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기어서 형한테 온 이상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헥토르는 살아 돌아온 동생의 원수인 메넬라오스를 칼로 찔러 죽였다. 헥토르 입장에서는 고통스럽겠지만 전쟁의 명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헥토르로서는 무슨 상황이 그려질지 뻔히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조국이 위협 받는 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이성적 판단을 잘 함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자신의 이성을 접어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신을 모셨기 때문에 접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헥토르는 전쟁 때에 실제 자신이 놓여진 상황, 조국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상황에 대처하여 전쟁을 준비하려 했다.
모든 상황에 침착하고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였다.
철저하게 모든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였으나 결국 다른 원인으로 인해 그 상황에서 고비를 맞고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헥토르는 죽음을 맞게 된다.
헥토르의 죽음은 굉장히 숭고하고 아름답고 희생적인 죽음이나 이성적 판단에 있어서 안타까움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습도 영웅의 면모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스는 아마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무턱대고 데리고 온 면에서 이성적인 면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니면 이성적인 판단이 오히려 되어서 배에 올라 타서야 자신이 헬레네를 데려 왔다고 형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에 댓가를 치르지 못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판단하여 데려오고 벌여진 일을 형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냐며 물어오고, 그 어리석은 판단으로 조국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였다.
판단에 대한 댓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은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다고 보고 자신의 개인 감정 때문에 국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백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영웅의 면모와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 때문에 그 이성적인 판단을 앞질러 버리는 것은 영웅이 할 행동은 더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개인적인 감정으로 특히 여자의 문제로 자신의 가족도 버리고 조국도 버리고 그리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다시 조국의 품으로 가족의 품으로 피신하는 것은 전혀 영웅의 행동 답다고 보지 못한다.
아킬레우스의 이성적인 면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의 전쟁 참가 이유도 개인적인 욕구 때문이고, 심지어 모든 전쟁 활동을 개인적인 분노와 원한으로 참가하였다.
아가멤논으로 인한 자신의 화가 누그러지지 않으면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자신의 사촌동생의 죽음을 보자마자 보복심으로 불타 전쟁에 참가한 점이 그렇다.
자신의 감정으로 이 전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국가의 용사가 아닌,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용사로 나왔다 해도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병사들을 자신의 개인적 감정에 휘둘려서 통치하면 안된다.
전쟁은 자신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역량을 뽐내는 곳이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곳인데 아킬레우스는 자신만을 위주로 먼저 생각하였다.
자신이 최고임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리스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아킬레우스 자신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자만감이 더욱 그의 제멋대로 하는 행동에 불을 지피었다고 본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참가하라고 설득 했을 때에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욕구를 먼저 생각하고 참가한 면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아마 아킬레우스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신중했더라면 아마 역사에서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활에 맞아 죽음을 맞는 일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킬레스 건이라는 말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의 이성적인 면은 굉장히 높게 쳐줄만 하다. 트로이 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백미로 칭해지는 ‘트로이의 목마’도 이를 뒷받침 해주는 근거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감정을 지닌 아킬레우스를 잘 파악하여 그 감정을 건드려 전쟁에참가하게 한 것도 오디세우스의 언변 때문이다.
트로이의 목마 또한 그리스가 궁지에 몰릴 때 지혜롭게 전략을 짜내어 낸 것도 엄청난 현자가 아니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다.
트로이 목마 안으로 군사들을 넣고 비굴하게 이 목마를 선물로 바친다고 하여 마지막에 신의 한 수를 두고 전쟁의 마지막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엄청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언변과 트로이 목마라는 전략에는 오디세우스의 통치자적 기질도 엿볼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병사를 자신의 힘으로 다스렸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만한 힘이 없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러한 전략을 짤 때 자신의 통치 하에 병사들을 잘 다스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이성적으로 그들을 자신의 전략에서 잘 통치한다고 볼 수 있다. 영웅을 넘어선 통치자의 기질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병사들을 통치할 때 자신을 이미 잘 파악했으므로 백성, 병사까지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적인 모습은 다른 영웅들의 모습에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안나와있지만 신화적인 내용을 곁들여서 오디세우스의 이성적인 면을 파악해 볼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이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묶어 그 유혹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전략을 짰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파악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모습을 나타낸 인물은 오디세우스에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앞에 나온 가족, 동기, 목적에서 부합된 순수한 영웅인 헥토르와 동등하게 영웅으로 추대한 이유이다. 아예 새로운 가치관으로 파악해야하는 인물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면이 보여서 둘을 각각 새로운 기준의 영웅으로 뽑은 것이다.
즉, 헥토르는 순수한 영웅의 자질을 목적, 동기, 가족이라는 가치관에 부합해서 본 것이고 오디세우스는 이성이라는 부분의 자질에서 본 것이다.
헥토르는 살아 돌아온 동생의 원수인 메넬라오스를 칼로 찔러 죽였다. 헥토르 입장에서는 고통스럽겠지만 전쟁의 명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헥토르로서는 무슨 상황이 그려질지 뻔히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조국이 위협 받는 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이성적 판단을 잘 함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자신의 이성을 접어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신을 모셨기 때문에 접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헥토르는 전쟁 때에 실제 자신이 놓여진 상황, 조국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상황에 대처하여 전쟁을 준비하려 했다.
모든 상황에 침착하고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였다.
철저하게 모든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였으나 결국 다른 원인으로 인해 그 상황에서 고비를 맞고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헥토르는 죽음을 맞게 된다.
헥토르의 죽음은 굉장히 숭고하고 아름답고 희생적인 죽음이나 이성적 판단에 있어서 안타까움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습도 영웅의 면모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스는 아마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무턱대고 데리고 온 면에서 이성적인 면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니면 이성적인 판단이 오히려 되어서 배에 올라 타서야 자신이 헬레네를 데려 왔다고 형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에 댓가를 치르지 못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판단하여 데려오고 벌여진 일을 형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냐며 물어오고, 그 어리석은 판단으로 조국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였다.
판단에 대한 댓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은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다고 보고 자신의 개인 감정 때문에 국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백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영웅의 면모와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 때문에 그 이성적인 판단을 앞질러 버리는 것은 영웅이 할 행동은 더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개인적인 감정으로 특히 여자의 문제로 자신의 가족도 버리고 조국도 버리고 그리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다시 조국의 품으로 가족의 품으로 피신하는 것은 전혀 영웅의 행동 답다고 보지 못한다.
아킬레우스의 이성적인 면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의 전쟁 참가 이유도 개인적인 욕구 때문이고, 심지어 모든 전쟁 활동을 개인적인 분노와 원한으로 참가하였다.
아가멤논으로 인한 자신의 화가 누그러지지 않으면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자신의 사촌동생의 죽음을 보자마자 보복심으로 불타 전쟁에 참가한 점이 그렇다.
자신의 감정으로 이 전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국가의 용사가 아닌,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용사로 나왔다 해도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병사들을 자신의 개인적 감정에 휘둘려서 통치하면 안된다.
전쟁은 자신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역량을 뽐내는 곳이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곳인데 아킬레우스는 자신만을 위주로 먼저 생각하였다.
자신이 최고임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리스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아킬레우스 자신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자만감이 더욱 그의 제멋대로 하는 행동에 불을 지피었다고 본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참가하라고 설득 했을 때에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욕구를 먼저 생각하고 참가한 면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아마 아킬레우스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신중했더라면 아마 역사에서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활에 맞아 죽음을 맞는 일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킬레스 건이라는 말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의 이성적인 면은 굉장히 높게 쳐줄만 하다. 트로이 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백미로 칭해지는 ‘트로이의 목마’도 이를 뒷받침 해주는 근거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감정을 지닌 아킬레우스를 잘 파악하여 그 감정을 건드려 전쟁에참가하게 한 것도 오디세우스의 언변 때문이다.
트로이의 목마 또한 그리스가 궁지에 몰릴 때 지혜롭게 전략을 짜내어 낸 것도 엄청난 현자가 아니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다.
트로이 목마 안으로 군사들을 넣고 비굴하게 이 목마를 선물로 바친다고 하여 마지막에 신의 한 수를 두고 전쟁의 마지막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엄청난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언변과 트로이 목마라는 전략에는 오디세우스의 통치자적 기질도 엿볼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병사를 자신의 힘으로 다스렸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만한 힘이 없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러한 전략을 짤 때 자신의 통치 하에 병사들을 잘 다스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이성적으로 그들을 자신의 전략에서 잘 통치한다고 볼 수 있다. 영웅을 넘어선 통치자의 기질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병사들을 통치할 때 자신을 이미 잘 파악했으므로 백성, 병사까지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적인 모습은 다른 영웅들의 모습에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안나와있지만 신화적인 내용을 곁들여서 오디세우스의 이성적인 면을 파악해 볼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이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묶어 그 유혹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전략을 짰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파악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모습을 나타낸 인물은 오디세우스에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앞에 나온 가족, 동기, 목적에서 부합된 순수한 영웅인 헥토르와 동등하게 영웅으로 추대한 이유이다. 아예 새로운 가치관으로 파악해야하는 인물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면이 보여서 둘을 각각 새로운 기준의 영웅으로 뽑은 것이다.
즉, 헥토르는 순수한 영웅의 자질을 목적, 동기, 가족이라는 가치관에 부합해서 본 것이고 오디세우스는 이성이라는 부분의 자질에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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