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1. 서론
2. 본론
(1)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워튼의 배경
(2) 페미니스트 관점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워튼
(3) <자기만의 방>과 <순수의 시대>
3. 결론
4. 출처 및 참고문헌
1. 서론
2. 본론
(1)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워튼의 배경
(2) 페미니스트 관점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워튼
(3) <자기만의 방>과 <순수의 시대>
3. 결론
4.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한다. 순수의 시대는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관습적인 사회에 눌려 그대로 따라했다는 점에서 순수의 시대는 자신의 생각이 없는 순백의 시대인 것이다. <순수의 시대>에 등장하는 3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순수를 가장한 위선자였다. 사랑스럽과 헌신적이었던 메이는 약혼자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하고 3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 이디스 월튼의 결혼생활을 연상하게 하여 불행하였지만 겉으로는 행복하게 살아야 했던 위선자로 보인다. 뉴랜드는 엘런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메이를 선택했고, 관습에 충실한 결혼생활 중에서도 엘런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엘런은 남편이 있음에도 사촌의 약혼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서로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3명의 주인공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엘런을 뒷담화하면서도 뉴랜드에게 왜 엘런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는 밍고트 노부인 또한 위선자로 보인다. 1920년대에 여성 최초로 퓰리쳐 상을 수상할 당시에 심사위원들은 ‘미국 사회의 건전한 분위기와 남성상을 잘 묘사하였기 때문’이라는 기준에 부합되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과연 심사위원들은 순수의 시대라는 제목의 의미를 무엇으로 생각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진정한 <순수의 시대>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진실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관습과 보수적 전통을 깨치려는 세대를 대표하는 댈러스가 제시하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기만의 방>이든 <순수의 시대>이든 어찌 되었던지 100년 전과 지금의 현실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것은 변함없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 결론
동 시대를 살아온 여성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월튼의 대표작으로 보는 <자기만의 방>과 <순수의 시대>를 보면 여성의 사회적 위치 개선을 위한 진취적인 혁명가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고요한 울림을 주는 고요 속의 외침을 내지르는 조용한 개혁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으로서 살기 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경제적 공간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외침, <순수의 시대>에서는 사회에서 동화되어 살아가되, 어떻게 하면 그 사회를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집안이 부유한 상류층에서 자라 동시대 다른 여성보다는 유리하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반 시민이 아닌 이등시민으로 살아가야 했고, 그러한 이등시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의 고뇌가 고스란이 드러나있다. 금전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 교육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로 기록함으로써 스스로 살아갈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여성의 자립이 가능하다고 응원해주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제1장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제2장에서는 남성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과정, 제3장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여성의 사회적 억압과 한계, 제4장에서는 여성작가로서의 삶,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구축할 수 있는 세계가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자의식을 버리고 남성성과의 타협을 통한 글쓰기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진정한 리얼리티를 가지는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 노력해서 남자보다 더 완벽한 여자가 되지 않으면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없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너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잖아’라는 문구가 나를 울리며 나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다시 한번 더 각성하게 만든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소설가로서 결코 뒤쳐지지 않는 울프가 여성이기에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아주 직관적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문학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페미니즘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에서 ‘여자에게도 남자와 똑같은 자유가 있는 것 같은가?’라는 문구가 있다. 유럽에서 남편에게 도망친 엘렌 올렌스카에 대한 뉴욕 상류사회에서의 뒷담화에 뉴랜드 아처는 왜 포악한 남편을 비판하지 않고 도망친 아내에 대한 비난이 더 크냐고 물었고, 뒷담화에 동참하던 상류사회 사람은 여자에게는 남자와 같은 수준의 자유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도 남아있는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여자다움, 여성스러움과 동일하다. 100년 전에 발표된 순수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관습이 2024년 현재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몰아치고 있는 페미니즘에 동조하게 되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둘째치고라도,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던 ’돈과 공간’인가, 아니면 이디스 워튼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기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두 여성작가의 글이 새삼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이나 용기, 혁명, 변화를 일으키는 울림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진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성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 반면, 이디스 워튼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시대비판을 소극적으로 여성과 사회를 혼합하여 이야기 형식을 빌린 소설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애 둘러 이야기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4. 출처 및 참고문헌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여성으로서 글쓰기, 손나리, 영학논집, Vol.25, pp. 81-95, 2001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3035
관습의 재구성, 이디스 워튼의 그지방의 관습과 순수의 시대를 중심으로, 문학석사 학위논문, 허녕,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2018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42406/1/000000150890.pdf
<자기만의 방>이든 <순수의 시대>이든 어찌 되었던지 100년 전과 지금의 현실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것은 변함없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 결론
동 시대를 살아온 여성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와 이디스 월튼의 대표작으로 보는 <자기만의 방>과 <순수의 시대>를 보면 여성의 사회적 위치 개선을 위한 진취적인 혁명가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고요한 울림을 주는 고요 속의 외침을 내지르는 조용한 개혁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으로서 살기 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경제적 공간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외침, <순수의 시대>에서는 사회에서 동화되어 살아가되, 어떻게 하면 그 사회를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집안이 부유한 상류층에서 자라 동시대 다른 여성보다는 유리하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반 시민이 아닌 이등시민으로 살아가야 했고, 그러한 이등시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의 고뇌가 고스란이 드러나있다. 금전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 교육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로 기록함으로써 스스로 살아갈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여성의 자립이 가능하다고 응원해주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제1장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제2장에서는 남성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과정, 제3장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여성의 사회적 억압과 한계, 제4장에서는 여성작가로서의 삶,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구축할 수 있는 세계가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자의식을 버리고 남성성과의 타협을 통한 글쓰기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진정한 리얼리티를 가지는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 노력해서 남자보다 더 완벽한 여자가 되지 않으면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없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너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잖아’라는 문구가 나를 울리며 나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다시 한번 더 각성하게 만든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소설가로서 결코 뒤쳐지지 않는 울프가 여성이기에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아주 직관적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문학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페미니즘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에서 ‘여자에게도 남자와 똑같은 자유가 있는 것 같은가?’라는 문구가 있다. 유럽에서 남편에게 도망친 엘렌 올렌스카에 대한 뉴욕 상류사회에서의 뒷담화에 뉴랜드 아처는 왜 포악한 남편을 비판하지 않고 도망친 아내에 대한 비난이 더 크냐고 물었고, 뒷담화에 동참하던 상류사회 사람은 여자에게는 남자와 같은 수준의 자유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도 남아있는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여자다움, 여성스러움과 동일하다. 100년 전에 발표된 순수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관습이 2024년 현재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몰아치고 있는 페미니즘에 동조하게 되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둘째치고라도,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던 ’돈과 공간’인가, 아니면 이디스 워튼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기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두 여성작가의 글이 새삼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이나 용기, 혁명, 변화를 일으키는 울림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진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성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 반면, 이디스 워튼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시대비판을 소극적으로 여성과 사회를 혼합하여 이야기 형식을 빌린 소설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애 둘러 이야기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4. 출처 및 참고문헌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여성으로서 글쓰기, 손나리, 영학논집, Vol.25, pp. 81-95, 2001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3035
관습의 재구성, 이디스 워튼의 그지방의 관습과 순수의 시대를 중심으로, 문학석사 학위논문, 허녕,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2018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42406/1/000000150890.pdf
추천자료
하루키 문학 이해하기-[작품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상실의 시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생애 및 그의 건축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4
아기장수 전설에 대한 연구
[이상(시인, 소설가), 언어세계, 텍스트, 날개, 거울]이상(시인, 소설가)의 생애, 이상(시인,...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와 안티고네에 대한 주석, 엘렉트라, 오이디푸스왕, 독일비극시인]소...
고전소설강독 경판본 고소설 [홍길동전]과 박태원의 [홍길동전]을 비교, 분석해 보시오
포스트모던이즘(postmordenism)
학사학위논몬_ 최인호 소설에 나타나는 현대인들이 겪는 개인의 주체성 상실 연구_ 『타인의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