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의 이물 윤지충- 왕권 상대화 중국의 전례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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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사회의 이물 윤지충- 왕권 상대화 중국의 전례논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에 대한 1920년의 논쟁에 대해서는 서정민,『한국교회논쟁사: 이야기로 푸는 역사1』(이레서원, 1994), 29-38.
곧 개신교 선교사는 전례문제에 있어 예수회 쪽이 아닌 도미니쿠스회나 프란체스코회에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제사문제는 천주교에서 전면적인 허용으로, 개신교는 추도예배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제사문제가 한국 기독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선교적 난제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던 신앙의 문제가 이제는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윤지충의 죽음은 선교현장에서 교리를 어느 정도로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선교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생명을 좌우하는 신학적 난제에 부딪혔을 때, 기독교의 절대적인 교리로서 해석할 것인지 선교지 문화의 하나로서 해석할 것인가? 교회사가들은 윤지충 사건과 같은 절박한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례와 적절한 교훈을 남김으로써 선교사들에게 하나의 참고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곧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상황에 따른 신학적 응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역사적 평가는 시기마다 달라진다. 윤지충은 당시에 반역자였지만, 지금은 반역자로 평가받지 않는다.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당시의 양반들처럼 제사문제를 조선의 사회기강을 무너뜨리고, 왕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사문제는 가정의 문제, 곧 작은 사회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유교사회 조선에서 윤지충의 제사문제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 사건이었지만, 오늘날 제사는 하나의 작은 사회문제 혹은 가정 문제로 축소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윤지충 사건은 기독교를 믿는 우리에게 여전히 국가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교리가 충돌하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실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 문제는 형태만 다르지 계속되어지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신사참배 문제가 정부의 방침과 부딪혔던 모습은 이를 잘 말해준다. 오늘날도 여호와의 증인은 국가의 의무인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사회의 질서와 의무를 져버린 이들은 때로 윤지충과 권상연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기이한 ‘異物’로 보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이러한 기이한 이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다.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없었던 ‘이물’을 다른 후대 세대에서는 한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역사는 보여준다. 이러한 ‘이물’이 있었기에 우리의 인식의 전환이 빨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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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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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9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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