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 대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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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 1차 대전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요
2. 참전국 현황
3. 세계 1차 대전의 배경
4. 세계 1차 대전의 발발
5. 전쟁의 전개
6. 미국의 개입, 동맹국의 항복
7. 전쟁의 결과

본문내용

주며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였다. 치머만 전보 사건의 내용은 미국이 전쟁에 참여할 시, 멕시코가 동맹국의 편에 서서 협상국에 대항한다면 미국과 멕시코 전쟁의 패배로 멕시코가 상실한 뉴멕시코, 텍사스, 애리조나 등의 지역을 되찾아주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치머만 전보가 미국인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독일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고 열국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협상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전황을 180°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레닌이 러시아에서 혁명을 성공시키면 독일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독일 망명 중이던 레닌을 러시아로 귀국시켰는데 이는 독일 입장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독일과 러시아는 강화를 맺었다. 이에 독일은 서부 전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참전과 영국의 강력한 해상봉쇄로 인해 동맹국의 전황은 차츰 불리해져만 갔다. 1917년 3월, 영국군은 오스만 제국 도시인 바그다드를 점령한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을 점령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6. 미국의 개입, 동맹국의 항복
1917년 이후, 서부 전선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대(對)독일 해상봉쇄는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이루어졌으며 독일은 외부로부터 전쟁 물자를 공급받지 못해 피해가 누적되었다. 더 나아가 4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독일은 인적 및 경제적 손실이 누적되어 국가가 전체적으로 피폐해졌다. 더 나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가 협상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였으며 기존 동맹국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하면서 협상국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갈수록 전황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으며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세계 대전에 참전을 발표하며 동맹국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되었다. 1918년 1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평화 14개 조를 발표하며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다. 민족자결주의의 내용에는 각 민족은 그들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던 약소 민족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하지만,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운 이유는 우리나라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식민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피지배 민족인 세르비아를 비롯한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등 여러 민족의 분리독립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위함이었다. 실제 종전 후, 오스트리
아-헝가리 제국은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여러 국가로 분열되었다. 1918년 3월 이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 1차 대전에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원정군 90만 명을 포함한 협상국은 독일을 상대로 백일 전투를 펼쳤으며 독일의 서부 전선, 이탈리아 전선, 중동 전선, 마케도니아 전선을 함락시켰다. 갈수록 동맹국의 전황이 악화하였으며 1918년 9월 29일, 테살로니키 휴전 협정을 통해 불가리아 왕국이 동맹국에서 이탈하였고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휴전 협정을 통해 오스만 제국이 항복하였으며 1918년 11월 3일, 빌라주스티 휴전 협정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또한 항복하였다. 마지막으로 1918년 11월 11일, 콩피에뉴 휴전 협정을 통해 독일 제국이 항복하면서 세계 1차 대전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7. 전쟁의 결과
전쟁의 결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게는 매우 가혹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폴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여러 국가에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를 할양하였으며 빌헬름 2세가 퇴위 되면서 독일 황실이 붕괴하여 바이마르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거대했던 오스만 제국은 국토 70% 이상의 엄청난 수준의 영토를 잃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여러 국가로 분리되었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로부터 할양받은 땅을 바탕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루마니아는 세계 1차 대전 동안 전 국토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점령되는 치욕을 맛봤으나 전쟁 후, 오스트리아로부터 부코비나, 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 불가리아로부터 남도브루자, 러시아로부터 베사라비아를 획득하여 전쟁 전보다 영토가 2배 이상 증가하는 잭팟을 터뜨렸다. 일본은 제1차 대전을 바탕으로 유럽에 많은 전쟁 물자를 판매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으며 독일의 아시아, 오세아니아 식민지와 중국의 이권을 획득하였다.
독일의 경우, 엄청난 양의 군비를 차용함으로써 국가채무가 굉장한 수준에 달했다. 독일 외에도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평균 35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특히 독일 바이바르 정부가 들어설 때 마르크화에 대한 인플레이션율이 3년 만에 1억 배 상승하여 마르크화가 휴짓조각으로 전락하는 등 독일 경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독일의 이러한 처참한 상황과는 반대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 및 식량, 자원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으며 점차 세계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는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신해서 공장을 비롯한 여러 산업군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발언권을 향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은 그동안 유럽 내 수많은 왕정 몰락의 신호탄을 울린 전쟁으로 평가된다. 대전 이후 독일, 러시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왕정이 폐지되었다. 또한, 세계 1차 대전은 과학이 전쟁에 동조하고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이 불어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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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1.01
  • 저작시기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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