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불교의 기원과 역사
2. 불교의 특징
3. 불교의 발달과정
- 생명에 대한 이해
- 인간에 대한 이해
- 탄생에 대한 이해
- 성장에 대한 이해
- 결혼에 대한 이해
- 고난에 대한 이해
-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해
Ⅲ . 결론
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
2. 적용
▷ 참고문헌
Ⅱ. 본론
1. 불교의 기원과 역사
2. 불교의 특징
3. 불교의 발달과정
- 생명에 대한 이해
- 인간에 대한 이해
- 탄생에 대한 이해
- 성장에 대한 이해
- 결혼에 대한 이해
- 고난에 대한 이해
-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해
Ⅲ . 결론
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
2. 적용
▷ 참고문헌
본문내용
을 비롯한 많은 약탈자들에게 먹거리로 사냥을 당한다. 축생계 위에는 아귀계가 있다. 인간 세계의 가장자리를 떠돌며 때때로 환영의 형태로 눈에 띌 수도 있는 불행한 영혼들이다. 그들은 지상에 대한 강한 집착력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아수라가 있다. 아수라에는 타이탄족이 있는데 이들은 격렬한 충동에 좌우되어 악마처럼 싸움을 좋아하는 족속들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그들은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정복을 끝없이 추구한다.
다음 단계에 인간계가 있다.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만 성취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환생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더 높고 많은 단계가 있으나 그 단계들에도 정신적 발전의 장애가 잠재되어 있다.
인간보다 높은 이상적인 낙원에서 신으로 환생하면 쉽게 만족하고 해탈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다. 대조적으로 인간의 존재 조건은 생의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을 기회 뿐 아니라 변덕스런 생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준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을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제공해 주는 ‘중도(中道)’로 여길 수 있다.
Ⅲ결론
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
기독교에서는 구원을 받은 마지막 표상이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고 있는데 비하여 불교에서는 열반이 구원자의 마지막 표상이 되고 있다 김익원, 『그리스도인이 본 불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9), p.125.
.
불교는 멸망의 인자를 고난에 두고 있으며 이 고난을 본성적으로 관계된 필연성으로 보는데 비하여 기독교는 멸망의 인자로 죄를 제시하는데, 이 죄의 본질은 필연성과 관계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소외시키고 격리시키고자 하는 잘못된 자유의지에 바탕하고 있는 점에서 불교와 그 개념을 달리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죄의 개념을 언제나 초월자와 관계짓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는 초월자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언제나 자아와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고난으로부터 자기를 격리시키고 초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신성시될 수 있는 수도자의 자세이지만 기독교에서 죄에서 해방되고, 죄와 상관없는 자아가 되기 위한 일체의 노력은 반대로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에 맞서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죄로 간주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난은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자아를 이루는데 기여한다는 기독교의 이해와는 뜻을 달리하고 있다. 불교에서 인간 그 자체는 운명적으로 멸망에 처해 있는 존재로서 현재만이 아닌 윤회속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 형태를 모두 포함한 전체적인 사슬에 묶여 있다. 더군다나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가 전생에 잘못된 업의 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은 멸망의 집합체로 보았다.
불교의 구원관의 특징
그리스도교 구원관의 특징
1. 철저하게 자력에 의한 구원이다.
하나님의 선재적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2. 너와의 관계성을 가지지 않으려는 의식이 강하다.
너와의 관계회복은 구원을 받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3. 단독적인 구원이다.
관계적 구원의 의미가 강하다.
4. 이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지정의의 기능 모두가 입체적으로 작용되는데서 가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높은 가치를 가진다.
5. 유의 의식에서 무의 의식으로 향한 행진이다.
불명료한 의식에서 보다 분명한 자아의식을 향한 행진이다.
6. 구원의 절정을 무차별의 세계에 둔다.
하나님과 구원받은 인간 영혼 간에 차별은 있으나 대립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세계는 아니다.
7. 자아가 부정된다.
자아가 분명해진다.
불교는 인간을 멸망과의 관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와의 역사적 전체성과 관련짓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한 인간에 관계되고 있는 멸망의 요인의 죄와의 관계에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만을 문제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이 하나님의 지배로부터 자기를 이탈시켜 자아의 욕망에 추종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단독자의 삶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유려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기독교는 이해하고 있다.
2. 적용
본 내용을 작성하면서 불교가 과연 종교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종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종교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 일부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들과 같이 조금은 허무맹랑하게 보일지언정 그들의 신을 모시고, 그들만의 신들에게 천지가 개벽할 만한 중량감을 느낄만한 요행은 아니더라도 개인의 안녕을 빌어 볼만큼의 종교성이라도 불교라는 종교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불교는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이 궁극적 존재와 동일시된다. 아울러 신과 만물이 차이가 없는 단일론이며 범신론이다. 불행한 사실은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함에도 많은 신들과 우상들을 섬기는데 이것은 결국 인간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종교성, 신 개념은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무신론이 결국에는 범신론, 다신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출발점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명령하는 기독교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비우는 것이 고행으로 가야만 하는 단계라는 사실에 답답함도 경험한다. 기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기에 늘 풍성함으로 결말지어지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불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선교를 위해서이다. 그들에 대한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기초로 그들을 포용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며, 결국 그 모든 과정들이 선교를 위한 궁극적 목적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만 할 것이다.
▷ 참고문헌
데미엔키언 『불교란 무엇인가』, (서울: 동문선, 1998)
김익원, 『그리스도인이 본 불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9)
서재생,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론』, (서울: 신애출판사, 1992)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서울: 사계절출판사, 1998)
대한불교 조계종 : http://www.buddhism.or.kr/
다음 단계에 인간계가 있다.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만 성취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환생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더 높고 많은 단계가 있으나 그 단계들에도 정신적 발전의 장애가 잠재되어 있다.
인간보다 높은 이상적인 낙원에서 신으로 환생하면 쉽게 만족하고 해탈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다. 대조적으로 인간의 존재 조건은 생의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을 기회 뿐 아니라 변덕스런 생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준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을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제공해 주는 ‘중도(中道)’로 여길 수 있다.
Ⅲ결론
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
기독교에서는 구원을 받은 마지막 표상이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고 있는데 비하여 불교에서는 열반이 구원자의 마지막 표상이 되고 있다 김익원, 『그리스도인이 본 불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9),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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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멸망의 인자를 고난에 두고 있으며 이 고난을 본성적으로 관계된 필연성으로 보는데 비하여 기독교는 멸망의 인자로 죄를 제시하는데, 이 죄의 본질은 필연성과 관계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소외시키고 격리시키고자 하는 잘못된 자유의지에 바탕하고 있는 점에서 불교와 그 개념을 달리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죄의 개념을 언제나 초월자와 관계짓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는 초월자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언제나 자아와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고난으로부터 자기를 격리시키고 초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신성시될 수 있는 수도자의 자세이지만 기독교에서 죄에서 해방되고, 죄와 상관없는 자아가 되기 위한 일체의 노력은 반대로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에 맞서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죄로 간주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난은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자아를 이루는데 기여한다는 기독교의 이해와는 뜻을 달리하고 있다. 불교에서 인간 그 자체는 운명적으로 멸망에 처해 있는 존재로서 현재만이 아닌 윤회속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 형태를 모두 포함한 전체적인 사슬에 묶여 있다. 더군다나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가 전생에 잘못된 업의 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은 멸망의 집합체로 보았다.
불교의 구원관의 특징
그리스도교 구원관의 특징
1. 철저하게 자력에 의한 구원이다.
하나님의 선재적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2. 너와의 관계성을 가지지 않으려는 의식이 강하다.
너와의 관계회복은 구원을 받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3. 단독적인 구원이다.
관계적 구원의 의미가 강하다.
4. 이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지정의의 기능 모두가 입체적으로 작용되는데서 가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높은 가치를 가진다.
5. 유의 의식에서 무의 의식으로 향한 행진이다.
불명료한 의식에서 보다 분명한 자아의식을 향한 행진이다.
6. 구원의 절정을 무차별의 세계에 둔다.
하나님과 구원받은 인간 영혼 간에 차별은 있으나 대립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세계는 아니다.
7. 자아가 부정된다.
자아가 분명해진다.
불교는 인간을 멸망과의 관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와의 역사적 전체성과 관련짓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한 인간에 관계되고 있는 멸망의 요인의 죄와의 관계에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만을 문제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이 하나님의 지배로부터 자기를 이탈시켜 자아의 욕망에 추종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단독자의 삶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유려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기독교는 이해하고 있다.
2. 적용
본 내용을 작성하면서 불교가 과연 종교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종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종교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 일부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들과 같이 조금은 허무맹랑하게 보일지언정 그들의 신을 모시고, 그들만의 신들에게 천지가 개벽할 만한 중량감을 느낄만한 요행은 아니더라도 개인의 안녕을 빌어 볼만큼의 종교성이라도 불교라는 종교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불교는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이 궁극적 존재와 동일시된다. 아울러 신과 만물이 차이가 없는 단일론이며 범신론이다. 불행한 사실은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함에도 많은 신들과 우상들을 섬기는데 이것은 결국 인간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종교성, 신 개념은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무신론이 결국에는 범신론, 다신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출발점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명령하는 기독교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비우는 것이 고행으로 가야만 하는 단계라는 사실에 답답함도 경험한다. 기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기에 늘 풍성함으로 결말지어지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불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선교를 위해서이다. 그들에 대한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기초로 그들을 포용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며, 결국 그 모든 과정들이 선교를 위한 궁극적 목적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만 할 것이다.
▷ 참고문헌
데미엔키언 『불교란 무엇인가』, (서울: 동문선, 1998)
김익원, 『그리스도인이 본 불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9)
서재생,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론』, (서울: 신애출판사, 1992)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서울: 사계절출판사, 1998)
대한불교 조계종 : http://www.buddhis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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