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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뀌었다. 친구 쥐는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있고 크리스마스마다 주인공에게 작품을 보내주고 있다.
왼 손가락이 네 개였던 그녀는 그 후 만날 수 없었고,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있었던 바닷가에서 그녀의 흔적을 떠올린다.
마지막에 작가는 서두에 언급했던 작가 데릭 하트필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썼던 수많은 모험과 괴기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취향 그리고 1938년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이야기.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이 니체의 말이 인용되어 적혀 있다고 한다.
"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하루키는 모호함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확실한 인과관계나 서사로 이어진 이야기의 구조가 아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확실히 서로 이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의 짜임으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손가락이 하나가 잘린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쌍둥이 자매, 병원에 불치병으로 입원해 있는 동생과 그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대학까지 그만두고 동생을 간호를 하는 언니,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던 고등학교 동창 여학생(그녀는 병으로 대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와 세 번째로 섹스를 나누었다가 대학가 숲에서 자살을 한 전 여자친구, 모두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한 연관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루키는 상실의 감정을 자극한다. 모호함으로 끌어들이고 창조한 소설 속의 세계에 동참하게 만들어 함께 꿈꾸게 한다. 같이 꿈을 꾸기에 조금은 속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을 꿈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작품을 다 읽고, 뒷장 역자의 평을 읽기 전엔, 가상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가 진짜 실제 하는 작가인 줄 알았다. 작품 해설자의 말에 의하면 작가의 설정, 장치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자체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써내려 갔다고 하면, 굳이 이런 설정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 먹는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읽는 이를 꿈꾸게 하기에 매력적이다. 특히 이 작품을 읽으면 작가 하루키에게 처음 소설을 써 내려가게 만들었던 그(하루키)만의 집필 충동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가 있어서, 그런 귀중한 첫 작품이라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욱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읽어나갔던 작품이었다.
왼 손가락이 네 개였던 그녀는 그 후 만날 수 없었고,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있었던 바닷가에서 그녀의 흔적을 떠올린다.
마지막에 작가는 서두에 언급했던 작가 데릭 하트필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썼던 수많은 모험과 괴기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취향 그리고 1938년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이야기.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이 니체의 말이 인용되어 적혀 있다고 한다.
"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하루키는 모호함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확실한 인과관계나 서사로 이어진 이야기의 구조가 아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확실히 서로 이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의 짜임으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손가락이 하나가 잘린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쌍둥이 자매, 병원에 불치병으로 입원해 있는 동생과 그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대학까지 그만두고 동생을 간호를 하는 언니,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던 고등학교 동창 여학생(그녀는 병으로 대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와 세 번째로 섹스를 나누었다가 대학가 숲에서 자살을 한 전 여자친구, 모두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한 연관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루키는 상실의 감정을 자극한다. 모호함으로 끌어들이고 창조한 소설 속의 세계에 동참하게 만들어 함께 꿈꾸게 한다. 같이 꿈을 꾸기에 조금은 속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을 꿈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작품을 다 읽고, 뒷장 역자의 평을 읽기 전엔, 가상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가 진짜 실제 하는 작가인 줄 알았다. 작품 해설자의 말에 의하면 작가의 설정, 장치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자체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써내려 갔다고 하면, 굳이 이런 설정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 먹는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읽는 이를 꿈꾸게 하기에 매력적이다. 특히 이 작품을 읽으면 작가 하루키에게 처음 소설을 써 내려가게 만들었던 그(하루키)만의 집필 충동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가 있어서, 그런 귀중한 첫 작품이라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욱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읽어나갔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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