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니코와의 약속대로 촛불을 밝힌 체 걷는다. 온천의 끝에서 다른 끝으로... 첫 번째.. 가냘픈 촛불은 꺼진다. 두 번째.. 또 다시 힘없이 꺼진다. 그리고 세 번째 촛불은 이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가는 동안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간단한 행위에 사력을 다한 고르차코프는 쓰러진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또 다시 그는 고향으로 간다. 폐허가 된 온천(현실) 저 너머로 고향의 잿빛 하늘과, 언덕이 보이고 작은 호수와 고향의 집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 불과 물은 중요한 수단으로 나타난다.
물은 빗물로 시작되어 바다가 되고 다시 빗물이 되어 세상에 뿌려지는 회전 즉, 윤회의 상징으로.. 불은 도메니코가 세상을 구원하려는 도구로 사용한 희생의 상징으로...
타이코프스키는 이렇듯 시공간을 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이념을 상징화하여 노스텔지아 만들었다. 그는 보이는 대로만 표현하는 의미 없는 창작가가 아니었기에..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그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이 영화를 혹자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꿈이 담겨있기에.. 타르코프스키는 조국을 떠난 예술가(or 지식인)의 향수가 이 종말로 치닫는 현세에서 어떻게 나타날 것이며 자신은 그런 향수로 인하여 육체만이 살고있는 이 황량한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의문하며 그 아픔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는 그에게 마음의 감옥뿐이었고, 스산한 고향에서야 그는 진정으로 평온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던 타르코프스키에게는 그의 인생은 외롭고 고뇌에 찬 인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가 바로 이 노스텔지아 이다. 세명의 독특한 캐릭터는 그들이 비관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로 잘 표현되어 그것은 다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낸다.
고르차코프는 이 여행을 마감한 뒤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써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현실과 이탈리아를 거부한다. 과연 그런 그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의문이 남는다.
조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노예가 될 것을 알고서도 고향으로 돌아가 자살한 사스노프스키처럼 조국으로 돌아갈 용기마저 없어 그저 타국 땅에서 향수에 젖을 수밖에 없는 고르차코프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 맞물려지지 않는 공간의 틈 사이에서 고통에 치를 떤다. 그는 유제니아를 통해 헛된 욕망과 거짓에 가득 찬 현대인과 현실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현실)를 거부한다고 그는 과연 진정한 진실자인가? 그는 조용히 촛불만을 밝힐 뿐이다. 그는 조용히 향수에 젖을 뿐이다. 그는 너무나 에고이스트이다.
그러나 그의 에고가 날 슬프게 하고 그를 사랑한 자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노스텔지아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타르코프스키를 그린 영화이기에 그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뒤 나의 가장 개인적인 느낌은 타르코프스키의 현세에 대한 비관론적 사상이나, 향수에 젖어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향수나, 유랑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것이나,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린 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뒷전이다. 회귀하고픈 본능을 물로써 표현한 그의 표현방식과 단지 눈에 보이는 공간을 제 3의 다른 공간으로 재창출하여 다른 공간화 한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였다. 10여분간 고정된 흑백의 영상.. 빗소리와 창에 닫는 비의 움직임만으로 난 그의 고뇌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했듯 이 영화는 하나의 회상록이다. 러시아인 특유의.. 지독한 향수...병.
이 영화에서 불과 물은 중요한 수단으로 나타난다.
물은 빗물로 시작되어 바다가 되고 다시 빗물이 되어 세상에 뿌려지는 회전 즉, 윤회의 상징으로.. 불은 도메니코가 세상을 구원하려는 도구로 사용한 희생의 상징으로...
타이코프스키는 이렇듯 시공간을 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이념을 상징화하여 노스텔지아 만들었다. 그는 보이는 대로만 표현하는 의미 없는 창작가가 아니었기에..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그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이 영화를 혹자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꿈이 담겨있기에.. 타르코프스키는 조국을 떠난 예술가(or 지식인)의 향수가 이 종말로 치닫는 현세에서 어떻게 나타날 것이며 자신은 그런 향수로 인하여 육체만이 살고있는 이 황량한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의문하며 그 아픔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는 그에게 마음의 감옥뿐이었고, 스산한 고향에서야 그는 진정으로 평온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던 타르코프스키에게는 그의 인생은 외롭고 고뇌에 찬 인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가 바로 이 노스텔지아 이다. 세명의 독특한 캐릭터는 그들이 비관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로 잘 표현되어 그것은 다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낸다.
고르차코프는 이 여행을 마감한 뒤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써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현실과 이탈리아를 거부한다. 과연 그런 그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의문이 남는다.
조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노예가 될 것을 알고서도 고향으로 돌아가 자살한 사스노프스키처럼 조국으로 돌아갈 용기마저 없어 그저 타국 땅에서 향수에 젖을 수밖에 없는 고르차코프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 맞물려지지 않는 공간의 틈 사이에서 고통에 치를 떤다. 그는 유제니아를 통해 헛된 욕망과 거짓에 가득 찬 현대인과 현실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현실)를 거부한다고 그는 과연 진정한 진실자인가? 그는 조용히 촛불만을 밝힐 뿐이다. 그는 조용히 향수에 젖을 뿐이다. 그는 너무나 에고이스트이다.
그러나 그의 에고가 날 슬프게 하고 그를 사랑한 자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노스텔지아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타르코프스키를 그린 영화이기에 그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뒤 나의 가장 개인적인 느낌은 타르코프스키의 현세에 대한 비관론적 사상이나, 향수에 젖어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향수나, 유랑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것이나,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린 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뒷전이다. 회귀하고픈 본능을 물로써 표현한 그의 표현방식과 단지 눈에 보이는 공간을 제 3의 다른 공간으로 재창출하여 다른 공간화 한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였다. 10여분간 고정된 흑백의 영상.. 빗소리와 창에 닫는 비의 움직임만으로 난 그의 고뇌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했듯 이 영화는 하나의 회상록이다. 러시아인 특유의.. 지독한 향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