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소녀> 감상문
2. <반사되지 않는 거울> 감상문
3. <파스카> 감상문
4. <쿠치의 여름> 감상문
2. <반사되지 않는 거울> 감상문
3. <파스카> 감상문
4. <쿠치의 여름> 감상문
본문내용
바오를 멀리 떨어진 쿠치에 있는 여름학교에 보낸다. 그곳에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울적하던 바오는 원주민 소년 밍추안, ‘곰’이라는 별명의 가난한 소녀 등 새로운 학교친구들을 만나며 인생관이 바뀌는데..
* 애초에 내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잡은 콘셉트는 ‘성장’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영화들을 선별하던 과정에서 눈에 들어왔던 것이 <쿠치의 여름>이었다. ‘새로운 시각의 성장영화’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이 영화는 아주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전경린 작가의 <강변마을>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은 아주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머물게 된다. 사실 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의 먼 친척인 할머니라며 여름방학 동안 그곳에서 지내고 오라고 얘기해 주인공과 위아래 오빠와 동생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봐준 할머니와 삼촌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할머니 집에 있는 경대에서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를 보게 된다. 훗날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주인공은 자신의 집 앞에서 사진에서 본 그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떠나고 자신의 집에 남은 것은 웬 어린아이였다. 훗날, 주인공은 부모에게 혼날 때면 그 여름방학 때 갔던 할머니 댁에 가고자 하지만 찾아가지 못하고, 거길 가겠다는 말만 하면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깨닫는다. 그곳에 대해서는 입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여름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들은 금지된, 주인공의 금지된 유년시절이 된다.
이 소설이 내게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바로 마지막, 그곳을 입에 올릴 때마다 등짝을 맞은 주인공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지나온 한 철, 유년시절이지만 그곳을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그것이 나를 한동안 잡아끌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에서도 한동안 나를 잡아끌었던 영화가 나타났다. 바로 <쿠치의 여름>이다.
줄거리는 일반 성장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방학동안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겪은 일상들, 그러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의 죽음, 할아버지의 쓰러짐, 그곳을 떠나게 되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그곳을 떠나게 되는 아이. 이렇게 정리하면서도 나는 계속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다. 초반, 집중하지 못해 한 삼분 여간 졸았던 것이 지금에서야 크게 후회가 된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아이의 초점에 맞추어 흘러가던 컷들. 아버지의 대사 “다신 여길 오지 못할 거야”.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부정하는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주인공 아이. 어릴 때 인생의 홍역을 치룬 듯, 단단해 보이면서도 여린 아이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는다.
소설과 영화는 타의에 의해 유년시절을 박탈당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다만 소설에서는 그것이 부모에 의해 강제적이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이 강제적이지 않다. 생리적인 현상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할아버지, 그래서 그곳을 떠나야 하는 가족들, 그 아래 있는 아이.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그곳을 빼앗겼더라면 덜 슬펐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그곳을 떠나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영화는 물 흐르듯이 진행이 되다가도, 가끔씩 편집점이 도드라질 정도로 뚝뚝 끊어지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여김 없이 등장하는 불길한 기운들. 그리고 그 기운이 가실 때 즈음 터지는 사건들. 다만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지는 것이 아닌, 밍추안이라는 아이의 죽음이 가장 큰 사건이다. 그 사건을 전후로 주인공 바오의 인생은 조금씩 성장의 궤도로 올라선다는 느낌이다. 행복한 시절은 다 갔다, 라고 말하듯. 성장은 이런 의미에서보자면 무척이나 슬픈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감독 또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냥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밝음과 어두움을 교차로 사용한다. 어두움은 주로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밝음은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바오의 행동, 그리고 바오 여동생이 내뱉는 말들, 그리고 그들을 보살피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그러한 인물들의 감정선과 행동, 동선은 시종일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곧이어 그런 것들 또한 처연해진다.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고 결말로 치닫는 내내, 어두운 장면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오히려 더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물들이 아무리 재미난 개그를 해도, 별로 웃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일부는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인물들 중 한 명은 죽을 것이고, 주인공은 이 마을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여름 방학, 여름. 가장 덥고 찌는 듯한 햇볕이 쏟아지는 계절. 하지만 곧이어 비와 태풍이 몰아치는 계절. 감독은 주인공을 이 계절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도록 조명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과 우중충한 비구름 가운데서 아이는 성장한다. 좀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없던 아이는 여전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그것이 넘쳐흐를 때 괴이한 행동을 하며 마을을 빠져나간다. 얼굴에 푸른 칠을 하고,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결말에 이르러서,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그 무엇보다도 주인공 아이가 안타까워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시각의 성장드라마. 이 <쿠치의 여름>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년시절에는 좋은 기억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른이 될 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어 참 행복했던 영화였다.
* 애초에 내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잡은 콘셉트는 ‘성장’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영화들을 선별하던 과정에서 눈에 들어왔던 것이 <쿠치의 여름>이었다. ‘새로운 시각의 성장영화’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이 영화는 아주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전경린 작가의 <강변마을>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은 아주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머물게 된다. 사실 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의 먼 친척인 할머니라며 여름방학 동안 그곳에서 지내고 오라고 얘기해 주인공과 위아래 오빠와 동생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봐준 할머니와 삼촌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할머니 집에 있는 경대에서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를 보게 된다. 훗날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주인공은 자신의 집 앞에서 사진에서 본 그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떠나고 자신의 집에 남은 것은 웬 어린아이였다. 훗날, 주인공은 부모에게 혼날 때면 그 여름방학 때 갔던 할머니 댁에 가고자 하지만 찾아가지 못하고, 거길 가겠다는 말만 하면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깨닫는다. 그곳에 대해서는 입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여름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들은 금지된, 주인공의 금지된 유년시절이 된다.
이 소설이 내게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바로 마지막, 그곳을 입에 올릴 때마다 등짝을 맞은 주인공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지나온 한 철, 유년시절이지만 그곳을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그것이 나를 한동안 잡아끌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에서도 한동안 나를 잡아끌었던 영화가 나타났다. 바로 <쿠치의 여름>이다.
줄거리는 일반 성장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방학동안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겪은 일상들, 그러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의 죽음, 할아버지의 쓰러짐, 그곳을 떠나게 되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그곳을 떠나게 되는 아이. 이렇게 정리하면서도 나는 계속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다. 초반, 집중하지 못해 한 삼분 여간 졸았던 것이 지금에서야 크게 후회가 된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아이의 초점에 맞추어 흘러가던 컷들. 아버지의 대사 “다신 여길 오지 못할 거야”.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부정하는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주인공 아이. 어릴 때 인생의 홍역을 치룬 듯, 단단해 보이면서도 여린 아이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는다.
소설과 영화는 타의에 의해 유년시절을 박탈당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다만 소설에서는 그것이 부모에 의해 강제적이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이 강제적이지 않다. 생리적인 현상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할아버지, 그래서 그곳을 떠나야 하는 가족들, 그 아래 있는 아이.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그곳을 빼앗겼더라면 덜 슬펐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그곳을 떠나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영화는 물 흐르듯이 진행이 되다가도, 가끔씩 편집점이 도드라질 정도로 뚝뚝 끊어지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여김 없이 등장하는 불길한 기운들. 그리고 그 기운이 가실 때 즈음 터지는 사건들. 다만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지는 것이 아닌, 밍추안이라는 아이의 죽음이 가장 큰 사건이다. 그 사건을 전후로 주인공 바오의 인생은 조금씩 성장의 궤도로 올라선다는 느낌이다. 행복한 시절은 다 갔다, 라고 말하듯. 성장은 이런 의미에서보자면 무척이나 슬픈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감독 또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냥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밝음과 어두움을 교차로 사용한다. 어두움은 주로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밝음은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바오의 행동, 그리고 바오 여동생이 내뱉는 말들, 그리고 그들을 보살피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그러한 인물들의 감정선과 행동, 동선은 시종일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곧이어 그런 것들 또한 처연해진다.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고 결말로 치닫는 내내, 어두운 장면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오히려 더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물들이 아무리 재미난 개그를 해도, 별로 웃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일부는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인물들 중 한 명은 죽을 것이고, 주인공은 이 마을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여름 방학, 여름. 가장 덥고 찌는 듯한 햇볕이 쏟아지는 계절. 하지만 곧이어 비와 태풍이 몰아치는 계절. 감독은 주인공을 이 계절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도록 조명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과 우중충한 비구름 가운데서 아이는 성장한다. 좀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없던 아이는 여전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그것이 넘쳐흐를 때 괴이한 행동을 하며 마을을 빠져나간다. 얼굴에 푸른 칠을 하고,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결말에 이르러서,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그 무엇보다도 주인공 아이가 안타까워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시각의 성장드라마. 이 <쿠치의 여름>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년시절에는 좋은 기억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른이 될 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어 참 행복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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