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요 - 고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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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속요 - 고려가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몇 가지 전제
2. 명칭과 갈래 : 작자와 향수자 : 속요의 범주
3. 속요의 주제와 시정
4. 연구사와 전망, 그리고 문제점

본문내용

속요
1. 몇 가지 전제
속요의 사전적인 뜻은 일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돌아다니는 시속()의 노래로서, 그 발생 시기나 작자도 모르는 채로, 일정한 형식도 없이 자연스러운 율조에 맡겨 자유롭게 불려져 온 민요 같은 노래를 가리킨다. 속요의 정의를 이렇게 일반적으로 규정할 때, 그런 속요는 어느 민족, 어느 시대에나 있을 것이고 또 있어 왔다. 그런데 여기 한국 고전문학에서 고려 속요, 또는 여요(麗謠)라 했을 때에는, 단순히 고려시대에 민중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민요라고만 볼 수 없는, 상당히 복잡한 형성 배경과 향유계층과 전승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형식의 노래가 다양한 정감을 담아 끊임없이 생산되고 전승되어 왔을 것이지마는, 불행하게도 그 것을 기록할 수 있는 고요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노래의 제 모습을 갖춘 유산은 거의 접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려 노래로 추정하는 20편 내외의 작품은 정인지(鄭麟趾) 등이 순한문으로 써놓은 『고려사』와 15세기 이후에 선초(鮮初) 궁중악을 수집 정리한 『악학궤범』『시용향악보』와 이제현민사평이 당시의 노래를 한시로 번역한 『소악부』등을 참조하여, 당시 노래의 편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이들 자료가 왕실 중심의 관찬(官撰)문헌으로서 민간의 노래까지를 고루 수집할 수 없다는 한계성과, 고려가 망한 지 한 세기가 지난 뒤에야 전왕조를 부정하고 역성혁명(易姓革命)하여 세운 조선 초기의 궁중 음악의 속악가사로서 수집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에, 현재 전하는 그런 노래가 바로 고려 노래의 원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며, 또 그런 특정한 몇편의 노래로써 고려시가의 전모나 보편적인 양상이라고 속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즉, 이들은 수많은 고려 노래 중에서 의도적으로 선택 수용된 것이며, 또 특수한 목적과 기능을 위하여 새로 창작된 노래도 섞여 있을 것이고, 비록 민요에서 채택되었다 하더라도 화려한 연향의식(宴享儀式)과 다채로운 궁중정재(宮中呈才)에 반주되기 위하여 다시 편집되고 새로 구성된 것도 함께 들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살펴나가야 할 것이다.
2. 명칭과 갈래 : 작자와 향수자 : 속요의 범주
고려시대의 시가 속에는 다양한 한시(樂府, 古詩, 近體詩, 辭, 賦, 詞 등) 계통은 제쳐 놓더라도, 민요나 무가(巫歌) 및 향가와 뒤에 조선조 시가의 주류를 이룬 시조, 가사 등도 모두 포함되지마는, 이 시대만의 특색 있는 노래로서는 속악가사(俗樂歌詞)로 쓰인 다음과 같은 이질적인 두 갈래 노래가 있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주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어듸다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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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9.03.19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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