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영성의 주류를 이룬다.
지난 2 세기 내지 4세기 동안 아시아 상황에서 교회와 선교가 희랍-로마 모델위에 문화화를 시도했기에 결국 실패했다고 본다. 비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토착화와 문화화 모델을 \"연막전술\"과 \"카멜레온의 솜씨\"로 비유하며 단호히 거절한다.26)
그리스도교화를 시도한 북유럽 모델은 아시아에는 너무 늦었다고 단정한 피어리스는 약간의 유익은 인정한다. 즉 중세 초기 경험인 북유럽 모델은 적어도 아시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아시아에 전혀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피어리스는 의도적으로 정령론(animism)이란 용어를 쓰지 않음)와 \'초우주적 종교\'(기독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로 나누며, 이 두 종류의 종교심이 서로 상대방에게 자연적 보완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초우주적 종교가 중세 초기의 유럽과 지금의 아시아에 조금 남겨져 있는 부족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문화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우주적 종교심의 맥락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역으로 우주적 종교는 일종의 개방된 영성이어서 초우주적 종교로부터 초월적 방향이 제시되기를 기다린다. 결국 피어리스는 대체가 아니라 조화와 긴장을 추구한다. 아울러 우주적 종교성이 초우주적 종교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고 보존하는 전제하에서 문화화를 추구하는 한 아시아 부족사회에 우주적 종교성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역(인도, 필리핀, 동남 아시아 일부)에 북유럽 모델을 통한 문화화의 가능성을 둔다. 그러나 대다수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독교 이외의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성을 길들였기에 문화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27)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에서와는 달리 아시아 종교심의 특징은 우주적 종교가 순수하고 원시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개는 힌두교, 불교, 도교라는 \'초우주적 구원사상\'에 의해서 사실상 지배당하거나 그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 형태로 되었다.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초주우적 구원사상이 추상적인 경전 속에서(textual)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지역문화의 우주적 종교가 제시하는 세계관 속에서 맥락을 같이하여(contextual) 존재해 왔음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는 \'구원을 베푸는 종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시아와 다른 지역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아시아 신학, 아시아 상황화에 중요한 점이라고 한다. 이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를 길들이거나 동화시킨 아시아에서 어떤 강제나 무력이 아니고는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들어가기다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북유럽의 모델은 아시아에서 좀 늦게 등장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정감에 가장 가깝게 보는 피어리스는 실천은 이론의 첫째가는 요식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수도생활의 전통은 그 자체안에 탁상공론 때문에 잃은 균형을 회복시켜줄 신학을 스스로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서구 수도승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fuga mundi)라는 (영지적) 이상\'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행하는 (아가페적) 투신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수도승의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 사실상 아시아 민중에게 제도적으로 부과된 가난을 들어주는 해방의 방향으로 적극 나아가야만 참된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참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맘몬으로부터 해방된 교회이며, 선택과 결단으로 가난해진 사람들과 환경과 운명으로 가난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참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띈다. 아시아인이 아시아 사람에게 아시아인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할 때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화는 해방의 차원, 즉 복음으로 어우러진 영적, 육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의 적인 맘몬에 대항하여 해방을 이루는 차원을 가진다. 따라서 문화화와 해방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28)
피어리스의 문화화는 아시아 종교성과 가난이라는 영성을 바탕으로 하며 우주적 종교와 초우주적 종교를 구분하여 그 만남과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대화를 추구한다. 이 때 대화란 상호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상당히 불교적이며 급진적인 성격을 뛰기는 하지만,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교회 선교가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것과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맘몬니즘에 대항하여 온전한 문화화와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찰력은 오늘의 아시아 교회 선교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 세기 내지 4세기 동안 아시아 상황에서 교회와 선교가 희랍-로마 모델위에 문화화를 시도했기에 결국 실패했다고 본다. 비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토착화와 문화화 모델을 \"연막전술\"과 \"카멜레온의 솜씨\"로 비유하며 단호히 거절한다.26)
그리스도교화를 시도한 북유럽 모델은 아시아에는 너무 늦었다고 단정한 피어리스는 약간의 유익은 인정한다. 즉 중세 초기 경험인 북유럽 모델은 적어도 아시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아시아에 전혀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피어리스는 의도적으로 정령론(animism)이란 용어를 쓰지 않음)와 \'초우주적 종교\'(기독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로 나누며, 이 두 종류의 종교심이 서로 상대방에게 자연적 보완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초우주적 종교가 중세 초기의 유럽과 지금의 아시아에 조금 남겨져 있는 부족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문화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우주적 종교심의 맥락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역으로 우주적 종교는 일종의 개방된 영성이어서 초우주적 종교로부터 초월적 방향이 제시되기를 기다린다. 결국 피어리스는 대체가 아니라 조화와 긴장을 추구한다. 아울러 우주적 종교성이 초우주적 종교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고 보존하는 전제하에서 문화화를 추구하는 한 아시아 부족사회에 우주적 종교성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역(인도, 필리핀, 동남 아시아 일부)에 북유럽 모델을 통한 문화화의 가능성을 둔다. 그러나 대다수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독교 이외의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성을 길들였기에 문화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27)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에서와는 달리 아시아 종교심의 특징은 우주적 종교가 순수하고 원시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개는 힌두교, 불교, 도교라는 \'초우주적 구원사상\'에 의해서 사실상 지배당하거나 그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 형태로 되었다.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초주우적 구원사상이 추상적인 경전 속에서(textual)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지역문화의 우주적 종교가 제시하는 세계관 속에서 맥락을 같이하여(contextual) 존재해 왔음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는 \'구원을 베푸는 종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시아와 다른 지역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아시아 신학, 아시아 상황화에 중요한 점이라고 한다. 이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를 길들이거나 동화시킨 아시아에서 어떤 강제나 무력이 아니고는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들어가기다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북유럽의 모델은 아시아에서 좀 늦게 등장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정감에 가장 가깝게 보는 피어리스는 실천은 이론의 첫째가는 요식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수도생활의 전통은 그 자체안에 탁상공론 때문에 잃은 균형을 회복시켜줄 신학을 스스로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서구 수도승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fuga mundi)라는 (영지적) 이상\'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행하는 (아가페적) 투신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수도승의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 사실상 아시아 민중에게 제도적으로 부과된 가난을 들어주는 해방의 방향으로 적극 나아가야만 참된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참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맘몬으로부터 해방된 교회이며, 선택과 결단으로 가난해진 사람들과 환경과 운명으로 가난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참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띈다. 아시아인이 아시아 사람에게 아시아인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할 때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화는 해방의 차원, 즉 복음으로 어우러진 영적, 육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의 적인 맘몬에 대항하여 해방을 이루는 차원을 가진다. 따라서 문화화와 해방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28)
피어리스의 문화화는 아시아 종교성과 가난이라는 영성을 바탕으로 하며 우주적 종교와 초우주적 종교를 구분하여 그 만남과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대화를 추구한다. 이 때 대화란 상호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상당히 불교적이며 급진적인 성격을 뛰기는 하지만,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교회 선교가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것과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맘몬니즘에 대항하여 온전한 문화화와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찰력은 오늘의 아시아 교회 선교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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