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된다.
당=국자체제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안에 당조(fraction)를 설치하는 것이다. 해당 기관 내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이 당조를 움직여서 중앙당 및 각급 당은 이 기관을 당의 의사대로 활동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국가체제의 핵심은 당이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등 자체적으로 간부 선발 절차를 갖고 있는 조직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데 있다. 북조선의 인민위원회체제는 일제 총독부기구의 완전 철폐와 일제잔재의 청산에 따른 권력의 공백 속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북조선로동당뿐 아니라, 북조선 사회 전체가 간부 부족에 허덕이고 있던 점이 당의 인사권 장악을 보다 용이하게 하였다. 당의 주요 역할은 초기부터 ‘민족간부’의 양성이었다.
인민군의 창설은 소련군과의 협의 아래 만주파를 중심으로 소련계의 군인도 포함한 하바로프스크의 88특별여단 출신자들이 주도하고 연안계의 군인이 참가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임시인민우원회가 결성되고 나서 1946년 3월 전문적인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할 준비가 개시되어 7월 정식으로 개교하였다. 인민군의 창설은 1948년 2월 8일 정식으로 되었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이 글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북한정권의 수립과정이 나름대로 형식적인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인민위원회가 결성되고 이것이 중앙인민위원회로 발전되었고, 각계 산업계에서는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 북조선분국, 전국농민조합총동맹 등 사회단체가 결성되어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토대위에서 토지개혁과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5.10선거를 통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대응하여 북한에서는 남한의 김구, 김규식 등 우익과 중간파 민족주의자들도 참가한 가운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제2차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서 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다는 점이다. 한국이 유엔의 감시 하에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 정부를 수립하였고 북한측이 거부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남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기에 조금은 궁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북한측이 주도한 대회에 참석한 남한측의 지도자들 중 김구나 김규식은 후에 북한정부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하여 7월 19일 “반쪽의 국토 위에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는 같다”며, “이제부터 남북은 상호 경쟁적으로 국토를 분열시켜 동족상쟁의 길로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 각 사회단체를 어떻게 당의 지침대로 움직이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각 단체의 책임자가 당조위원장을 겸하여 당조(fraction)을 결성하여 당의 지도 아래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국가체제의 의미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당이 모든 조직의 인사권을 쥐고 통제하는 체제가 국가가 그렇게 하듯이 당이 국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당=국자체제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안에 당조(fraction)를 설치하는 것이다. 해당 기관 내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이 당조를 움직여서 중앙당 및 각급 당은 이 기관을 당의 의사대로 활동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국가체제의 핵심은 당이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등 자체적으로 간부 선발 절차를 갖고 있는 조직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데 있다. 북조선의 인민위원회체제는 일제 총독부기구의 완전 철폐와 일제잔재의 청산에 따른 권력의 공백 속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북조선로동당뿐 아니라, 북조선 사회 전체가 간부 부족에 허덕이고 있던 점이 당의 인사권 장악을 보다 용이하게 하였다. 당의 주요 역할은 초기부터 ‘민족간부’의 양성이었다.
인민군의 창설은 소련군과의 협의 아래 만주파를 중심으로 소련계의 군인도 포함한 하바로프스크의 88특별여단 출신자들이 주도하고 연안계의 군인이 참가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임시인민우원회가 결성되고 나서 1946년 3월 전문적인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할 준비가 개시되어 7월 정식으로 개교하였다. 인민군의 창설은 1948년 2월 8일 정식으로 되었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이 글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북한정권의 수립과정이 나름대로 형식적인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인민위원회가 결성되고 이것이 중앙인민위원회로 발전되었고, 각계 산업계에서는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 북조선분국, 전국농민조합총동맹 등 사회단체가 결성되어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토대위에서 토지개혁과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5.10선거를 통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대응하여 북한에서는 남한의 김구, 김규식 등 우익과 중간파 민족주의자들도 참가한 가운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제2차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서 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다는 점이다. 한국이 유엔의 감시 하에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 정부를 수립하였고 북한측이 거부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남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기에 조금은 궁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북한측이 주도한 대회에 참석한 남한측의 지도자들 중 김구나 김규식은 후에 북한정부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하여 7월 19일 “반쪽의 국토 위에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는 같다”며, “이제부터 남북은 상호 경쟁적으로 국토를 분열시켜 동족상쟁의 길로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 각 사회단체를 어떻게 당의 지침대로 움직이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각 단체의 책임자가 당조위원장을 겸하여 당조(fraction)을 결성하여 당의 지도 아래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국가체제의 의미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당이 모든 조직의 인사권을 쥐고 통제하는 체제가 국가가 그렇게 하듯이 당이 국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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