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Ι. 백제의 가야 지역 경략
1. 己汶에 대한 간섭 및 경유
2. 帶沙 진출
3. 백제의 남한지역 진출
Ⅱ. 가야제국의 대응
1. 백제의 기문 영유와 대가야연맹의 대응
2.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1. 己汶에 대한 간섭 및 경유
2. 帶沙 진출
3. 백제의 남한지역 진출
Ⅱ. 가야제국의 대응
1. 백제의 기문 영유와 대가야연맹의 대응
2.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본문내용
물건을 다 빼앗겼다고 한 것 역시 대사를 중심으로 한 섬진강 하류지역을 지키려는 반파국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려준다.
백제는 516년까지 기문을 완전히 점령한 다음, 섬진강을 남하하여 대사를 공경한다. 반파국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연맹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522년까지는 이미 대사지방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2.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이러한 상황 하에서 대가야연맹은 신라와 적대하는 전략을 버리고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신라가 협공해오는 사태를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라는 이 동맹을 이용해 대가야연맹에 대해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신라왕녀를 따라온 종자 100인이 새로운 복식제에 따른 신라복식을 함에 따라 양국의 혼인동맹이 파탄에 이르었기도 하였다. 당연히 가야제국 내에서 신라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가야에 대한 신라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이다.
이러한 신라 측의 의도로 인해 522~529년에 이르는 가야와 신라의 짧은 혼인동맹은 종말을 고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신라는 가야의 여덟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이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파국을 중심으로 대가야연맹의 대응은 일단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저지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자 신라에 대하여 무력을 통한 항전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후 대가야연맹은 백제가 기문과 대사 등을 영유한 현실을 인정하고 백제와 타협하게 된다. 541년에는 고령·초계·합천·의령 부림(?)·진주 등 대가야연맹에 속하는 가야제국들이 백제조정에 참열하게 된다. 이때부터 백제와 대가야연맹에 속한 가야제국과의 관계는 552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는 516년까지 기문을 완전히 점령한 다음, 섬진강을 남하하여 대사를 공경한다. 반파국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연맹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522년까지는 이미 대사지방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2.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이러한 상황 하에서 대가야연맹은 신라와 적대하는 전략을 버리고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신라가 협공해오는 사태를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라는 이 동맹을 이용해 대가야연맹에 대해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신라왕녀를 따라온 종자 100인이 새로운 복식제에 따른 신라복식을 함에 따라 양국의 혼인동맹이 파탄에 이르었기도 하였다. 당연히 가야제국 내에서 신라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가야에 대한 신라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이다.
이러한 신라 측의 의도로 인해 522~529년에 이르는 가야와 신라의 짧은 혼인동맹은 종말을 고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신라는 가야의 여덟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이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파국을 중심으로 대가야연맹의 대응은 일단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저지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자 신라에 대하여 무력을 통한 항전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후 대가야연맹은 백제가 기문과 대사 등을 영유한 현실을 인정하고 백제와 타협하게 된다. 541년에는 고령·초계·합천·의령 부림(?)·진주 등 대가야연맹에 속하는 가야제국들이 백제조정에 참열하게 된다. 이때부터 백제와 대가야연맹에 속한 가야제국과의 관계는 552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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