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구세력의 청산
: 낭천제와 문소전 논의
2. 붕당의 출현
1) 선배사류와 후배사류 : 이조정랑 천거문제
2) 재령지방 살주노에 대한 옥사의 처리문제
Ⅲ. 결론
Ⅱ. 본론
1. 구세력의 청산
: 낭천제와 문소전 논의
2. 붕당의 출현
1) 선배사류와 후배사류 : 이조정랑 천거문제
2) 재령지방 살주노에 대한 옥사의 처리문제
Ⅲ. 결론
본문내용
여부를 두고 남인(南人)·북인(北人)으로 갈라섰으며 여기서 북인은 선조 32년(1599년) 또 다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당시 대북은 광해군을,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하였으나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이 바로 왕위에 오르면서 소북은 실각하게 되었다. 이 때 대북에 속했던 사람은 이산해·이이첨·정인홍·홍여순·허균 등이며 선조 말 ~ 광해군 초에 걸쳐 대북은 또 다시 육북(肉北)·골북(骨北)·중북(中北)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Ⅲ. 결론
조선사에서 16~17세기는 사림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사림의 집권에 따라 붕당정치가 일어난 시대이다. 사림세력이 유향소에 기반을 둔 재야 유생에서 출발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사림세력은 기성 훈구세력과 연산군으로부터 사화라는 탄압을 받아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성리학을 통해 사림정치의 기반을 닦음으로서 16~17세기에 이르러서는 붕당 정치를 통해 정국을 운영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사림세력은 명종 연간 까지는 척신과의 투쟁을 이어오다가 선조 연간에 비로소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사람끼리 다투기 시작하여 이 과정의 결과로 붕당이 대두되었다. 즉, 선조 이전까지는 사림세력 스스로를 군자의 당(眞朋)으로, 훈척 세력을 소인의 무리(爲朋)로 규정하고 투쟁을 위해 사림끼리 규합하였으나 郎薦制(낭천제)와 文昭殿(문소전)논의를 거치며 훈척 세력이 크게 쇠퇴하자 같은 사림세력끼리 정국운영을 놓고 의견을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후의 전개과정은 본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조정랑의 천거문제와 재령지방 옥사의 처리문제를 놓고, 선배사류와 후배사류가 대립하여 각각 심의겸과 김효원을 필두로 하는 서인과 동인의 붕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립각은 선조 연간 격렬하게 전개되어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져 매우 혼미한 양상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국의 혼탁한 양상은 인조반정(1623년) 이 후 서인과 남인 당시의 양대 붕당이 공존하는 체제가 확립되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1. 국사편찬위원회(2003), 『한국사30 -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탐구당
2. 최승희(2002), 『조선의 정치와 사회』, 집문당
3.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Ⅲ. 결론
조선사에서 16~17세기는 사림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사림의 집권에 따라 붕당정치가 일어난 시대이다. 사림세력이 유향소에 기반을 둔 재야 유생에서 출발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사림세력은 기성 훈구세력과 연산군으로부터 사화라는 탄압을 받아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성리학을 통해 사림정치의 기반을 닦음으로서 16~17세기에 이르러서는 붕당 정치를 통해 정국을 운영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사림세력은 명종 연간 까지는 척신과의 투쟁을 이어오다가 선조 연간에 비로소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사람끼리 다투기 시작하여 이 과정의 결과로 붕당이 대두되었다. 즉, 선조 이전까지는 사림세력 스스로를 군자의 당(眞朋)으로, 훈척 세력을 소인의 무리(爲朋)로 규정하고 투쟁을 위해 사림끼리 규합하였으나 郎薦制(낭천제)와 文昭殿(문소전)논의를 거치며 훈척 세력이 크게 쇠퇴하자 같은 사림세력끼리 정국운영을 놓고 의견을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후의 전개과정은 본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조정랑의 천거문제와 재령지방 옥사의 처리문제를 놓고, 선배사류와 후배사류가 대립하여 각각 심의겸과 김효원을 필두로 하는 서인과 동인의 붕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립각은 선조 연간 격렬하게 전개되어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져 매우 혼미한 양상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국의 혼탁한 양상은 인조반정(1623년) 이 후 서인과 남인 당시의 양대 붕당이 공존하는 체제가 확립되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1. 국사편찬위원회(2003), 『한국사30 -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탐구당
2. 최승희(2002), 『조선의 정치와 사회』, 집문당
3.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