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도세자의 죽음에 앞장섰던 홍봉한, 즉 해경궁의 아버지, 정조 자신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홍봉한을 사사 시키려 하였으나 어머니인 해경궁의 단식투쟁으로 인해 처벌에 어려움이 있었고 해경궁 입장에선 아들과 아버지, 친척들 사이에서 참으로 기고한 운명 이였던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높이고 위해서 규장각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였는데 당론에 물들지 않은 문신들을 양성해 자신의 개혁 정치 세력을 형성하려는 목적이었다. 또한 장용영이란 왕권 강화와 개혁적 무신을 양성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 자신의 친위대를 운영하였으며 역사의 길이 남은 수원화성이란 군사도시의 건설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으로 이주시키고 현륭원이라 명칭한다. 정조는 그 후 1796년 어머니의 환갑날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고 아버지 의 능행을 참배 하기 위해 수원화성으로 행차를 하는데 그때의 행렬 인원이 6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때 행차도중 어머니가 드실 음식까지도 직접 신경써서 올렸다고 하는데 그 날 해경궁은 자신의 아들인 정조를 보면서 참으로 뿌듯하고 기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환갑날 이라 하여 백성들을 초대하여 음식까지 나눠 주었고 어머니의 환갑을 성대하게 축하 해주었다. 하지만 4년 후 1800년에 정조는 승하했다. 정조는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이라 스스로 이름을 불였는데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개의 내천을 달이 비춘다. 즉 나라의 모든 곳이 안 닿는 곳이 없고 비추어 본다. 라는 뜻이다. 참으로 멋진 정조대왕,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해경궁은 아들과 남편도 없이 15년을 더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왕실의 여인중 한 명인 해경궁은 한 평생 당파의 격쟁과 남편의 죽음과 자신보다 먼저 떠난 아들, 자신의 아들의 손에 아버지와 친인척들을 어쩔 수 없이 숙청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고 숨죽여 야했던 비운의 여인 해경궁 홍씨 어떠한 심정으로 살아 지내셨을지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이미 과거의 역사지만 생각해본다.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아 나라를 다스렸다면 일제강점기 조차도 없지 않았을까 재밌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정조가 죽고 나선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나라가 망조로 기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역사이다. 이런 대한민국에 역사적 배경과 기록이 있기에 현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있다고 확신한다. 후대에 한중록 기록을 남겨준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해경궁께 감사하다.
나는 이미 과거의 역사지만 생각해본다.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아 나라를 다스렸다면 일제강점기 조차도 없지 않았을까 재밌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정조가 죽고 나선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나라가 망조로 기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역사이다. 이런 대한민국에 역사적 배경과 기록이 있기에 현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있다고 확신한다. 후대에 한중록 기록을 남겨준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해경궁께 감사하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