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송, 원대 해저유물 발굴해역과 기념비
2. 짱뚱어 다리
3.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4. 소금박물관
5. 갯벌생태 전시관
6. 갈마도 패총
7. 우전마을 당나무
2. 짱뚱어 다리
3.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4. 소금박물관
5. 갯벌생태 전시관
6. 갈마도 패총
7. 우전마을 당나무
본문내용
증도가 복음화 된 데에는 한 여인의 희생이 있었다. 한 여인의 끔찍한 사랑과 기도, 그리고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날 증도가 있다. 증도 믿음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신안 암태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열일곱 되던 해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했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있던 남편에게 신혼 첫 날 소박을 당한다. 그녀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 목포로 건너가 복음을 들었다. 신학을 공부한 문 전도사는 증도에 교회를 개척했다. 문 전도사가 개척한 교회는 신안 일대 100여 곳이나 된다. 증도에는 모두 11개의 교회를 세웠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문 전도사의 복음 전파는 해당화가 많이 피는 섬 화도까지 이어졌다. 문 전도사는 화도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고무신이 아홉 켤레가 닳을 정도로 걷고 걸었다. 증도 대초리에서 화도를 잇는 1.2km 길이의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개펄 위에 돌을 놓아 만든 것이었다. 물이 차면 징검다리가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화도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화도교회가 마을을 정겹게 굽어보고 있다. 고무신이 닳도록 걷고 걸으며 복음을 전하던 문 전도사는 일제강점기 박해를 이겨냈지만 1950년, 공산군들에 의해 순교 당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후방에 남은 공산군들은 당황했다. 국군이 증도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산당들은 문 전도사와 양민들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문 전도사의 죄목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다. 그녀의 고무신행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녀는 수양딸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한 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총탄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나이 59세였다.
8일 동안 양민들과 함께 바닷가 모래사장에 버려졌던 그녀의 시신은 1년 만에 장례식을 치른 뒤 교회 뒷산에 묻혔다.
문준경 전도사가 처음 개척한 증동리교회는 바닷가 언덕에 세워졌다. 현재 증동리교회 담임을 하고 있는 김상원 목사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증동리교회 앞마당에는 낡은 시멘트건물이 하나 있다. 문 전도사의 피로 범벅이 된 바닷모래를 실어와 옛 증동리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문 전도사는 많은 후배 교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CCC 창립자 고 김준곤 목사와 이만신 목사, 정태기 목사를 비롯해 증도출신 목회자만 100명이 넘는다. 이만신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 명예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목사는 문 전도사를 “사랑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봤고, 때로는 산파 노릇해주고 장례식에 가서는 죽은 사람들 염까지 다 해줬다”고 회고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은 2013년 문을 열었다. 문 전도사가 북한군에 의해 처형당한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그녀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공간과 문 전도사의 섬 전도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노두길 체험장과 순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순교체험관 등이 있다.
4. 소금박물관
5. 갯벌생태 전시관
엘도라도 리조트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갯벌생태전시관은 갯벌이 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배움의 장을 만들고 있으며, 대규모 회의실을 갖추어 각종 세미나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갯벌전시관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구분되는데, 1층은 갯벌 전시실이며 2층은 갯벌 체험학습실입니다. 1층의 갯벌전시실에서는 생동하는 갯벌의 모습과 소중한 자원의 보고인 갯벌의 생태와 지질, 화학, 물리적 작용을 다양하게 적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4공간으로 꾸며집니다.(제1공간 - \'생동하는 갯벌\', 제2공간 - \'갯벌세계로의 여행\', 제3공간 - \'아름답고 풍요로운 신안갯벌\', 제4공간 - \'소중한 갯벌\')
2층의 갯벌 체험학습실에서는 바닷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으며 밀물과 썰물의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망데크가 마련되어 있어 증도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6. 갈마도 패총전라남도 신안군 갈마도의 동남쪽에 있는 조개무지이다. 동쪽 패인 곳과 섬 정상에까지 조개껍질이 분포하고 있지만 숲이 우거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비교적 섬의 남쪽 부분에서 패총 유적이 잘 확인되는데, 길이 5m, 두께 50~70cm정도이다. 적갈색 경질토기의 입술부분과 몸체부분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철기시대 유적지로 추정된다.
7. 우전마을 당나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문 전도사의 복음 전파는 해당화가 많이 피는 섬 화도까지 이어졌다. 문 전도사는 화도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고무신이 아홉 켤레가 닳을 정도로 걷고 걸었다. 증도 대초리에서 화도를 잇는 1.2km 길이의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개펄 위에 돌을 놓아 만든 것이었다. 물이 차면 징검다리가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화도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화도교회가 마을을 정겹게 굽어보고 있다. 고무신이 닳도록 걷고 걸으며 복음을 전하던 문 전도사는 일제강점기 박해를 이겨냈지만 1950년, 공산군들에 의해 순교 당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후방에 남은 공산군들은 당황했다. 국군이 증도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산당들은 문 전도사와 양민들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문 전도사의 죄목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다. 그녀의 고무신행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녀는 수양딸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한 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총탄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나이 59세였다.
8일 동안 양민들과 함께 바닷가 모래사장에 버려졌던 그녀의 시신은 1년 만에 장례식을 치른 뒤 교회 뒷산에 묻혔다.
문준경 전도사가 처음 개척한 증동리교회는 바닷가 언덕에 세워졌다. 현재 증동리교회 담임을 하고 있는 김상원 목사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증동리교회 앞마당에는 낡은 시멘트건물이 하나 있다. 문 전도사의 피로 범벅이 된 바닷모래를 실어와 옛 증동리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문 전도사는 많은 후배 교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CCC 창립자 고 김준곤 목사와 이만신 목사, 정태기 목사를 비롯해 증도출신 목회자만 100명이 넘는다. 이만신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 명예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목사는 문 전도사를 “사랑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봤고, 때로는 산파 노릇해주고 장례식에 가서는 죽은 사람들 염까지 다 해줬다”고 회고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은 2013년 문을 열었다. 문 전도사가 북한군에 의해 처형당한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그녀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공간과 문 전도사의 섬 전도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노두길 체험장과 순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순교체험관 등이 있다.
4. 소금박물관
5. 갯벌생태 전시관
엘도라도 리조트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갯벌생태전시관은 갯벌이 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배움의 장을 만들고 있으며, 대규모 회의실을 갖추어 각종 세미나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갯벌전시관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구분되는데, 1층은 갯벌 전시실이며 2층은 갯벌 체험학습실입니다. 1층의 갯벌전시실에서는 생동하는 갯벌의 모습과 소중한 자원의 보고인 갯벌의 생태와 지질, 화학, 물리적 작용을 다양하게 적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4공간으로 꾸며집니다.(제1공간 - \'생동하는 갯벌\', 제2공간 - \'갯벌세계로의 여행\', 제3공간 - \'아름답고 풍요로운 신안갯벌\', 제4공간 - \'소중한 갯벌\')
2층의 갯벌 체험학습실에서는 바닷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으며 밀물과 썰물의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망데크가 마련되어 있어 증도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6. 갈마도 패총전라남도 신안군 갈마도의 동남쪽에 있는 조개무지이다. 동쪽 패인 곳과 섬 정상에까지 조개껍질이 분포하고 있지만 숲이 우거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비교적 섬의 남쪽 부분에서 패총 유적이 잘 확인되는데, 길이 5m, 두께 50~70cm정도이다. 적갈색 경질토기의 입술부분과 몸체부분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철기시대 유적지로 추정된다.
7. 우전마을 당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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