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혁명과 건설의 주인인 인민대중은 마땅히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인민 대중이 이런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탁월한 수령이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근본 요구와 이익을 반영한 혁명사상을 내놓고 그것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당을 창건하고, 그의 '혁명적 영도'를 실현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중에 의한 당의 영도는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영도이다. 당이 근로인민대중을 영도한다는 것은 결국 당 전체와 전체 근로대중을 수령의 테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묶어 세워 그들이 수령의 영도에 따라 조직적으로 투쟁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주체사상은 이처럼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당과 수령의 지도 아래 종속시킴으로써 내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다. 즉 주체성의 중심이 ‘인민대중’으로부터 ‘근로인민대중을 지도하는 당과 수령’으로 옮겨짐에 따라 오히려 ‘비주체사상’이 되어버린다. 결국 주체사상의 이 모순적 논리는 수령 1인에게 모든 결정을 내리도록 권한을 백지위임하는 개인독재의 정당화 논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김일성의 자기 정당화 논리를 제시하기 위해 1955년말에 등장한 ‘주체’라는 개념은 계속된 중·소 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책노선의 역할을 하다가 1967년 12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동등한 입장에서 ‘주체사상’으로 격상되었고,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는 당 지도이념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1980년대에 와서는 김정일에 의해 자신의 세습체제 정당화를 위하여 이를 더욱 격상시켜 ‘김일성주의’로 부르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을 골자로 하는 김일성주의는 현시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체적 입장과 방법론에 입각한 완전히 독창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5) 김정일 체제
1970년대에 들어와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확고해지자 김일성은 그의 장자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아 부자세습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실제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자 수업은 1973년 2월부터 착수된 ‘3대혁명 소조운동’의 책임을 맡은 데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당내 서열 또한 동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선출되면서 명실공히 김일성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갔다.
이어 김정일은 1974년 2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되어 권력기반이 확고히 조성되었다. 1980년 10월에 개최된 제6차 당대회를 통해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서열 4위), 당 정치국과 상무위원회 위원, 당 비서국 비서, 당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김일성의 후계자로서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제6차 당 대회 이후 북한 노동당의 지도체제가 김정일 중심으로 개편됨은 물론, 김정일은 북한의 주요 대외문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내정책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당 책임자이자 후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국 김정일은 1990년 5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확대 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군부를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1991년 12월 24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는 ‘조선인민국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또한 김정일은 1992년 4월 20일 ‘원수’칭호를 수여받은 이후, 1993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함을 가지고 유훈통치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였다. 우선 김일성 사망에 따른 과도기간 동안 군부를 중심축으로 후계정권을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군부대를 방문하는 등, 군의 저변을 장악하는데 역점을 두었으며 정치권 내에서 군부지도층의 권력 서열을 대폭 상승시켰다. 또한 체제의 정당성을 김일성의 ‘유훈통치’에 둠에 따라 김일성의 시신을 미이라로 처리하여 ‘금수산 기념궁전’에 안치하는 한편, 김일성 ‘영생탑’을 건설하고 ‘주체연호’와 ‘태양절’을 제정하였다.
4절. 맺음말
공산주의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고찰과 함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을 살펴보고 그것이 북한에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자본주의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소외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등장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어떻게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에 대한 고찰은 북한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시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서 북한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객관적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초래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상 체계의 이질성으로 말미암은 역사적 사실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사상체계의 이질성을 극복해야만 분단을 넘어 평화 공존과 번영의 길이 열릴 것이다.
사상 체계는 독단적인 체계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상의 융합, 종합을 통해서 이룩해 온 것임을 여기서 확인했다. 마르크스 사상의 체계 역시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에 영향을 받아 그 사상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것이었으며, 레닌 역시도 그 시대적 상황에 맞게 사상 체계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점은 종합적으로 융화될 수 없는 것일까? 그 융합의 지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주체사상의 회색지대는 없는 것인가? 그 회색지대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분단의 벽을 허물고 공존의 길을 여는 길이 아닐까?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 그 빈자리를 나 아닌 타인을 위한 자리로 양도하는 것에 조화가 있으며 이해의 길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각자의 사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공존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양도해주는 화해를 위한 사상의 접합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인민 대중이 이런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탁월한 수령이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근본 요구와 이익을 반영한 혁명사상을 내놓고 그것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당을 창건하고, 그의 '혁명적 영도'를 실현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중에 의한 당의 영도는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영도이다. 당이 근로인민대중을 영도한다는 것은 결국 당 전체와 전체 근로대중을 수령의 테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묶어 세워 그들이 수령의 영도에 따라 조직적으로 투쟁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주체사상은 이처럼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당과 수령의 지도 아래 종속시킴으로써 내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다. 즉 주체성의 중심이 ‘인민대중’으로부터 ‘근로인민대중을 지도하는 당과 수령’으로 옮겨짐에 따라 오히려 ‘비주체사상’이 되어버린다. 결국 주체사상의 이 모순적 논리는 수령 1인에게 모든 결정을 내리도록 권한을 백지위임하는 개인독재의 정당화 논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김일성의 자기 정당화 논리를 제시하기 위해 1955년말에 등장한 ‘주체’라는 개념은 계속된 중·소 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책노선의 역할을 하다가 1967년 12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동등한 입장에서 ‘주체사상’으로 격상되었고,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는 당 지도이념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1980년대에 와서는 김정일에 의해 자신의 세습체제 정당화를 위하여 이를 더욱 격상시켜 ‘김일성주의’로 부르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을 골자로 하는 김일성주의는 현시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체적 입장과 방법론에 입각한 완전히 독창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5) 김정일 체제
1970년대에 들어와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확고해지자 김일성은 그의 장자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아 부자세습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실제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자 수업은 1973년 2월부터 착수된 ‘3대혁명 소조운동’의 책임을 맡은 데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당내 서열 또한 동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선출되면서 명실공히 김일성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갔다.
이어 김정일은 1974년 2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되어 권력기반이 확고히 조성되었다. 1980년 10월에 개최된 제6차 당대회를 통해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서열 4위), 당 정치국과 상무위원회 위원, 당 비서국 비서, 당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김일성의 후계자로서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제6차 당 대회 이후 북한 노동당의 지도체제가 김정일 중심으로 개편됨은 물론, 김정일은 북한의 주요 대외문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내정책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당 책임자이자 후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국 김정일은 1990년 5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확대 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군부를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1991년 12월 24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는 ‘조선인민국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또한 김정일은 1992년 4월 20일 ‘원수’칭호를 수여받은 이후, 1993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함을 가지고 유훈통치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였다. 우선 김일성 사망에 따른 과도기간 동안 군부를 중심축으로 후계정권을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군부대를 방문하는 등, 군의 저변을 장악하는데 역점을 두었으며 정치권 내에서 군부지도층의 권력 서열을 대폭 상승시켰다. 또한 체제의 정당성을 김일성의 ‘유훈통치’에 둠에 따라 김일성의 시신을 미이라로 처리하여 ‘금수산 기념궁전’에 안치하는 한편, 김일성 ‘영생탑’을 건설하고 ‘주체연호’와 ‘태양절’을 제정하였다.
4절. 맺음말
공산주의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고찰과 함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을 살펴보고 그것이 북한에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자본주의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소외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등장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어떻게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에 대한 고찰은 북한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시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서 북한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객관적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초래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상 체계의 이질성으로 말미암은 역사적 사실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사상체계의 이질성을 극복해야만 분단을 넘어 평화 공존과 번영의 길이 열릴 것이다.
사상 체계는 독단적인 체계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상의 융합, 종합을 통해서 이룩해 온 것임을 여기서 확인했다. 마르크스 사상의 체계 역시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에 영향을 받아 그 사상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것이었으며, 레닌 역시도 그 시대적 상황에 맞게 사상 체계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점은 종합적으로 융화될 수 없는 것일까? 그 융합의 지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주체사상의 회색지대는 없는 것인가? 그 회색지대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분단의 벽을 허물고 공존의 길을 여는 길이 아닐까?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 그 빈자리를 나 아닌 타인을 위한 자리로 양도하는 것에 조화가 있으며 이해의 길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각자의 사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공존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양도해주는 화해를 위한 사상의 접합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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