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위한 자기 수도의 방법과는 다른 것이다. 웨슬리에게 이웃 사랑은 다름 아닌 하나님 사랑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이 사람(완(온)전한 자)은 모든 인류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증거 할 수 있다. 그는 마음과 온갖 행실이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주 그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힘을 다하여’ 그를 섬긴다. 그는 ‘이웃 즉 모든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한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한다. 존 웨슬리 지음, 이후정 옮김, 『그리스도인의 완전』(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2006), 35-36.
4. 나가며
본 소고에서는 이제까지 웨슬리의 신학을 성화의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신비주의와의 연관성 속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웨슬리의 신학은 신비주의와는 구분되는 것임을 밝혔다. 죄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의지하며, 그 은총으로 인해 의인화와 거듭남을 경험한 인간은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비주의가 말하는 궁극적 존재와의 합일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다. 오히려 이 만남 속에서 인간은 현실의 삶 속에서 성령과 함께,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이웃과 함께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변화되어 신적 합일 상태의 현실화, 일상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사용되어지는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인간적 노력 또한 아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그러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웨슬리는 강조했다. 결국 웨슬리에서 신비주의의 성향은 인효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에의 응답, 회개의 결단, 은혜의 수단의 활용이라는 부분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는 부분은 오히려 공동체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역사성을 보여주면서 신비주의와는 차별적인 측면을 가진다. 본질적 측면에서도 인간적인 노력과 의지 이면에 자리한 절대적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고백이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웨슬리의 신학의 신비주의적 성향은 박약하다라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겠다.
이제 이 사람(완(온)전한 자)은 모든 인류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증거 할 수 있다. 그는 마음과 온갖 행실이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주 그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힘을 다하여’ 그를 섬긴다. 그는 ‘이웃 즉 모든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한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한다. 존 웨슬리 지음, 이후정 옮김, 『그리스도인의 완전』(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2006), 35-36.
4. 나가며
본 소고에서는 이제까지 웨슬리의 신학을 성화의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신비주의와의 연관성 속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웨슬리의 신학은 신비주의와는 구분되는 것임을 밝혔다. 죄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의지하며, 그 은총으로 인해 의인화와 거듭남을 경험한 인간은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비주의가 말하는 궁극적 존재와의 합일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다. 오히려 이 만남 속에서 인간은 현실의 삶 속에서 성령과 함께,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이웃과 함께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변화되어 신적 합일 상태의 현실화, 일상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사용되어지는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인간적 노력 또한 아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그러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웨슬리는 강조했다. 결국 웨슬리에서 신비주의의 성향은 인효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에의 응답, 회개의 결단, 은혜의 수단의 활용이라는 부분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는 부분은 오히려 공동체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역사성을 보여주면서 신비주의와는 차별적인 측면을 가진다. 본질적 측면에서도 인간적인 노력과 의지 이면에 자리한 절대적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고백이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웨슬리의 신학의 신비주의적 성향은 박약하다라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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