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기 전에
Ⅱ. 공리주의 이론
Ⅲ. 사례
Ⅳ. 교과서 적용
Ⅴ. 마치면서
Ⅱ. 공리주의 이론
Ⅲ. 사례
Ⅳ. 교과서 적용
Ⅴ. 마치면서
본문내용
아이들은 이 단원을 통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처럼 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가 되었다면,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어떤 방법으로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만장일치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럴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견을 고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 때 공리주의의‘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논리에 근거한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최대의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리주의 입장에서, 그리고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의 논리에서 이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서 소수의 가치를 당연히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만장일치가 되어서 ‘최대’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소수가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소수는 무시해도 좋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온 토끼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다수결에 의해 창고를 짓는 것으로 정해지는데, 그리하여 젊은 토끼들의 마을을 옮기자는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로 창고를 짓는 것이 더 옳은 일인지 마을을 옮기는 일이 더 옳은 일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다수가 창고를 짓는 쪽을 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어떤 것이 더 옳은 판단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물론 저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판단하도록 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 정해진 의견에 승복하지 못하는 젊은 토끼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자칫하면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변질되어 이해 될 수 있다. 다수결은 다수가 소수를 무조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 최대한 많은 혹은 모두가 동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Ⅴ. 마치면서
공리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사례를 생각해보고 거기에 내 입장을 다시 한 번 집어넣어서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어쩌면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기적인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시 받는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 해 보았을 때, 하나하나 존중되어야 할 가치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공리주의를 현실에 가장 가까운, 그래서 이상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차갑고 이기적인 철학일 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이타적인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만장일치로 해결될 수 있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아무도 희생되지 않고 누구도 무시되지 않으면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어떤 점에서든, 누구든 현실적으로 조금씩은 희생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전체를 위해 소수가 무시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은 나 또한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를 하나하나 개개인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가장 가치를 잘 인정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모두가 불가능 하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공리주의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도 못했고, 혼자 자료를 찾아가며 내린 결과이기에 여러 가지 한계에도 많이 부딪쳤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나 자신조차 공리주의의 한계에 부딪쳐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난감했던 시간도 있었다. 이제까지 공리주의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이러한 내 생각에 충고와 비판을 받아서 더 깊고 넓은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공리주의 입장에서, 그리고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의 논리에서 이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서 소수의 가치를 당연히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만장일치가 되어서 ‘최대’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소수가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소수는 무시해도 좋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온 토끼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다수결에 의해 창고를 짓는 것으로 정해지는데, 그리하여 젊은 토끼들의 마을을 옮기자는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로 창고를 짓는 것이 더 옳은 일인지 마을을 옮기는 일이 더 옳은 일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다수가 창고를 짓는 쪽을 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어떤 것이 더 옳은 판단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물론 저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판단하도록 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 정해진 의견에 승복하지 못하는 젊은 토끼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자칫하면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변질되어 이해 될 수 있다. 다수결은 다수가 소수를 무조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 최대한 많은 혹은 모두가 동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Ⅴ. 마치면서
공리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사례를 생각해보고 거기에 내 입장을 다시 한 번 집어넣어서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어쩌면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기적인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시 받는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 해 보았을 때, 하나하나 존중되어야 할 가치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공리주의를 현실에 가장 가까운, 그래서 이상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차갑고 이기적인 철학일 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이타적인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만장일치로 해결될 수 있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아무도 희생되지 않고 누구도 무시되지 않으면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어떤 점에서든, 누구든 현실적으로 조금씩은 희생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전체를 위해 소수가 무시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은 나 또한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를 하나하나 개개인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가장 가치를 잘 인정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모두가 불가능 하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공리주의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도 못했고, 혼자 자료를 찾아가며 내린 결과이기에 여러 가지 한계에도 많이 부딪쳤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나 자신조차 공리주의의 한계에 부딪쳐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난감했던 시간도 있었다. 이제까지 공리주의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이러한 내 생각에 충고와 비판을 받아서 더 깊고 넓은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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