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원작 윤흥길
줄거리
\'나\'는 갖은 고생 끝에 집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현금이 그리워 권씨 일가를 들인다. 권씨는 시위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가 된 후 공사판 막노동을 전전하며 간간히 생활해온 사람임에도 항상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늘 구두를 반짝이게 닦으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권씨는 나에게 아내의 출산으로 인한 수술비를 빌리러 온다. 나는 처음에 그 부탁을 거절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수술비용을 대신 지불한다. 이를 모르는 권씨는 그날 밤 강도로 나의 집을 침입하지만, 무기를 마음대로 방치하는 등 서툰 그의 행동에 나는 그 강도가 권씨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권씨를 잘 달래서 내보내지만 자존심이 상한 권씨는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는 말과 함께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사라진다.
주요 등장인물
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돈이 궁해 권씨 일가를 들인다. 이 순경에게 권씨의 감시를 부탁받지만 본인은 귀찮은 일에 연관되는 것을 싫어한다.
아내 권씨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탐탁치 않아 한다. 타산적이고 냉정한 성격이다.
권씨 시위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라는 오명이 붙어있다. 자신이 경찰에 감시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며 자신의 구두 열 켤레를 자존심만큼 소중히 다룬다.
이순경 ‘나’에게 권씨의 감시를 부탁한다. 권씨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1장 교무실
교무실에 이 순경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건넨다
이순경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조금도 부담감 같은걸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매일 무슨 보고 형식을 취할 것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동태가 보일 때, 가령 멀리 여행을 떠난다던가. 좀 이상한 손님이 찾아온다던가. 쌀이나 연탄이 떨어져 굶는다던가. 갑자기 돈이 생겨서......
나 (화를 버럭 내며) 나더러 이제부터 당신 밀대 노릇을 하라는 말입니까?
이순경 (손사래를 하며) 무슨 그런 거북한 말씀을! (큰소리로 웃고 곧장 진지한 표정으로) 오 선생님 앞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친절한 이웃이 돼 주십사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나 (비꼬는 말투로) 권씨의 동태를 일일이 고자질해야만 권씨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군요?
이순경 그렇다마다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밀대나 고자질이나 하는 말은 우리 쏙 빼기로 합시다. 두고 보면 오 선생님도 알게 됩니다. 권씨에 관계되는 한 그런 말들이 얼마나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지를 말입니다. 오 선생님한테 권씨네가 지나치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닙니까? 혹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닙니까?
나 뭐 벌써부터 미워할 것까지야 없다마는....
이순경 힘닿는 대로 그 사람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도무지 제가 표면에 나설 수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권씨 자신이 더 큰 문젭니다. 자신이 법에 따라서 내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못 견디는 체질입니다. 내 전임 담당자 때는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사당하고 있다는 걸 일단 눈치만 채고 나면 직장도 생활도 심지어는 처자식도 다 포기하고 숫제 드러누워서 며칠씩이고 굶고, 밥 대신 허구한 날 강술만 들이킨다거나 짐승처럼 난폭해져 발광 그 비슷하게 됩니다. 그렇게 착하고 순한 사람이 말입니다. 이제 제 말뜻을 이해하셨을 줄 믿습니다. 제 임무를 감쪽같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만 주신다면 오 선생님은 틀림없이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전 경찰관 입장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권씨를 사랑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남자로서가 아니라요 사람으로서 입니다. 가능하다면 그를 돕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마 언젠간 오 선생님도 그렇게 되고 말 겁니다. 부디 친절한 이웃이 돼 주십사고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나 (관객석을 향해 중얼거린다) 내가 권씨를 사랑하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차라리 누군가한테 사례금을 듬뿍 얹어서 나대신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편할 것 같은데......
2장 ‘나’의 집
낭독자 원래가 우리 가족이 방을 내놓기로 한 이유가 인정이 아닌 현금이 아쉬워서였다. 권씨네가 우리 집 문간방으로 이사 오던 날은 그 풍경이 가관을 넘어 장관이었다. 보퉁이를 인 배가 부른 권씨의 아내, 그리고 자기가 맨 보퉁이 무게에 휘청대는 권씨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약속보다 나흘이나 먼저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나’의 집에 권씨의 일가가 보퉁이를 매고 찾아온다. ‘나’는 권씨의 짐을 받아들고 이내 문간방으로 향한다.
나 (짐을 내려놓고) 남은 이삿짐은 차로 옵니까?
권씨 아닙니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 아내의 머리부터 대문간에 부려놓은 보퉁이까지 기다란 활을 그린다.) 이게 전부 답니다. (멋쩍은 듯 웃는다)
아내 (나에게 소곤대며)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요!
나 먼젓번 살던 방을 오늘 꼭 비워둬야만 할 형편이었다잖아. 약속이 틀려도 어차피 안 쓰는 방이니까 나흘쯤 앞당겨 들어왔대서 뭐......
아내 그게 아녜요
나 걱정 마. 수일 내로 마저 다 챙기겠다고 약속했어.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절반만 내고 입 싹
원작 윤흥길
줄거리
\'나\'는 갖은 고생 끝에 집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현금이 그리워 권씨 일가를 들인다. 권씨는 시위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가 된 후 공사판 막노동을 전전하며 간간히 생활해온 사람임에도 항상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늘 구두를 반짝이게 닦으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권씨는 나에게 아내의 출산으로 인한 수술비를 빌리러 온다. 나는 처음에 그 부탁을 거절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수술비용을 대신 지불한다. 이를 모르는 권씨는 그날 밤 강도로 나의 집을 침입하지만, 무기를 마음대로 방치하는 등 서툰 그의 행동에 나는 그 강도가 권씨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권씨를 잘 달래서 내보내지만 자존심이 상한 권씨는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는 말과 함께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사라진다.
주요 등장인물
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돈이 궁해 권씨 일가를 들인다. 이 순경에게 권씨의 감시를 부탁받지만 본인은 귀찮은 일에 연관되는 것을 싫어한다.
아내 권씨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탐탁치 않아 한다. 타산적이고 냉정한 성격이다.
권씨 시위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라는 오명이 붙어있다. 자신이 경찰에 감시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며 자신의 구두 열 켤레를 자존심만큼 소중히 다룬다.
이순경 ‘나’에게 권씨의 감시를 부탁한다. 권씨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1장 교무실
교무실에 이 순경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건넨다
이순경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조금도 부담감 같은걸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매일 무슨 보고 형식을 취할 것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동태가 보일 때, 가령 멀리 여행을 떠난다던가. 좀 이상한 손님이 찾아온다던가. 쌀이나 연탄이 떨어져 굶는다던가. 갑자기 돈이 생겨서......
나 (화를 버럭 내며) 나더러 이제부터 당신 밀대 노릇을 하라는 말입니까?
이순경 (손사래를 하며) 무슨 그런 거북한 말씀을! (큰소리로 웃고 곧장 진지한 표정으로) 오 선생님 앞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친절한 이웃이 돼 주십사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나 (비꼬는 말투로) 권씨의 동태를 일일이 고자질해야만 권씨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군요?
이순경 그렇다마다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밀대나 고자질이나 하는 말은 우리 쏙 빼기로 합시다. 두고 보면 오 선생님도 알게 됩니다. 권씨에 관계되는 한 그런 말들이 얼마나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지를 말입니다. 오 선생님한테 권씨네가 지나치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닙니까? 혹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닙니까?
나 뭐 벌써부터 미워할 것까지야 없다마는....
이순경 힘닿는 대로 그 사람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도무지 제가 표면에 나설 수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권씨 자신이 더 큰 문젭니다. 자신이 법에 따라서 내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못 견디는 체질입니다. 내 전임 담당자 때는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사당하고 있다는 걸 일단 눈치만 채고 나면 직장도 생활도 심지어는 처자식도 다 포기하고 숫제 드러누워서 며칠씩이고 굶고, 밥 대신 허구한 날 강술만 들이킨다거나 짐승처럼 난폭해져 발광 그 비슷하게 됩니다. 그렇게 착하고 순한 사람이 말입니다. 이제 제 말뜻을 이해하셨을 줄 믿습니다. 제 임무를 감쪽같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만 주신다면 오 선생님은 틀림없이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전 경찰관 입장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권씨를 사랑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남자로서가 아니라요 사람으로서 입니다. 가능하다면 그를 돕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마 언젠간 오 선생님도 그렇게 되고 말 겁니다. 부디 친절한 이웃이 돼 주십사고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나 (관객석을 향해 중얼거린다) 내가 권씨를 사랑하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차라리 누군가한테 사례금을 듬뿍 얹어서 나대신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편할 것 같은데......
2장 ‘나’의 집
낭독자 원래가 우리 가족이 방을 내놓기로 한 이유가 인정이 아닌 현금이 아쉬워서였다. 권씨네가 우리 집 문간방으로 이사 오던 날은 그 풍경이 가관을 넘어 장관이었다. 보퉁이를 인 배가 부른 권씨의 아내, 그리고 자기가 맨 보퉁이 무게에 휘청대는 권씨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약속보다 나흘이나 먼저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나’의 집에 권씨의 일가가 보퉁이를 매고 찾아온다. ‘나’는 권씨의 짐을 받아들고 이내 문간방으로 향한다.
나 (짐을 내려놓고) 남은 이삿짐은 차로 옵니까?
권씨 아닙니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 아내의 머리부터 대문간에 부려놓은 보퉁이까지 기다란 활을 그린다.) 이게 전부 답니다. (멋쩍은 듯 웃는다)
아내 (나에게 소곤대며)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요!
나 먼젓번 살던 방을 오늘 꼭 비워둬야만 할 형편이었다잖아. 약속이 틀려도 어차피 안 쓰는 방이니까 나흘쯤 앞당겨 들어왔대서 뭐......
아내 그게 아녜요
나 걱정 마. 수일 내로 마저 다 챙기겠다고 약속했어.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절반만 내고 입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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