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북솜씨기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뒤에 소리를 배워 명창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고수로서 활약하다가 소리쪽으로 눈을 돌려 명창이 된 이는 이밖에도 이날치, 김채만, 장판개, 박지홍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고종 때에 들어서야 북을 치는 법에 대한 이론이 제대로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박판석, 오수관, 오성삼, 이화중, 주봉현, 한성준과 같은, 후대에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많은 명고수들이 나타난다.
역대 명고수 가운데서, 박판석, 오수관, 오성삼, 장판개, 신찬문은 북을 뛰어나게 잘 쳤을 뿐만이 아니라, 독특한 고법도 만들어 내어 발전시켰다고 한다.
김명환은 1913년 전남 옥과에서 태어났는데, 보통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중퇴한 뒤에 박판석, 장판개를 포함한 여러 명고수들에게 북 치는 법을 배웠다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부터 많은 명창들의 소리 자리에서 북을 쳐서 북의 솜씨가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특히 장판개와 정응민과 같은 이론에 밝은 명창들 밑에서 여러해 동안에 걸쳐 북을 쳤기 때문에 판소리 및 고법의 이론에도 밝다.
1978년에, 판소리 고법의 기능 보유자로서는 처음으로, 중요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이, 고수로서 활약하다가 소리쪽으로 눈을 돌려 명창이 된 이는 이밖에도 이날치, 김채만, 장판개, 박지홍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고종 때에 들어서야 북을 치는 법에 대한 이론이 제대로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박판석, 오수관, 오성삼, 이화중, 주봉현, 한성준과 같은, 후대에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많은 명고수들이 나타난다.
역대 명고수 가운데서, 박판석, 오수관, 오성삼, 장판개, 신찬문은 북을 뛰어나게 잘 쳤을 뿐만이 아니라, 독특한 고법도 만들어 내어 발전시켰다고 한다.
김명환은 1913년 전남 옥과에서 태어났는데, 보통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중퇴한 뒤에 박판석, 장판개를 포함한 여러 명고수들에게 북 치는 법을 배웠다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부터 많은 명창들의 소리 자리에서 북을 쳐서 북의 솜씨가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특히 장판개와 정응민과 같은 이론에 밝은 명창들 밑에서 여러해 동안에 걸쳐 북을 쳤기 때문에 판소리 및 고법의 이론에도 밝다.
1978년에, 판소리 고법의 기능 보유자로서는 처음으로, 중요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