는 단삼층은 왕의 명령과 이를 전달하고 수행하는 집단을 상징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여 고려초기는 호족연합정권 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특별히 왕권 강화에 필요한 집단을 구성하여 동원할 필요가 있었으며, 관료제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관료군을 묶을 필요가 있었다. 이들을 상징하는 복색으로 ‘단색’이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임금의 명령을 적은 문서를 단서(丹書)라 하고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자를 단필원이라고 하며, 임금을 축수하는 무용복에 단의(丹衣)가 등장하는 점 등 국왕과 관련되어 ‘단(丹)’의 글자가 사용된 예가 많을 점을 볼 때 ‘단’은 통치자와 연계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단(丹)의 의미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특이하게도 단색은 복색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단칠(丹漆)로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단색은 고려 초 공복에만 사용되었던 고려 초 특유의 복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순영1은 단(丹)을 3가지로 개념적 의미를 제시하였는데 광물성 재료인 단사(丹砂)로 염색한 색을 지칭했을 가능성, 단사(丹砂)의 선명한 붉은 빛깔을 차용한 색명이었을 가능성, 연단(鉛丹)의 주홍에 가까운 빛깔을 차용한 색명이었을 가능성을 두었다. 두 번째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았는데 비(緋)보다 서열이 높은 단(丹)이 염색효과가 그다지 우수하지 못한 광물성 재료로 염색되었을 가능성이 희박하게 보았다.
(2) 단삼층의 의미
《고려사(高麗史)》에 왕이 판결을 내리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단필원(丹筆員)이란 직무를 가진 집단이 등장하고 임금님의 분부를 단필(丹筆)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필원은 임금의 명을 받아 적는 역할을하는 관리로써 임금의 조서를 짓는 역할을 하는 한림학사의 직무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봉엄사(鳳巖寺) 정진대사원오탑비(靜眞大師圓悟塔碑) 비문의 필자인 이몽유는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이름 높은 인물로서 단금어대(丹金魚袋)를 사여 받았다. 그는 성종 2년 5년 6년 등 3회에 걸쳐 당시 과거 시행에서 지공거를 맡고 있어 관료로도 크게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 공복제도에서 단(丹)은 ‘자단비록’의 4색 중 한 가지 색으로서 외형적 의미를 갖는 동시에 왕권강화를 위한 역할을 맡은 인물군을 상징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6. 시사점
공복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조정에 나아갈 때 입는 예복(禮服) 즉 관원복(官員服)의 총칭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좁게는 공적 용도로 사용되는 백관의 집무복을 의미한다. 공복은 곡령대수복두대어대홀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기에 따라 형태변화가 나타난다. 광종대 제정된 백관의 공복제도는 자삼단삼비삼녹삼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衫)은 넓고 큰 창수(敞袖)가 있는 것이 포(袍)와는 다르며, 대수단의(大袖單衣)의 특징을 갖는 옷이라는 점에서 당시 공복은 소매통이 넓고 수구가 완전히 트여있는 형태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관복조에 ‘조정에서 입는 옷과 집에서 입는 옷이 송의 제도와 다른 것이 있으므로 관복도를 그린다’라고 하여 고려의 공복이 송의 제도와 어느 정도 다른 부분이 있었음을 적고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공복제도에 대해 설명해 보았다. 관인들의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공적 질서체계인 관계(官階)는 중앙의 관인들에게만 한정되어 수여되지 않고 성주(城主)장군(將軍) 등 지방의 호족들에게도 주어졌다. 이는 관계를 매개로 호족들을 포섭함으로써 자기의 세력범위를 확대하려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광종 대의 공복제도에서 자삼층은 원윤이상에게 사여되었는데 관계의 지급이 많아지면서 자삼층도 증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공로에 의해 차등을 두어 의복이나 곡식 등을 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태조 원년에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을 제1등으로 견권(堅權) 능식(能寔), 권신(權愼), 염상(廉湘), 김락(金樂), 연주(連珠), 마난(麻煖) 등은 제2등으로 하여 금은 그릇과 비단 침구와 능(綾), 백(帛) 등을 차등 있게 주고 제3등 2천여 명에게는 각각 용, 백, 곡식들을 차등 있게 주게 한 기록이나 양경군사로서 방어에서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옷을 차등 있게 지급한 예가 있다. 태조 23년 역분전의 급전(給田)기준에서, ‘관계(官階)를 논하지 않고 성행(性行)의 선악(善惡)과 공로(功勞)의 대소(大小)에 따라 지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종 또한 공로가 있는 자를 4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쌀을 하사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박가영 외(2017). 한국복식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김갑동(2005). 고려전기 정치사. 일지사.
김미자(1982). 우리나라 공복에 관한 연구. 복식.
김경자(1994). 한국복식문화의 원류. 민족문화사.
김주미(2010). 한민족과 해속의 삼족오. 학연문화사.
서병국(2011). 소중한 우리고구려. 서울국학술정보(주).
전호태(2000). 고구려고분벽화연구. 사계절.
채금석(2002). 현대복식미학. 경춘사.
이정훈(2007). 고려전기 정치제도 연구. 혜안.

키워드

공복제도,   공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공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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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9.19
  • 저작시기2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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