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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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II. 본론
III. 결론
IV. 참고문헌
I. 서론
II. 본론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면, 문의(文意)를 원만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음조(音調)가 잘 맞고, 전고(典故)의 사용이 전반적으로 적절하다. 또한, 이는 ‘화려함이 많으나 부박하지는 않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큼 잘 저술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명’은 ‘비문’이라는 글의 성격 때문에 당시 그가 비문이 아닌 다른 형식의 글에서 어떤 문체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나 평가를 위해 사용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비문과는 달리 ‘사산비명’에서는 당대 학자들의 철학적, 사상적 바탕을 다수 발견할 수 있고 토지제도 등 당시 정책들의 편린을 엿볼 수 있으며 최치원의 철학적 사상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최치원은 중국(당나라)에까지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아주 박식한 인물이었으며, 이에 다양한 전거 및 고사에 능통하였다. 이는 사산비명에 속한 4개의 비문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그는 많은 문장에 중국의 전거와 고사를 활용하고 있다. 즉, 사산비명의 문장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유교, 도교, 불교 및 여러 고전들을 비롯하여 각종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과 더불어 변려문으로 작성되었다는 특징 때문에 ‘사산비명’은 그 해석이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음조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고 각종 수사기법을 활용하는 변려문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정갈한 문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당시 당나라의 모든 공식문서에서 사용되었으며 과거시험에서 요구하던 문체이기도 한 변려문에 능통했던 최치원이 작성했던 비문인만큼, ‘사산비명’에는 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해온 지식과 고급의 문장들이 모두 모여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산비명’ 해석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III. 결론
문학은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라면 언제든, 어디서든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선조들이 저술해왔던 다양한 문학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글이 본격적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사용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은 ‘한문학’의 하나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해왔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의 한문학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신라 하대부터였는데, 이는 왕실이 붕괴하고 육두품 출신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부터 시작된 풍조라고 볼 수 있다. 육두품으로서 관료 사회에 진출한 이들 중 상당수는 당나라로 유학을 갔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서의 한문학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유학을 통해 중국의 한문학을 받아들이고 한국 한문학을 발전시킨 여러 학자들 중에서도 ‘최치원’의 업적은 특히나 돋보인다. 그는 시문집을 비롯하여 결사 발원문, 승전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저술을 남겼고, 외교 문서, 연표 등을 다수 작성하기도 하였다. 특히나 그가 작성했던 ‘계원필경집’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국 최고(最古)의 문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저술한 ‘계원필경집’이 그가 당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이었다면, 본 보고서에서 살펴본 ‘사산비명’은 그가 귀국한 이후의 글을 담고 있다. 특히나 그의 글은 당대의 사상을 담고 있으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불교사적으로도 좋은 사료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한국 한문학의 갈래, 양식을 비롯하여 ‘변려문’과 한국 한문학 산문의 대표격인 ‘사산비명’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한국 한문학 작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한국한문학은 선인들의 사상과 이를 반영한 문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고, 때문에 앞으로도 <사산비명(四山碑銘)>을 비롯한 한국 한문학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IV. 참고문헌
손종흠·안대회. (2016). 한국한문학의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장예. (2022). 중국의 한국문학사에 나타난 ‘최치원’ 기술(記述) 양상 연구. 배달말,(71), 529-570.
최경애. (2021). 유학자로서의 최치원(崔致遠)의 위상과 면모-『조선왕조실록』과 ‘사산비명(四山碑銘)’을 중심으로. 동서철학연구,(101), 97-116.
김수진. (2019). 조선후기 소품문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 한국한문학연구,(73), 267-301.
최치원의 ‘사산비명’은 ‘비문’이라는 글의 성격 때문에 당시 그가 비문이 아닌 다른 형식의 글에서 어떤 문체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나 평가를 위해 사용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비문과는 달리 ‘사산비명’에서는 당대 학자들의 철학적, 사상적 바탕을 다수 발견할 수 있고 토지제도 등 당시 정책들의 편린을 엿볼 수 있으며 최치원의 철학적 사상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최치원은 중국(당나라)에까지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아주 박식한 인물이었으며, 이에 다양한 전거 및 고사에 능통하였다. 이는 사산비명에 속한 4개의 비문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그는 많은 문장에 중국의 전거와 고사를 활용하고 있다. 즉, 사산비명의 문장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유교, 도교, 불교 및 여러 고전들을 비롯하여 각종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과 더불어 변려문으로 작성되었다는 특징 때문에 ‘사산비명’은 그 해석이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음조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고 각종 수사기법을 활용하는 변려문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정갈한 문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당시 당나라의 모든 공식문서에서 사용되었으며 과거시험에서 요구하던 문체이기도 한 변려문에 능통했던 최치원이 작성했던 비문인만큼, ‘사산비명’에는 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해온 지식과 고급의 문장들이 모두 모여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산비명’ 해석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III. 결론
문학은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라면 언제든, 어디서든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선조들이 저술해왔던 다양한 문학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글이 본격적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사용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은 ‘한문학’의 하나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해왔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의 한문학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신라 하대부터였는데, 이는 왕실이 붕괴하고 육두품 출신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부터 시작된 풍조라고 볼 수 있다. 육두품으로서 관료 사회에 진출한 이들 중 상당수는 당나라로 유학을 갔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서의 한문학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유학을 통해 중국의 한문학을 받아들이고 한국 한문학을 발전시킨 여러 학자들 중에서도 ‘최치원’의 업적은 특히나 돋보인다. 그는 시문집을 비롯하여 결사 발원문, 승전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저술을 남겼고, 외교 문서, 연표 등을 다수 작성하기도 하였다. 특히나 그가 작성했던 ‘계원필경집’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국 최고(最古)의 문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저술한 ‘계원필경집’이 그가 당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이었다면, 본 보고서에서 살펴본 ‘사산비명’은 그가 귀국한 이후의 글을 담고 있다. 특히나 그의 글은 당대의 사상을 담고 있으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불교사적으로도 좋은 사료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한국 한문학의 갈래, 양식을 비롯하여 ‘변려문’과 한국 한문학 산문의 대표격인 ‘사산비명’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한국 한문학 작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한국한문학은 선인들의 사상과 이를 반영한 문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고, 때문에 앞으로도 <사산비명(四山碑銘)>을 비롯한 한국 한문학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IV. 참고문헌
손종흠·안대회. (2016). 한국한문학의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장예. (2022). 중국의 한국문학사에 나타난 ‘최치원’ 기술(記述) 양상 연구. 배달말,(71), 529-570.
최경애. (2021). 유학자로서의 최치원(崔致遠)의 위상과 면모-『조선왕조실록』과 ‘사산비명(四山碑銘)’을 중심으로. 동서철학연구,(101), 97-116.
김수진. (2019). 조선후기 소품문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 한국한문학연구,(73), 26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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