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있다.
자신과 동행하여 하나님과 경배하고자 요청하지만 사울이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한 이유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30절에서 ‘나를 높이사’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자신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도 인정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사무엘에게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요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아 찢기까지 애원한다. 이에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 ‘이웃’(, 레아)라는 단어는 원래 ‘사귀다’, ‘교재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명사로 이는 이웃(출21:14), ‘동무’(삿7:13), ‘벗’(욥6:27) 등의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그리고 ‘주셨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네타나흐’()는 과거를 나타내는 ‘나탄’()의 완료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한 사람을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으로 결정하셨으며(13:14), 16장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사람은 다윗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에게 주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들 앞에서 만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기에 사무엘에게 끝까지 자신과 동행하고자 요청했고, 이에 마음을 돌이켜 함께 사울을 따라갔고 사무엘이 사울의 그릇된 인간적 의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따라간 이유는 사무엘에게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왕권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원했고, 사무엘은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까지 정치 질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사울이 하지 않았던 아각 왕의 처형을 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울과 함께 동행한 것이다.
, 사울은 여호와께 경배 드린다.
4. 사무엘이 아각을 처형하다(15:32-33)
사무엘은 사울이 살려준 아말렉 왕 아각을 끌고 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찍어 쪼개어 처형시켰다. 개역개정판에는 아각이 사무엘 앞으로 나올 때에 ‘즐거이 오며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라고 기록돼 있다. ‘즐거이’에 해당하는 ‘마아단노트’의 원형 ‘마아단’()은 ‘부드럽다’, ‘느슨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단’()에서 파생한 단어로써, ‘마음이 만족하고 기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아각의 즐거움은 자신이 사울의 손에서 제사장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함으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70인역에 기초하여 본문을 ‘실로 죽음은 괴롭도다’로 바꾸어 번역했다. 즉 자신의 죽을 운명을 예견한 아각의 불안과 체념의 사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아각의 말은 잔인한 속성을 갖고 있는 사울보다는 여호와의 제사장에게 맡겨진 것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5. 사무엘과 사울의 결별(15:34-35)
사울과 동행하였던 사무엘은 사울을 떠나 라마로 갔고 라마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자 그의 활동의 중심지이며, 후일에 그가 죽어 장사된 곳이다. 따라서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간 것은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 사울도 기브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갔다. 사울이 올라간 ‘사울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이자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본문에서 단순히 기브아로 표현하지 않고 ‘사울 기브아’로 한 것은 기브아가 여러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두 사람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단절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과의 단절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과 사울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무엘은 슬퍼함으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울을 만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6. 정리
자신의 불순종과 교만으로 인해 결국 사울은 왕으로서 역할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다윗에게 그 왕권을 넘겨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로 왕을 세우셨지만, 그 왕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왕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사울과 요나단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Ⅲ. 결론
사무엘상 13-15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사울왕가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사울은 13장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하여 결국 15장에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사울에게는 믹마스 전투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결과로까지 이르게 되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워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13-15장은 다윗왕조가 세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을 택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사울이 저지른 실수와 범한 죄는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윗의 살인방조죄나 간음죄와 비교했을 때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본문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오늘 본문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마지막 때라고 하는 이때에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과 동행하여 하나님과 경배하고자 요청하지만 사울이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한 이유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30절에서 ‘나를 높이사’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자신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도 인정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사무엘에게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요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아 찢기까지 애원한다. 이에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 ‘이웃’(, 레아)라는 단어는 원래 ‘사귀다’, ‘교재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명사로 이는 이웃(출21:14), ‘동무’(삿7:13), ‘벗’(욥6:27) 등의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그리고 ‘주셨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네타나흐’()는 과거를 나타내는 ‘나탄’()의 완료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한 사람을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으로 결정하셨으며(13:14), 16장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사람은 다윗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에게 주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들 앞에서 만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기에 사무엘에게 끝까지 자신과 동행하고자 요청했고, 이에 마음을 돌이켜 함께 사울을 따라갔고 사무엘이 사울의 그릇된 인간적 의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따라간 이유는 사무엘에게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왕권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원했고, 사무엘은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까지 정치 질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사울이 하지 않았던 아각 왕의 처형을 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울과 함께 동행한 것이다.
, 사울은 여호와께 경배 드린다.
4. 사무엘이 아각을 처형하다(15:32-33)
사무엘은 사울이 살려준 아말렉 왕 아각을 끌고 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찍어 쪼개어 처형시켰다. 개역개정판에는 아각이 사무엘 앞으로 나올 때에 ‘즐거이 오며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라고 기록돼 있다. ‘즐거이’에 해당하는 ‘마아단노트’의 원형 ‘마아단’()은 ‘부드럽다’, ‘느슨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단’()에서 파생한 단어로써, ‘마음이 만족하고 기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아각의 즐거움은 자신이 사울의 손에서 제사장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함으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70인역에 기초하여 본문을 ‘실로 죽음은 괴롭도다’로 바꾸어 번역했다. 즉 자신의 죽을 운명을 예견한 아각의 불안과 체념의 사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아각의 말은 잔인한 속성을 갖고 있는 사울보다는 여호와의 제사장에게 맡겨진 것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5. 사무엘과 사울의 결별(15:34-35)
사울과 동행하였던 사무엘은 사울을 떠나 라마로 갔고 라마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자 그의 활동의 중심지이며, 후일에 그가 죽어 장사된 곳이다. 따라서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간 것은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 사울도 기브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갔다. 사울이 올라간 ‘사울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이자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본문에서 단순히 기브아로 표현하지 않고 ‘사울 기브아’로 한 것은 기브아가 여러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두 사람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단절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과의 단절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과 사울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무엘은 슬퍼함으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울을 만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6. 정리
자신의 불순종과 교만으로 인해 결국 사울은 왕으로서 역할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다윗에게 그 왕권을 넘겨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로 왕을 세우셨지만, 그 왕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왕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사울과 요나단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Ⅲ. 결론
사무엘상 13-15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사울왕가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사울은 13장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하여 결국 15장에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사울에게는 믹마스 전투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결과로까지 이르게 되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워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13-15장은 다윗왕조가 세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을 택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사울이 저지른 실수와 범한 죄는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윗의 살인방조죄나 간음죄와 비교했을 때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본문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오늘 본문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마지막 때라고 하는 이때에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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