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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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란히 걸려 있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세 나라의 국기>
브라질 쪽 삼국 국경을 알리는 기념탑 앞에 서니, 이과수 강을 사이에 두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마주보고 있었다. 옆의 파라나 강을 끼고는 파라과이 땅이 보였다. 기념탑 부근에 있는 민속품 가게에는 삼국의 국기가 걸려 있고, 이를 기념하는 티셔츠와 각종 민속품을 팔고 있었다. 삼국 국기 중 제일 익숙한 건 브라질의 국기였다. 월드컵 축구 경기 때마다 노란색 상의에 초록색 하의를 입은 브라질 선수들을 TV에서 많이 본 까닭이었다. 초록은 삼림 자원을, 노랑은 광물 자원을, 파랑은 하늘을 나타낸다. 아르헨티나의 국기에 그려져 있는 파랑과 흰색은 독립 운동을 추진했던 애국자의 복장에서 취했다고 한다. 흰 바탕의 그림은 ‘5월의 태양’이라 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둔 날에서 연유한다.
과거 삼국의 격전지였던 이곳에 삼국의 국기가 평화로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평화를 유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여권이나 별다른 절차 없이 세 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11-5. 포즈두이과수 - 폭포와 댐이 만든 도시
포즈두이과수는 브라질 서쪽 끝자락의 남위 22.4°쯤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열대 지역이라 그런지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한낮의 온도가 35.4℃였는데, 몸이 늘어지는 걸 보니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높은 것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아이스크림 먹읍시다!”라고 외치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혔다. 열대 지역인 것을 알려 주려는 듯이 주변에는 커피나무, 사탕수수와 같은 열대 작물이 눈에 띄었다.포즈두이과수는 ‘이과수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이름대로 이 도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인해 늘 부산스럽다. 첫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의 규모가 매우 크고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흙이며 보도블록, 집들이 온통 황토색이었는데, 이과수 강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황토색이 된다고 하니 가히 황토 도시라 부를 만했다.
<포즈두이과수 전경 : 이타이푸 댐과 이과수 폭포로 인해 발전한 관광 도시로 고층 건물이 많다.>
1973년에 약 35,000명이었던 이곳의 인구는 이타이푸 댐이 건설되면서 2000년에는 무려 2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지역은 세계적인 토목 사업인 이타이푸 댐 건설과 신이 내린 이과수 폭포가 가져온 시너지 효과를 통해 부유해질 수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는 보석상과 명품 상점이 즐비했다.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여행사들도 있고 호텔도 100여 개가 넘는다고 했다.
11-6. 이타이푸 댐의 건설과 관광 효과
이타이푸는 그곳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 어로 ‘이타’는 ‘돌’, ‘이푸’는 ‘노래를 하다’라는 뜻이다. 원래 파라나 강 가운데에는 돌섬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물소리 때문에 돌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 돌섬 부근에 이타이푸 댐이 건설되었다. 지금은 댐이 쏟아내는 물이 더욱더 우렁찬 노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1960년대 후반 브라질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룸에 따라 전력 공급량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견고한 암반 지대로 수력 발전용 댐을 조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파라나 강에 주목하였다. 그 후 4년여의 협의 끝에 브라질 정부와 파라과이 정부가 공동으로 댐을 건설하게 되었다. 만약 과거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한 갈등이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공사는 1975년에 시작되어 1991년에 완공되었다. 이 댐은 낙차가 196m로 미국의 후버 댐에 이어 세계 2위이며, 전력량은 1,400만kw로 우리나라 소양강댐의 63배이다. 공사에 사용된 철강재의 양은 프랑스 에펠 탑을 380개 건설할 수 있는 양이며, 콘크리트 양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 해협 유로터널에 소요된 양의 15배에 달했다.이타이푸 댐의 발전량은 전체 브라질 전력 수요의 25퍼센트, 파라과이 전체 수요의 8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 홍수를 조절하고 관개용수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일도 한다. 또한 운하 기능은 물론이고 댐 상류에 있는 이과수 폭포와 함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까지 한다. 2000년까지 이미 165개국에서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했다. 야간의 이타이푸 댐은 두려운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수십 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리고, 대형 스크린에서는 댐의 건설 과정을 알리는 비디오가 상영되었다. “댐을 건설하기 전 양국 정부는 3년여에 걸쳐 동식물의 생태 조사를 하는 등 자연 재생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댐 호수 주위에 1,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자라 오늘날에는 숲의 장막을 이루었다. 또한 댐의 한쪽 편에는 어도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환경 파괴를 줄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댐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환경 친화적인지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이타이푸 댐은 브라질 경제 성장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이타이푸 댐의 야경1991년에 완공된 이타이푸 댐은 브라질 경제 성장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댐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의 상징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페트릭 맥컬리는 『소리 잃은 강』이란 책에서 “댐은 강을 따라 발달한 세계의 문화유산을 삼켰고, 세계 민물고기의 5분의 1을 멸종시켰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가장 비옥한 0.3 퍼센트의 토지를 물속에 잠기게 했다.”고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하천의 생명은 늘 그렇게 ‘흐른다’는 점이다. 하천은 흐르면서 수많은 지류들을 합치기도 하고, 또한 곳에 따라 지역을 나누기도 한다. 하천을 사이에 둔 지역은 정치적 관계에 따라 그 하천의 폭만큼 문화적 거리가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다. 삼국 전쟁이 끝날 당시 파라나 강과 그 지류인 이과수 강은 삼국을 나누는 대립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하천 물이 모이듯 삼국이 사이좋게 합쳐진 모습이다. 그러나 파라나 강은 댐으로 인해 곳곳이 막혀 있다. 이제 이 강은 늘어선 인공 호수의 연장일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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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8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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