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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진위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에서도 환단고기는 거짓으로 포장된 위서라고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환단고기가 위서이냐 아니냐를 노하기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드라마와 영화처럼 허구를 더해 창조되고 있는 문화컨텐츠의 역사 왜곡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결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 해서 가공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분명한 것은 가상의 내용이 더해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한 소재로 허구라는 것을 인식하느냐와 역사서라는 포장으로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과 같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허구라는 예술의 영역과 거짓을 진실이라고 외치는 왜곡의 의미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이다.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이유는 태백교의 경전으로 쓰기 위한 특정한 목적이 가미되었다는 점과 원작자인 이유립의 가문인 고성 이씨를 찬양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유립 본인을 민족투사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고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출처 및 참고 문헌
유사역사학 비판, 이문영, 역사비평사, 2018.11.30
재미있는 부분은 진위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에서도 환단고기는 거짓으로 포장된 위서라고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환단고기가 위서이냐 아니냐를 노하기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드라마와 영화처럼 허구를 더해 창조되고 있는 문화컨텐츠의 역사 왜곡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결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 해서 가공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분명한 것은 가상의 내용이 더해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한 소재로 허구라는 것을 인식하느냐와 역사서라는 포장으로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과 같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허구라는 예술의 영역과 거짓을 진실이라고 외치는 왜곡의 의미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이다.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이유는 태백교의 경전으로 쓰기 위한 특정한 목적이 가미되었다는 점과 원작자인 이유립의 가문인 고성 이씨를 찬양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유립 본인을 민족투사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고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출처 및 참고 문헌
유사역사학 비판, 이문영, 역사비평사,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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