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길이와 너비, 높이와 깊이” Bonaventura, 『Soliquium de quatuor mentalibus exercitiis』(Munchen, 1958), 게르하르트 베어, 『유럽의 신비주의』, 136에서 재인용.
를 가늠하려 하였다. 그는 ‘깨달음의 여섯 단계’를 논하면서, 이 과정을 통해 영혼은 “기독교의 지혜에 대한 무아경적 체험을 통해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Bonaventura, 『Itinerarium mentis in Deum, Pilgerbuch der seele zu Gott』(Munchen, 1961), Prolog, 3, 게르하르트 베어, 『유럽의 신비주의』, 137에서 재인용.
고 했다.
“솔로몬 신전의 왕좌에 이르는 여섯 계단처럼 여섯 번에 걸친 관조가 이루어지면, 영혼은 내면의 예루살렘처럼 깊은 평온 속에 쉴 수 있는, 참다운 평화에 이르게 된다. 여섯 번의 관조는 천사의 여섯 날개와도 상통한다. 그 날개의 힘으로 ‘참된 관조의 힘을 지닌 영혼’은 지상을 초월한 지혜의 깨달음으로 가득 차 솟구쳐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 영혼은 마침내 여섯 계단을 뛰어넘어 ‘최고의 근원적 법칙’을 통해,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 가운데서는 그와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그 어떤 인간의 날카로운 이성도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된다.” Bonaventura, 『Itinerarium mentis in Deum, Pilgerbuch der seele zu Gott』, 게르하르트 베어, 『유럽의 신비주의』, 137에서 재인용.
보나벤투라의 신비주의는 자신의 체험에 기반을 있으며, 삼위일체의 색채를 갖고 그의 해석이 사변적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5. 나오며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와의 합일 경험을 통해 신의 사랑과 현존을 실감하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는 이성을 강조하는 스콜라 철학이 대두하면서 감성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의 반작용으로서 신비주의가 나타났다는 시대적 정황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중세의 신비주의는 결코 교부들의 신학과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초대교회와 교부 시대를 거쳐 내려온 기독교 신비주의의 맥락에 서 있다.
중세의 신비주의는 특히 수도원의 금욕적 생활과 접목되어 있다. 중세 신비주의의 거장들이 대부분 수도원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이런 중세 신비주의를 이끌며 이후에도, 또한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가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가 신비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비학적인 성찰을 통해 신비주의를 설명해 내려 했다는 데에 있다. 또한 그는 엑스터시를 통한 신비적 합일과 사랑의 완성이라는 최고의 단계를 매우 명료하게 제시했는데, 이는 이후 기독교 신비주의를 설명하는 언어로서 꾸준히 사용되며 그의 영향력을 지속시켰다.
버나드의 저작들을 보면 기독교 안에서 신비주의가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원의 금욕생활과 기도를 통한 인간의 노력이 전제된다면 하나님의 은총으로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신비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며, 이를 맛본 사람은 계속 그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신비체험은 하나님의 은총과 내려오심이라는 전적 의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버나드를 비롯한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신비체험인 하나님의 전적 은총이라는 단어를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 과연 전적인 은총만으로 신비체험이 가능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를 가늠하려 하였다. 그는 ‘깨달음의 여섯 단계’를 논하면서, 이 과정을 통해 영혼은 “기독교의 지혜에 대한 무아경적 체험을 통해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Bonaventura, 『Itinerarium mentis in Deum, Pilgerbuch der seele zu Gott』(Munchen, 1961), Prolog, 3, 게르하르트 베어, 『유럽의 신비주의』, 137에서 재인용.
고 했다.
“솔로몬 신전의 왕좌에 이르는 여섯 계단처럼 여섯 번에 걸친 관조가 이루어지면, 영혼은 내면의 예루살렘처럼 깊은 평온 속에 쉴 수 있는, 참다운 평화에 이르게 된다. 여섯 번의 관조는 천사의 여섯 날개와도 상통한다. 그 날개의 힘으로 ‘참된 관조의 힘을 지닌 영혼’은 지상을 초월한 지혜의 깨달음으로 가득 차 솟구쳐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 영혼은 마침내 여섯 계단을 뛰어넘어 ‘최고의 근원적 법칙’을 통해,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 가운데서는 그와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그 어떤 인간의 날카로운 이성도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된다.” Bonaventura, 『Itinerarium mentis in Deum, Pilgerbuch der seele zu Gott』, 게르하르트 베어, 『유럽의 신비주의』, 137에서 재인용.
보나벤투라의 신비주의는 자신의 체험에 기반을 있으며, 삼위일체의 색채를 갖고 그의 해석이 사변적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5. 나오며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와의 합일 경험을 통해 신의 사랑과 현존을 실감하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는 이성을 강조하는 스콜라 철학이 대두하면서 감성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의 반작용으로서 신비주의가 나타났다는 시대적 정황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중세의 신비주의는 결코 교부들의 신학과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초대교회와 교부 시대를 거쳐 내려온 기독교 신비주의의 맥락에 서 있다.
중세의 신비주의는 특히 수도원의 금욕적 생활과 접목되어 있다. 중세 신비주의의 거장들이 대부분 수도원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이런 중세 신비주의를 이끌며 이후에도, 또한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가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가 신비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비학적인 성찰을 통해 신비주의를 설명해 내려 했다는 데에 있다. 또한 그는 엑스터시를 통한 신비적 합일과 사랑의 완성이라는 최고의 단계를 매우 명료하게 제시했는데, 이는 이후 기독교 신비주의를 설명하는 언어로서 꾸준히 사용되며 그의 영향력을 지속시켰다.
버나드의 저작들을 보면 기독교 안에서 신비주의가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원의 금욕생활과 기도를 통한 인간의 노력이 전제된다면 하나님의 은총으로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신비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며, 이를 맛본 사람은 계속 그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신비체험은 하나님의 은총과 내려오심이라는 전적 의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버나드를 비롯한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신비체험인 하나님의 전적 은총이라는 단어를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 과연 전적인 은총만으로 신비체험이 가능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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