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주요내용
1. 해방과 인민위원회
가. 인민위원회와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나. 초기의 산업관리체제
다. 초기의 지방인민위원회와 농민위원회
2. 인민민주주의 국가 수립과 당=국가
가. 중앙집권화와 당의 성장
나. 정부 수립과 ‘당 국가’
다. 인민군의 창설과 당․군관계
라. 당과 산업부문, 노동계급
마. 유일관리제 실시
바. 토지개혁과 당․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
Ⅱ. 평가 및 의견
1. 관심 포인트
2. 의문사항
3. 성과와 한계
4. 문제제기
1. 해방과 인민위원회
가. 인민위원회와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나. 초기의 산업관리체제
다. 초기의 지방인민위원회와 농민위원회
2. 인민민주주의 국가 수립과 당=국가
가. 중앙집권화와 당의 성장
나. 정부 수립과 ‘당 국가’
다. 인민군의 창설과 당․군관계
라. 당과 산업부문, 노동계급
마. 유일관리제 실시
바. 토지개혁과 당․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
Ⅱ. 평가 및 의견
1. 관심 포인트
2. 의문사항
3. 성과와 한계
4. 문제제기
본문내용
은 아니고, 하나의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생산작업에서는 토지개혁에 따른 농민의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호응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6.25 전쟁 발발까지 농업생산체계에서 새로운 변화 없이 종래 방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Ⅱ. 평가 및 의견
1. 관심 포인트
o 김일성의 권력장악 과정은 초기에 박헌영 등 남로당계를 중앙으로 존중해주면서 내적으로는 미소 점령 공간을 이용하여 소련의 후원하에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꾸준히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도는 청년과 여성, 농민, 노동단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김일성의 정치무대 등장은 그의 만주와 소련에서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이 뒷받침 해줬고, 토지개혁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주로 사용된 방법은 통일전선전술이었다. 김일성은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고 중국과 소련이라는 국제적 후원세력을 마련한 후 무력침공을 통한 남조선 해방을 꿈꾸게 된 것으로 보인다.
o 그가 정치권력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일부 부정적인 측면은 숨기거나 왜곡한 것은 다단한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독재국가든지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치장하고 정당화 하기위해서는 사실을 왜곡하고 약점을 감추며, 정적들을 폄하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o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인식하게 된 것은 북조선에서의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통합, 그리고 남한에서의 신민당과, 남로당, 인민당의 3당 합당이 소련의 방침하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동의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결국 북한지역에 김일성의 등장과 권력정상으로의 옹립, 그리고 남북한지역의 공산당 세력들의 이합집산이 모두 소련의 치밀한 국익차원의 전략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2. 의문사항
o 박헌영이 활동근거지인 서울을 포기하고 월북하여 북한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남한에서 미군정의 공산당 세력에 대한 탄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월북활동은 남로당이라는 공산당 중심세력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샘이다. 곧 그의 정치초년생이자 정적인 김일성 밑으로 들어가 정치를 지속하고자 했을까? 박헌영은 일제시대부터 항일독립운동과 투옥의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고 국내에서 공산세력의 핵심으로서 꿈을 펼치고자 했지만 공산세력에 대한 미국의 경계와 견제, 그리고 남한내 제 정치세력이 우파위주로 편재되는데서 좌절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반탁세력을 연합하여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북한의 김일성이나 소련에서는 박헌영의 정략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o 한반도의 분단은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미군과 소련군의 진주 당시부터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소련은 자국에 유리한 정치세력을 심고, 이를 통해 동북아 정세에서의 국익확대를 꾀하고 있었고, 미국 또한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세력을 우려하면서 남한내에 공산세력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 북한에는 소련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이, 남한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 세력의 정권장악은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구도 사이에서 박헌영 등 남한내 공산세력은 소멸하고, 여운형, 김구, 김규식 등 통일지향 세력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성과와 한계
o 서동만의 북조선사회주의체제 성립사는 북한지역에서의 김일성을 대표로하는 공산당 세력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는지 과정을 자세히 조명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통일전선전술 전략에 입각하여 공산세력의 본거지인 서울의 박헌영과 연계하면서도 소련군의 지지하에 독자적인 정치공간을 만들어내고, 결국 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토지개혁은 인민의 지지를 증폭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o 특히, 중국내전에 참여했던 약 3만 5천명에 이르는 전투력이 강한 조선출신 병사들이 북한으로 합류함으로써 김일성에게 군사적 자신감을 심어주고, 이것이 6.25를 일으키는데 기여한 것은 매우 아쉽다. 당시, 정세에서 중국공산당 소속이었던 병사들은 해방무렵까지는 무력을 이용한 일제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북한합류는 지정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중국이라는 공산세력 휘하에 존재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 싶다. 만일, 남한에서 북한수준을 능가하는 토지개혁을 이뤄내고 좌우를 포용하는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o 이 책에서 자료의 부족 속에서도 토지개혁 시기에 함흥 등 북한지역 일각에서 저항이 일어난 사실을 기술한 것은 흥미롭다. 이후 세금부과와 관련해서도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간략히 묘사되어 있는데 주로 지주층이었는지 봉기의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4. 문제제기
o 해방 후 근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36년동안 독립의지를 꺽지 않고 항거해왔던 우리민족이 해방 후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분단의 길을 택하고 말았는가이다. 남한의 이승만, 북한의 김일성이란 정치세력 외 미국과 소련의 정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명백히 가려져야 할 것은 미소공동위원회 결정내용과 이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의 반응이다. 특히, 남한내에 알려져있고 교육되어온 인식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파가 갈리는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인들의 오판이 있었다는 점이다.
o 단독임시정부수립을 전제로 신탁통치라는 결정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 등 남측언론에서는 산탁통지만을 부각시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점이 반탁과 찬탁운동을 부채질 하고 결국 분단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정치지도자들도 미소공동위원회 결과와 당시 미군과 소련군의 분할 점령이라는 구도에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당위성만으로 반탁결정으로 치달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결과 남과 북은 반공세력과 공산세력으로 갈리고, 각각의 정치지형에 맞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통일독립국가 수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본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언론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대변하는 대목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Ⅱ. 평가 및 의견
1. 관심 포인트
o 김일성의 권력장악 과정은 초기에 박헌영 등 남로당계를 중앙으로 존중해주면서 내적으로는 미소 점령 공간을 이용하여 소련의 후원하에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꾸준히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도는 청년과 여성, 농민, 노동단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김일성의 정치무대 등장은 그의 만주와 소련에서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이 뒷받침 해줬고, 토지개혁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주로 사용된 방법은 통일전선전술이었다. 김일성은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고 중국과 소련이라는 국제적 후원세력을 마련한 후 무력침공을 통한 남조선 해방을 꿈꾸게 된 것으로 보인다.
o 그가 정치권력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일부 부정적인 측면은 숨기거나 왜곡한 것은 다단한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독재국가든지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치장하고 정당화 하기위해서는 사실을 왜곡하고 약점을 감추며, 정적들을 폄하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o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인식하게 된 것은 북조선에서의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통합, 그리고 남한에서의 신민당과, 남로당, 인민당의 3당 합당이 소련의 방침하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동의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결국 북한지역에 김일성의 등장과 권력정상으로의 옹립, 그리고 남북한지역의 공산당 세력들의 이합집산이 모두 소련의 치밀한 국익차원의 전략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2. 의문사항
o 박헌영이 활동근거지인 서울을 포기하고 월북하여 북한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남한에서 미군정의 공산당 세력에 대한 탄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월북활동은 남로당이라는 공산당 중심세력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샘이다. 곧 그의 정치초년생이자 정적인 김일성 밑으로 들어가 정치를 지속하고자 했을까? 박헌영은 일제시대부터 항일독립운동과 투옥의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고 국내에서 공산세력의 핵심으로서 꿈을 펼치고자 했지만 공산세력에 대한 미국의 경계와 견제, 그리고 남한내 제 정치세력이 우파위주로 편재되는데서 좌절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반탁세력을 연합하여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북한의 김일성이나 소련에서는 박헌영의 정략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o 한반도의 분단은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미군과 소련군의 진주 당시부터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소련은 자국에 유리한 정치세력을 심고, 이를 통해 동북아 정세에서의 국익확대를 꾀하고 있었고, 미국 또한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세력을 우려하면서 남한내에 공산세력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 북한에는 소련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이, 남한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 세력의 정권장악은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구도 사이에서 박헌영 등 남한내 공산세력은 소멸하고, 여운형, 김구, 김규식 등 통일지향 세력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성과와 한계
o 서동만의 북조선사회주의체제 성립사는 북한지역에서의 김일성을 대표로하는 공산당 세력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는지 과정을 자세히 조명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통일전선전술 전략에 입각하여 공산세력의 본거지인 서울의 박헌영과 연계하면서도 소련군의 지지하에 독자적인 정치공간을 만들어내고, 결국 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토지개혁은 인민의 지지를 증폭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o 특히, 중국내전에 참여했던 약 3만 5천명에 이르는 전투력이 강한 조선출신 병사들이 북한으로 합류함으로써 김일성에게 군사적 자신감을 심어주고, 이것이 6.25를 일으키는데 기여한 것은 매우 아쉽다. 당시, 정세에서 중국공산당 소속이었던 병사들은 해방무렵까지는 무력을 이용한 일제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북한합류는 지정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중국이라는 공산세력 휘하에 존재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 싶다. 만일, 남한에서 북한수준을 능가하는 토지개혁을 이뤄내고 좌우를 포용하는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o 이 책에서 자료의 부족 속에서도 토지개혁 시기에 함흥 등 북한지역 일각에서 저항이 일어난 사실을 기술한 것은 흥미롭다. 이후 세금부과와 관련해서도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간략히 묘사되어 있는데 주로 지주층이었는지 봉기의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4. 문제제기
o 해방 후 근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36년동안 독립의지를 꺽지 않고 항거해왔던 우리민족이 해방 후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분단의 길을 택하고 말았는가이다. 남한의 이승만, 북한의 김일성이란 정치세력 외 미국과 소련의 정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명백히 가려져야 할 것은 미소공동위원회 결정내용과 이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의 반응이다. 특히, 남한내에 알려져있고 교육되어온 인식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파가 갈리는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인들의 오판이 있었다는 점이다.
o 단독임시정부수립을 전제로 신탁통치라는 결정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 등 남측언론에서는 산탁통지만을 부각시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점이 반탁과 찬탁운동을 부채질 하고 결국 분단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정치지도자들도 미소공동위원회 결과와 당시 미군과 소련군의 분할 점령이라는 구도에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당위성만으로 반탁결정으로 치달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결과 남과 북은 반공세력과 공산세력으로 갈리고, 각각의 정치지형에 맞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통일독립국가 수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본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언론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대변하는 대목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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