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음. 96만 3657정보의 토지가 몰수, 68만2760호의 농가에 분여됨.
-지추층의 상당 부분이 남조선으로 피신. 토지개혁에 저항적 내지 소극적인 민주당 지도부도 남조선으로 피신. 소련군이 그러나 토지개혁에 직접 개입했다거나 하는 증언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군의 점령정책은 토지개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할 수 있고 토지개혁 실행과정에서 직접 개입이 아닌 외부의 개입을 막는 외적 조건을 형성함.
3) 북조선로동당 창립과 농촌통치 체제
-초기 국가형성에서 6.25전쟁 시기까지의 지방행정: 지방행정에서 리단위까지 행정체계가 형성된 것은 토지개혁 과정을 통해서였음. 중앙과 지방 체계적규정이 갖춰진 것은 1946년 9월경.
-지방당 조직체계: 당조직은 토지개혁 이후 급속히 확대됨. 1946년 8월 북조선로동당 창립 당시 지방당 조직은 토지개혁 직후의 조직체계와 큰 변화가 없었음.
-농업생산체제의 변화: 1947년부터 농업생산에서 계획적 방식이 본격 도입되기 시작. 인민경제계획이 실시돼 농업생산에 대한 목표가 설정.
Ⅱ. 1~2장의 포인트 및 새롭게 알게 된 점과 의문점
-이 책은 1945년 8월 일제의 항복 이후 조선 지역 권력 공백상태에서 남조선과 북조선이 각각 어떤 정치적 환경에서 정부수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북조선 내부의 여러 계파 간 분쟁과 함께 소련 등 외부세력의 영향력이 작용한 부분에 집중조명하고 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으로 남북조선의 행로는 엇갈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북조선 체제 형성에 소련의 영향력이 본격화된다. 이미 모스크바 3상 회의 전에 북조선 지역을 단위로 하는 정권조직 창설과 그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토지개혁을 구상하던 소련은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 구상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가는데 성공한다. 토지개혁의 성공은 김일성 개인의 인물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소련이 원하는 형태의 정부를 구상하는데 일조했다.
-이 책은 소련이 당시 북조선에 대한 필요성의 정도를 인식하고 이에 맞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줬다. 예컨대 모스크바 3상 회의 이후 소련은 38도선 이북 지역에 자신의 이익을 보장해 줄 정권의 설립을 원하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깨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저자가 언급한 대목만 봐도 그렇다. 지난주 찰스 암스트롱의 저작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소련이 북한에 대한 애정(?)과 필요성의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 뒷부분에 더 서술 될지 모르겠지만 연안파나 소련파가 어떤 구심점을 결성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여기에도 소련이나 중국 등의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 있고 계파 내부적으로도 만주파 김일성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없었다는 이유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이 세력으로서 김일성에 맞대응할 수 없는 다른 약점이 뭔가 더 있었을지 궁금한 점이다.
-토지개혁의 결정 과정에 있어서 권력 변화상도 짚어볼 수 있었다. 김일성은 당시 다양한 정파가 모인 공산당 북조선분국 내에서 토지개혁과 관련한 논의를 주도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일사분란 한 지위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김일성을 결단을 보여준다. 아울러 당시까지 북조선 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나 이번 저작에서도 김일성이 북조선정권을 수립해 나가는데 있어 보여준 리더십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 개인이 지닌 역량보다는 내, 외부적인 여건이 김일성의 통치에 미친 영향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여건이 유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가정 하에 보면 김일성 개인의 리더십과 판단력은 당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양곡수매사업이 중앙의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당=국가제체가 농촌의 촌락으로까지는 침투할 수 없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 등이 나타나는 점은 김일성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임이 분명하다.
-북조선 사회가 지금까지도 체제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일제 식민통치 이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로동당의 통치에 익숙해지면서 자발적으로 키워가는 사회적인 힘이 국가의 힘을 압도할 수 없게 된 환경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소련과 북조선 김일성 휘하의 세력들은 당연히 이 같은 사회적 풍토를 십분 활용했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추층의 상당 부분이 남조선으로 피신. 토지개혁에 저항적 내지 소극적인 민주당 지도부도 남조선으로 피신. 소련군이 그러나 토지개혁에 직접 개입했다거나 하는 증언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군의 점령정책은 토지개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할 수 있고 토지개혁 실행과정에서 직접 개입이 아닌 외부의 개입을 막는 외적 조건을 형성함.
3) 북조선로동당 창립과 농촌통치 체제
-초기 국가형성에서 6.25전쟁 시기까지의 지방행정: 지방행정에서 리단위까지 행정체계가 형성된 것은 토지개혁 과정을 통해서였음. 중앙과 지방 체계적규정이 갖춰진 것은 1946년 9월경.
-지방당 조직체계: 당조직은 토지개혁 이후 급속히 확대됨. 1946년 8월 북조선로동당 창립 당시 지방당 조직은 토지개혁 직후의 조직체계와 큰 변화가 없었음.
-농업생산체제의 변화: 1947년부터 농업생산에서 계획적 방식이 본격 도입되기 시작. 인민경제계획이 실시돼 농업생산에 대한 목표가 설정.
Ⅱ. 1~2장의 포인트 및 새롭게 알게 된 점과 의문점
-이 책은 1945년 8월 일제의 항복 이후 조선 지역 권력 공백상태에서 남조선과 북조선이 각각 어떤 정치적 환경에서 정부수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북조선 내부의 여러 계파 간 분쟁과 함께 소련 등 외부세력의 영향력이 작용한 부분에 집중조명하고 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으로 남북조선의 행로는 엇갈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북조선 체제 형성에 소련의 영향력이 본격화된다. 이미 모스크바 3상 회의 전에 북조선 지역을 단위로 하는 정권조직 창설과 그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토지개혁을 구상하던 소련은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 구상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가는데 성공한다. 토지개혁의 성공은 김일성 개인의 인물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소련이 원하는 형태의 정부를 구상하는데 일조했다.
-이 책은 소련이 당시 북조선에 대한 필요성의 정도를 인식하고 이에 맞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줬다. 예컨대 모스크바 3상 회의 이후 소련은 38도선 이북 지역에 자신의 이익을 보장해 줄 정권의 설립을 원하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깨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저자가 언급한 대목만 봐도 그렇다. 지난주 찰스 암스트롱의 저작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소련이 북한에 대한 애정(?)과 필요성의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 뒷부분에 더 서술 될지 모르겠지만 연안파나 소련파가 어떤 구심점을 결성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여기에도 소련이나 중국 등의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 있고 계파 내부적으로도 만주파 김일성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없었다는 이유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이 세력으로서 김일성에 맞대응할 수 없는 다른 약점이 뭔가 더 있었을지 궁금한 점이다.
-토지개혁의 결정 과정에 있어서 권력 변화상도 짚어볼 수 있었다. 김일성은 당시 다양한 정파가 모인 공산당 북조선분국 내에서 토지개혁과 관련한 논의를 주도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일사분란 한 지위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김일성을 결단을 보여준다. 아울러 당시까지 북조선 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나 이번 저작에서도 김일성이 북조선정권을 수립해 나가는데 있어 보여준 리더십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 개인이 지닌 역량보다는 내, 외부적인 여건이 김일성의 통치에 미친 영향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여건이 유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가정 하에 보면 김일성 개인의 리더십과 판단력은 당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양곡수매사업이 중앙의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당=국가제체가 농촌의 촌락으로까지는 침투할 수 없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 등이 나타나는 점은 김일성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임이 분명하다.
-북조선 사회가 지금까지도 체제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일제 식민통치 이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로동당의 통치에 익숙해지면서 자발적으로 키워가는 사회적인 힘이 국가의 힘을 압도할 수 없게 된 환경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소련과 북조선 김일성 휘하의 세력들은 당연히 이 같은 사회적 풍토를 십분 활용했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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