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동만) 1-2장 - 인민위원회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초기의 산업관리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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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동만) 1-2장 - 인민위원회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초기의 산업관리체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해방과 인민위원회(1945~1946)
◆인민위원회와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초기의 산업관리체제
◆초기의 지방인민위원회와 농민위원회

2.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중앙집권화와 당의 성장
◆정부수립과 당 국가
◆인민군의 창설과 당·군관계
◆당과 산업부분, 노동계급
◆유일관리제의 실시
◆토지개혁과 당․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

본문내용

성을 강화하면서 노동조합을 직업동맹으로 개편하려했으나 쉬운일은 아니었다. 이지역 노동자층의 조직적 역량이 강했기 때문이다. 노동력 부족은 고질적 문제였는데 이는 노동입법과 직업동맹의 위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직업동맹에는 단체계약 체결, 노동보호사업 등 노동자의 권익단체로서 일정한 권한이 주어져있었다. 사회단체에는 \"당간부를 양성하는 학교\"라는 위치가 부여됐다.
당은 산업부문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해방후 일본인이 철수하면서 간부나 기술자가 부족해져 일제하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전문가들이 인민위원회나 당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경제 계획화가 초보적 수준이던 당시 공업 전체를 망라하는 산업성은 가장 강력한 행정부서였다. 김일성이 가장 신뢰하는 빨치산 동지 김책이 산업상에 취임한 것은 경제적 실무지식 이상의 정치력이 필요한 자리였음을 시사한다.
◆유일관리제의 실시
독립채산제와 유일관리제는 명령경제체제하에서 기업 관리운영체제의 두 축이다. 북조선은 우선 독립채산제 확립을 추진했으나 전반적인 무질서와 무규율을 낳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일관리제는 1949년 11월 19일 공식정책으로 처음 표명됐다. 저자는 북 내부적으로는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따른 규율 이완이나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유일관리제가 제기되었으나 이 시기에 단행한 것은 전쟁에 대비한 고도의 동원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관리방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된 이후 증산경쟁 운동이 시작된다. 1946년 11월 제3차 확대회의에서 김일성은 \"생산돌격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1월에는 연안파에 의한 건국사상총동원운동과 \'김회일 운동\'을 결부시킨 증산운동이 시작됐다. 증산운동은 인민위원회 각 관계국장에게 전개 책임이 맡겨졌고 선전부장에게는 각종 매체를 동원한 선전책임이 부여됐다. 하지만 이 결과 \'행정명령형\' 경제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생산의 계절성, 기계 혹사, 규율 및 질서 이완 등이 드러나는 것이다.
◆토지개혁과 당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
토지개혁이 단행되기까지에 이르는 의사결정과정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다. 저자는 토지개혁이 임시인민위원회 결성 이후 준비작업이 진행되어오다 마지막 단계에서 북조선농민연맹대회에서 표출된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토대로 하여 바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통해 \'위로부터\'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고 추정한다.
북조선의 토지개혁은 1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급속히 완수됐고 대규모의 유혈충돌 없이 비교적 평화롭게 종료됐다. 이는 농민의 주체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고 지주층의 상당부분이 남조선으로 피신했고 토지개혁에 저항적이던 민주당 지도부도 남조선으로 도피한 상황이었다는 요인이 배경이 됐다. 여기에 소련군이 정권의 폭력적인 부분을 계속 장악하고있어 북조선 내부에서 대립이 폭력화하는 사태를 봉쇄할 수 있었다.
토지개혁이 완수되면서 분국은 당원확대에 몰두했다. 토지개혁을 거치며서 북조선의 행정체계는 리 단위까지 정리됐다.
농민동맹의 정치적 지위는 토지개혁 이후 현저히 약화됐다. 초기 농촌지역의 농민위원회가 자치조직으로서 인민위원회와 기능이 중복됨에 따라, 권익조직으로서 자기정립을 하기 전에 인민위원회에 흡수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시기 북조선은 생산액이나 인구의 비중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다고 말한다. 농업부문이나 중소상공업은 전적으로 사적경영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남조선의 자본주의적 체제와 대립하는 체제였음은 분명하지만 \'국가사회주의체제\'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같은 이유로 저자는 전쟁 이전까지 북조선을 \'당=국가체제\'가 위에 올라서 있는 \'인민민주주의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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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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