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키고 고려왕조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업적을 세운 군주이면서 병적으로 숙청작업에 몰두한 피의 군주이기도 하였다.
최승로라는 사람의 평으로 광종은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즉위하고 나서 7년 동안은 정치기반을 닦기만 하고 섣불리 개혁이나 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정책을 펼 땐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진행시켰다. 이런 점을 봤을 때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고 했을 때 광종은 불완전한 고려를 개혁하여 왕권을 강화시키고 500년 고려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뛰어난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5. 광종의 리더십
<주도적인 리더십>
기존의 중국의 연호를 받아다 쓰던 관례를 폐지하고 광덕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는 것은 고려가 중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자주의식의 표현이다.
광종은 즉위 초반 7년간 정국을 무던히 지켜보며 왕권을 강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일단 국내의 정국 주도권을 호족들에게 내주고 조용히 정치적 기반을 닦아나갔다. 그가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정치적 능력을 기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당나라 태종이 자신의 신하들과 정치 토론을 벌인 내용을 기록한 정관정요를 숙독하였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다. 주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주도하고자 했다.
<도전적인 리더십>
광종은 즉위할 당시 호족의 힘이 강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지만 7년 동안 정치기반을 준비하고 그 후에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펴면서 왕권을 강화했고 고려 왕조의 500년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광종(光宗)은 제2대 혜종, 제3대 정종과 여러 면에서 대비되고 있다. 우선 재위기간도 혜종의 2년, 정종의 4년보다도 훨씬 긴 26년이었다. 그리고 혜종과 정종이 각각 박술희(朴述熙)와 왕식렴(王式廉)으로 대표되는 측근의 세력기반에 의지해 왕권을 부지한 반면,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왕권을 확보하였다.
<독재적인 리더십>
964년(광종 15) 광종의 즉위를 도왔으나 그의 정책에 반발하던 평주의 호족 사도 박수경(朴守卿)일가를 숙청한다. 정책에 반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숙청을 감행하였다.
집권 후반기의 광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면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숙청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호족들은 역도로 몰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고, 한편으론 광종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켰다. 고려사의 열전 최승로 편에 의하면 "옛 공신과 장수들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고, 경종이 즉위할 때 살아남은 사람은 40여 명 뿐 이었다"고 전한다.
태조 삼한공신이 3,200명이었는데 광종 말년에 가면 이들 공신 또는 공신가 사람은 40여 명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광종의 사후에는 반 광종적인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이것 때문에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 숙청을 한 광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있다.
6. 대학생활에 적용사례
<주도적인 리더십 부분>
주변을 보면 과 공부도 그렇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대학생들 중 분명 몇 몇은 남들도 하니깐 그리고 나중에 필요할 것 같으니 일단 토익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무작정 남들 따라 학원에 다녀보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로 그냥 주변에서 하니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모두 ‘남들이 하니깐 나도......’ 라는 식의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능동적으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행동한다면 정말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적인 리더십 부분>
광종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했고 그 결과로 왕권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고려 왕조 500년의 기틀을 마련했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광종이 그랬던 것처럼 졸업할 때쯤에는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대학 생활 중에 딱히 공부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해외 몇 달 간 배낭여행을 떠난다든지 해외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 밖에도 여러 활동에 도전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낸다면 더욱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독재적인 리더십>
이것은 배워서는 안 될 리더십이다.
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하다보면 자신이 의도치 않은 사이에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팀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며 팀원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장수하고 더 원활하게 돌아갈 것 이다.
이것을 대학 생활에 적용해 보면 조별과제나 단체 활동을 할 때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이 때 팀원과 잘 타협하면 기존의 의견보다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조직을 조율해 나간다면 분명 그 조직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참고 문헌
김창현, <5백년의 리더십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3
이기백 외, <고려광종 연구>, 일조각, 1990
이은식,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청목산, 200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2331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A%B4%91%EC%A2%85#.EA.B4.80.EB.B3.B5_.EC.A0.9C.EC.A0.9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4304&cid=46621&categoryId=46621
최승로라는 사람의 평으로 광종은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즉위하고 나서 7년 동안은 정치기반을 닦기만 하고 섣불리 개혁이나 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정책을 펼 땐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진행시켰다. 이런 점을 봤을 때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고 했을 때 광종은 불완전한 고려를 개혁하여 왕권을 강화시키고 500년 고려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뛰어난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5. 광종의 리더십
<주도적인 리더십>
기존의 중국의 연호를 받아다 쓰던 관례를 폐지하고 광덕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는 것은 고려가 중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자주의식의 표현이다.
광종은 즉위 초반 7년간 정국을 무던히 지켜보며 왕권을 강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일단 국내의 정국 주도권을 호족들에게 내주고 조용히 정치적 기반을 닦아나갔다. 그가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정치적 능력을 기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당나라 태종이 자신의 신하들과 정치 토론을 벌인 내용을 기록한 정관정요를 숙독하였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다. 주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주도하고자 했다.
<도전적인 리더십>
광종은 즉위할 당시 호족의 힘이 강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지만 7년 동안 정치기반을 준비하고 그 후에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펴면서 왕권을 강화했고 고려 왕조의 500년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광종(光宗)은 제2대 혜종, 제3대 정종과 여러 면에서 대비되고 있다. 우선 재위기간도 혜종의 2년, 정종의 4년보다도 훨씬 긴 26년이었다. 그리고 혜종과 정종이 각각 박술희(朴述熙)와 왕식렴(王式廉)으로 대표되는 측근의 세력기반에 의지해 왕권을 부지한 반면,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왕권을 확보하였다.
<독재적인 리더십>
964년(광종 15) 광종의 즉위를 도왔으나 그의 정책에 반발하던 평주의 호족 사도 박수경(朴守卿)일가를 숙청한다. 정책에 반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숙청을 감행하였다.
집권 후반기의 광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면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숙청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호족들은 역도로 몰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고, 한편으론 광종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켰다. 고려사의 열전 최승로 편에 의하면 "옛 공신과 장수들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고, 경종이 즉위할 때 살아남은 사람은 40여 명 뿐 이었다"고 전한다.
태조 삼한공신이 3,200명이었는데 광종 말년에 가면 이들 공신 또는 공신가 사람은 40여 명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광종의 사후에는 반 광종적인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이것 때문에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 숙청을 한 광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있다.
6. 대학생활에 적용사례
<주도적인 리더십 부분>
주변을 보면 과 공부도 그렇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대학생들 중 분명 몇 몇은 남들도 하니깐 그리고 나중에 필요할 것 같으니 일단 토익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무작정 남들 따라 학원에 다녀보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로 그냥 주변에서 하니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모두 ‘남들이 하니깐 나도......’ 라는 식의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능동적으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행동한다면 정말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적인 리더십 부분>
광종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했고 그 결과로 왕권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고려 왕조 500년의 기틀을 마련했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광종이 그랬던 것처럼 졸업할 때쯤에는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대학 생활 중에 딱히 공부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해외 몇 달 간 배낭여행을 떠난다든지 해외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 밖에도 여러 활동에 도전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낸다면 더욱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독재적인 리더십>
이것은 배워서는 안 될 리더십이다.
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하다보면 자신이 의도치 않은 사이에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팀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며 팀원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장수하고 더 원활하게 돌아갈 것 이다.
이것을 대학 생활에 적용해 보면 조별과제나 단체 활동을 할 때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이 때 팀원과 잘 타협하면 기존의 의견보다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조직을 조율해 나간다면 분명 그 조직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참고 문헌
김창현, <5백년의 리더십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3
이기백 외, <고려광종 연구>, 일조각, 1990
이은식,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청목산, 200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2331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A%B4%91%EC%A2%85#.EA.B4.80.EB.B3.B5_.EC.A0.9C.EC.A0.9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4304&cid=46621&categoryId=4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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