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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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류문명과 기술의 발전

2.- 과학의 기원

3.- 만물의 근원을 찾아서

4.- 원자론(atomism)자들의 등장

5.-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관

6.- 배척되는 원자론

본문내용

이 많이 함유되고, 가벼운 물체에는 공기나 불을 많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4원소의 기본성질을 알면 물체의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천상계 물질은 지상계의 물질과 다르고 제5원소 에테르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배척되는 원자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원자론을 공박하였다. 그 근거는 첫째 원자라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알갱이라도 더욱 작게 쪼갤 수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진공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텅 빈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므로, 그런 것은 생각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말이 마차를 끌기 위해서는 말과 마차를 이어주는 끈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개념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힘에 대해 가지는 생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보기에 비어있는 공간에도 무엇인가 채워져 있다는 생각, 이것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Horror vacui)'는 명제가 생겼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상적으로 원자론자들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그는 원자론자들을 싫어하였는데 원자론자들에게는 무신론적 경향이 내재한다고 보았다.
원자론이 발표될 당시에는 원자론은 너무나 황당무계한 공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에는 이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고 사변적으로만 생각하였다. 그 때문에 이러한 물질관은 당시의 세계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그리스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특히 원자론을 반대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적 권위로 인하여 평가절하되어 원자론은 발붙일 기반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 후 원자론이 재등장하게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옳은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설명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쉽게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경험을 그럴듯한 말로 정리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참다운 과학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반면에 데모크리토스 설은 상식을 깨뜨린 것으로, 그 옳음은 실증적으로 뒷받침 될 때에만 존립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이처럼 과학은 일상의 경험에서 얻는 상식을 넘어서야 탄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실증이 뒤따르지 못한 그리스의 과학은 사변적인 과학 철학에 그치고 마는데, 이것은 그리스인들이 논리를 사용하는 데는 능했지만 논리의 재료가 되는 것은 자연의 관찰이나 실험 등에서 얻어진 사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험이나 관찰에 의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논리는 과학의 논리가 되지 못한다. 과학은 자연에서 시작하여 자연으로 끝나는 것이다. 자연에서 시작하지 않는 논리는 공리공론이고, 자연에서 끝나지 않는 논리는 결말 없는 공론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리스인의 논리는 대개 공리공론이나 결말 없는 공론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자연을 관찰하는 수단이 부족했음에도 억지로 논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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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1.04.15
  • 저작시기200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8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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