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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지역과 만주지역을 차지한 뒤 1632년에는 조선에 형제지맹(兄弟之盟)에서 군신지의(君臣之義)를 요구하면서 명나라 공격에 필요한 군사와 군량을 공급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1636년에 후금은 국호를 淸으로 바꾸었으며, 태종의 즉위식에 참석한 조선의 사신이 신하국으로 갖추어야 할 예를 거부하자 조선에 국서를 보내 왕세자를 보내서 사죄하지 않으면 대군을 동원하여 침략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조선에서는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뉘어 싸우고, 이를 본 청태종은 11월에 왕자와 척화론자를 압송하지 않으면 침략하겠다고 거듭 위협하였으나, 조선에서 이를 계속 무시하자 인조 14년인 1636년 12월 9일에 압록강을 건너 침략하였다. 이 사실을 조선왕은 13일에야 알았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말해야 하나. 14일에 강화도로 피난하려 하였으나 이미 개성을 통과한 청군 때문에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하게 된 것이다. 인조는 명나라에 급히 사신을 보내 원군을 요청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나중에 원군을 보내주었으나 심한 파도로 회군하고 말았다. 임금과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마자 16일에 청군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이듬해인 1637년 1월에는 청태종이 도착하여 강가에 진을 쳤으며, 남한산성은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이 때 남한산성에는 12천명 가량이 있었으며 식량은 50여일치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47일간 항전을 하다가 식량이 떨어지고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주화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삼전도까지 내려와 머리를 땅에 찧으며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상이 간단하게 살펴본 병자호란의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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