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언
제1장 설교의 우위성
제2장 대체할 수 없는 말씀증거
제3장 설교내용과 전달행위
제4장 설교의 형식
제5장 설교행위
제6장 설교자
제7장 회중
제8장 메시지의 성격
제9장 설교자의 준비
제10장 설교준비
제11장 설교의 조직
제12장 예화, 웅변, 유머
제13장 금기사항
제14장 결심의 요청
제15장 함정과 낭만
제16장 영력있는 증거
제1장 설교의 우위성
제2장 대체할 수 없는 말씀증거
제3장 설교내용과 전달행위
제4장 설교의 형식
제5장 설교행위
제6장 설교자
제7장 회중
제8장 메시지의 성격
제9장 설교자의 준비
제10장 설교준비
제11장 설교의 조직
제12장 예화, 웅변, 유머
제13장 금기사항
제14장 결심의 요청
제15장 함정과 낭만
제16장 영력있는 증거
본문내용
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10:13~15)”. 설교자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의미에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과 우리가 스스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교회가 논리과정에 가입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 사람이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전에 그의 인품이 교회에 의해 확증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것은 교회에 의해서 입증되어야 합니다.
제7장 회중
: 여러분들은 ‘여기와 지금’, ‘오늘의 상황’, ‘오늘의 인간’에 계속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성경과 자연(과학자에 의해 파헤쳐진)이 서로 보완적이고 동등한 계시의 권위있는 모양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현대 지식인들을 방해하게 되어 그가 복음을 듣기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바와 같은 식의 세상과 사람, 타락과 기적, 역사 안에 있는 초자연적 역사 등에 관한 말을 그만두고, 종교적인 메시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은, 설교자가 예배가 끝나고 난 뒤 목사실에서 사람들과 대담할 때도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거의 일률적으로 그들이 자기들 특유의 죄에 관해 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 죄 문제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만사해결이라고 생각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그를 대질하여 교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그런 특별한 죄를 제거한다 할지라도 전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전과 같이 똑같은 큰 궁핍에 여전히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8장 메시지의 성격
: 자기의 설교를 들을 회중의 수준을 평가하는 일은 설교자의 의무이며 직무임과 동시에 그 평가가 참되고 정확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설교자가 직면하는 주요 위험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이들이 그 점으로 보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내가 볼 때 사활을 좌우하는 가장 치명적인 실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이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것이 위험스럽고 잘못된 것은 다음 이유에서입니다. 만일 그렇게 가정한다면 모든 예배에 기성신자에게 적합하게 설교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는 항상 교훈적이어서 복음전도적인 요소와 요점은 무시되어 아마 거의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부흥운동과 대 성령운동의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교회의 세례받은 자녀들을 기독교 교인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높아갔습니다. 그 결과 설교자가 모든 청중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고는 복음전도를 위한 설교가 그치게 되어 결국 전도예배가 전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이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고는 목사는 건덕을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로 복음의 능력을 안 적이, 죄를 깨우칠 만한 설교를 들은 적이 없는 한 세대가 자랐습니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나는 개인적으로 그 세대에 속합니다.
제9장 설교자의 준비
: 설교자의 준비과정은 첫 번째 전제로 그가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입니다. 그가 항상 책상에 앉아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는 휴일 같은 것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듯이 같은 의미에서 설교자도 휴일이란 없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그는 그의 정상적인 업무로부터 떠나있는 시간이나 휴가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의 소명의 본질과 성격 때문에 그는 자기의 사역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는 그가 행하는 일이나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 위대한 사역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그의 준비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프로그램을 세우십시오. 여러분이 금방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일정한 규칙을 따라 시간을 구분지어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겨보면 아무것도 열중할 수 없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란 종일토록 계속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꼭 길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짧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때마다 부르짖는 것이 참다운 기도입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나는 반드시 책상 위에나 호주머니에 비망록을 준비해 놓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떠올라 나를 감동시킬 때 즉시 나는 그것을 내 비망록에 적어 놓았습니다. 설교자는 다람쥐 같아야 합니다. 다가올 겨울을 위해 양식을 모아서 쌓아놓는 다람쥐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음악이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크게 도움을 줍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제10장 설교준비
: 나는 교리문답을 통해 하는 설교는 믿지 않음을 분명히 해둡니다. 내가 크게 주목하고 있는바 이것을 정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혜로운 처사가 아님을 주장하는데 그 이유로는 진리에 대해 이론적인 태도와 지나치게 지적인 자세를 산출할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교리문답집을 가르치는 것을 신빙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믿습니다. 그러나 내 견해는 이것이 다른 기회에 다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강화의 항목 밑에 집어넣어 일련의 강의로서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 스스로가 교리문답집을 읽어 연구하도록 하고 토론회로 모여서 숙고하게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영적 침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내 설교집 한 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옷을 차려입고 있는데 갑자기 무엇이 짓누르듯이 하나님의 성령이 나에게 ‘영적 침체’에 대해 연속된 설교를 하라고 명하는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내가
제7장 회중
: 여러분들은 ‘여기와 지금’, ‘오늘의 상황’, ‘오늘의 인간’에 계속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성경과 자연(과학자에 의해 파헤쳐진)이 서로 보완적이고 동등한 계시의 권위있는 모양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현대 지식인들을 방해하게 되어 그가 복음을 듣기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바와 같은 식의 세상과 사람, 타락과 기적, 역사 안에 있는 초자연적 역사 등에 관한 말을 그만두고, 종교적인 메시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은, 설교자가 예배가 끝나고 난 뒤 목사실에서 사람들과 대담할 때도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거의 일률적으로 그들이 자기들 특유의 죄에 관해 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 죄 문제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만사해결이라고 생각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그를 대질하여 교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그런 특별한 죄를 제거한다 할지라도 전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전과 같이 똑같은 큰 궁핍에 여전히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8장 메시지의 성격
: 자기의 설교를 들을 회중의 수준을 평가하는 일은 설교자의 의무이며 직무임과 동시에 그 평가가 참되고 정확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설교자가 직면하는 주요 위험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이들이 그 점으로 보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내가 볼 때 사활을 좌우하는 가장 치명적인 실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이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것이 위험스럽고 잘못된 것은 다음 이유에서입니다. 만일 그렇게 가정한다면 모든 예배에 기성신자에게 적합하게 설교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는 항상 교훈적이어서 복음전도적인 요소와 요점은 무시되어 아마 거의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부흥운동과 대 성령운동의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교회의 세례받은 자녀들을 기독교 교인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높아갔습니다. 그 결과 설교자가 모든 청중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고는 복음전도를 위한 설교가 그치게 되어 결국 전도예배가 전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이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고는 목사는 건덕을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로 복음의 능력을 안 적이, 죄를 깨우칠 만한 설교를 들은 적이 없는 한 세대가 자랐습니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나는 개인적으로 그 세대에 속합니다.
제9장 설교자의 준비
: 설교자의 준비과정은 첫 번째 전제로 그가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입니다. 그가 항상 책상에 앉아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는 휴일 같은 것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듯이 같은 의미에서 설교자도 휴일이란 없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그는 그의 정상적인 업무로부터 떠나있는 시간이나 휴가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의 소명의 본질과 성격 때문에 그는 자기의 사역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는 그가 행하는 일이나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 위대한 사역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그의 준비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프로그램을 세우십시오. 여러분이 금방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일정한 규칙을 따라 시간을 구분지어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겨보면 아무것도 열중할 수 없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란 종일토록 계속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꼭 길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짧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때마다 부르짖는 것이 참다운 기도입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나는 반드시 책상 위에나 호주머니에 비망록을 준비해 놓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떠올라 나를 감동시킬 때 즉시 나는 그것을 내 비망록에 적어 놓았습니다. 설교자는 다람쥐 같아야 합니다. 다가올 겨울을 위해 양식을 모아서 쌓아놓는 다람쥐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음악이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크게 도움을 줍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제10장 설교준비
: 나는 교리문답을 통해 하는 설교는 믿지 않음을 분명히 해둡니다. 내가 크게 주목하고 있는바 이것을 정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혜로운 처사가 아님을 주장하는데 그 이유로는 진리에 대해 이론적인 태도와 지나치게 지적인 자세를 산출할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교리문답집을 가르치는 것을 신빙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믿습니다. 그러나 내 견해는 이것이 다른 기회에 다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강화의 항목 밑에 집어넣어 일련의 강의로서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 스스로가 교리문답집을 읽어 연구하도록 하고 토론회로 모여서 숙고하게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영적 침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내 설교집 한 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옷을 차려입고 있는데 갑자기 무엇이 짓누르듯이 하나님의 성령이 나에게 ‘영적 침체’에 대해 연속된 설교를 하라고 명하는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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