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변산 문화 유적 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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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창 변산 문화 유적 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신재효 고택과 판소리

1. 신재효(1812~1884) 약력
2. 신재효 고택
3. 판소리 여섯 마당

Ⅱ. 삼장(三藏)의 사찰 선운사
1. 유래와 연혁
2. 사찰의 구성

Ⅲ. 선운사에 관련된 지장보살과 지장사상

1. 지장보살의 의의와 어원
2. 지장보살의 탄생선운사,ㄴ
3. 대비천제(大悲闡提)로서 지장보살의 모습
4. 지장보살본원경(지장경) 개요

Ⅳ. 내소사(來蘇寺)

1. 내소사의 연혁
2. 사찰의 구성
3. 문살 : 꽃살문 속에 스며든 길상의 상징

Ⅴ. 단청 : 불전을 장식하는 화려한 색체와 그림
1. 단청의 종류
2. 상징의미
3. 별지화(別枝畵)의 상징의미

Ⅵ. 부안·고창·정읍 지역의 당산(堂山)

본문내용

우주 중심의 역할을 강조하는 셈이 된다.
솟대의 새는 주로 오리, 기러기, 까마귀, 갈매기 등으로 다양하지만 오리가 주류를 이룬다. 오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이자 물새로서 솟대 신앙에서 중요한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다. 오리의 종교적 상징성을 아래 표에 나타냈다.
- 오리의 종교적 상징성 -
* 솟대 위에 오리 대신 까마귀를 사용한다. 까마귀는 검은색의 외형, 듣기 싫은 울음소리 그리고 썩은 고기나 죽은 자에 몰려드는 속성 때문에 불길한 새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까마귀는 신조이며 태양조이기에 길조였다. 또한 일본에서도 까마귀는 천신의 사자로서 매우 신령스런 새였다. 요컨대 까마귀는 고대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 천신이나 태양신을 상징하고 때로는 그 사자로서 역할을 담당했던 신조였기에 솟대 위에 올려졌다.
- 새의 방향과 마리 수 : 새의 머리 방향은 일정하지 않지만 방향에 분명한 의미를 부여한다. 솟대에 앉혀지는 새의 마리 수의 의미도 확실하지 않으나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새는 반드시 마을의 허한 방위, 곧 산이나 언덕으로 막혀 있지 않고 먼 곳에서도 쳐다 볼 수 있게 트인 곳을 향해야 한다. 따라서 새의 마리 수도 마을의 허한 방위가 한 곳이면 한 마리, 두 곳이면 두 마리, 세 곳이면 세 마리의 새를 올려놓는다.
2-2. 서문안 당산
<서문안 당산과 할아버지장승과
할머니장승>
이곳은 조선시대 부안읍성의 서문(西門)이 있던 곳으로써 서쪽 문안에 있던 당산(堂山)이라 하여 서문안 당산이라 한다. 지금도 이 마을을 서외리(西外里)라 하는데, 서외리는 서쪽 성문 밖의 마을을 한자화한 것이다. 이 곳 당산에는 1689년(숙종 15)에 건립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본래 이 서문안 당산과 장승은 길 건너와 위쪽에 따로 세워졌던 것이나 지금의 도로가 정비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당산신의 신체는 한 쌍의 화강석 석간(石竿)으로 조성되어 있다. 할아버지 당산솟대의 상단에는 오리 한 마리가 올리어져 있고, 그 옆의 할머니 당산은 석간의 3분의 1쯤이 부러져 있는데 부러진 바로 밑에 머리를 하늘 쪽으로 향한 오리가 투박하게 음각되어 있다. 이 오리는 부안읍내의 지형이 가마솥의 형국이어서 화재가 자주 나므로 물에 사는 오리로 하여금 화재를 방지하게 한다고 전한다. 오리가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부안읍내 서북쪽이 바로 서해 바다이기 때문이다. 두 솟대당산 모두 투박한 큰 기대석 위에 세워져 있으며, 할아버지 솟대당산의 기대석에는 아홉 개의 ‘알받이 구멍’이 파여져 있다. 이는 생산과 풍요를 유감하는 것으로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거기에 쌀을 담아 놓고 지낸다. 그리고 두 솟대당산의 신간 중간쯤에 조성연대와 조성자를 알리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당산은 부안 읍내의 당산 가운데서도 가장 어르신인 산신적 성격을 강하게 띈 신격이므로, 마을 공동의 축원 외에 개인적 소원을 비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 서문안 당산 옆 석장승
할머니 솟대당산 옆으로는 한 쌍의 석장승이 화강석재의 투박한 돌로 건립되어 있다. 할아버지 장승은 벙거지를 쓰고 소담한 수염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으며, 눈망울은 둥글게 이중으로 튀어 나와 있다. 그리고 안면의 두 눈썹 사이에는 양각된 백호가 뚜렷하며, 양 볼에는 살이 넉넉하게 조성되어 인자하게 보인다. 귀는 보이지 않으며, 복부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음각된 명문이 뚜렷하다.
할머니 장승은 푸짐하고 넓적한 얼굴에 이마가 약간 훼손된 상태이며 미간 백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눈망울과 코는 거의 마모되어 편평하게 보인다. 입과 턱 부분만이 뚜렷한데, 입은 한일자로 이가 약간 드러나 있을 뿐이며 양쪽 귀는 없다. 복부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음각되어 있으나, 자획의 마모현상이 보인다.
2-3. 남문안 당산
<남문안 당산>
남문안 당산은 부안 읍성의 남문인 취원문루 안에 세워진 당산으로 동문안이나 서문안 당산과 같이 성문을 지켜주고 성안 마을의 무사태평을 위한 수호신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면에 있어서는 다른 두 곳의 당산이 오리가 얹히어지고 보조신격인 장승을 동반하고 있는 데 비해 이 남문안 당산은 원추형에다 장승도 거느리지 않으며, 몸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양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마을의 지형이 행주형(行舟形: 배가 물에 떠있는 모양)이어서 약한 곳을 보충해 주는 비보적 기능을 강조한 짐대(돛대)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 당산을 세울 당시의 시주자 2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3. 고창지역 당산 : 오거리 당산
마을의 다섯 곳에 위치한 당산이다. 중심부의 중앙동과 마을의 동·서·남방향의 상거리·하거리·중거리에 각각 1쌍의 당산이 있고, 마을 북쪽의 교촌리에 3당산이 있다. 이곳에서는 각 쌍의 당산을 할아버지당, 할머니당으로 부르는데, 그 이름에 따라 외형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은 없다. 처음에는 당산 5곳 모두 자연석이었지만, 풍수지리설에 따라 중앙과 남·서 방향에만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화강암을 기둥모양으로 다듬어 세웠는데, 이것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중앙동·중거리·하거리 할아버지당이다.
시장 내에 위치하는 중앙동 할아버지당은 6각기둥 정상에 둥근 갓을 쓴 모습이다. 중거리 할아버지당이 서 있는 곳은 예전의 당산터로, 4각의 돌기둥 위에 네모난 돌갓을 쓰고 있고, 하거리 할아버지당은 동네소유의 넓은 당산터에 위치하는데 세 당산 중 가장 높은 돌기둥으로 역시 갓을 올린 모습이다. 이들이 쓰고 있는 갓모양을 본 떠 ‘삿갓비석’, ‘갓당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지냈으나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각각의 돌기둥에 새겨진 기록으로 보아 모두 같은 해인 조선 순조 3년(1803)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를 뚜렷이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는 민속신앙물은 드문 예로, 마을을 다섯 방위에서 지켜주고, 허한 맥을 메워주는 방위수호의 역할을 한다고 믿음으로써 돌에 신성함을 부여하여 섬기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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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4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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