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의 역사- 달마에서 오가칠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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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선의 정의

2. 선의 중국전래

3. 선에 대한 초기 중국인들의 태도

4. 중국에서의 선의 전개

5. 달마의 선

6. 능가종의 발전

7. 동산법문의 형성

8. 북종선과 남종선

10. 우두종과 보당종

본문내용

이며 동시에 마조의 선이 일상생활의 절대긍정에 빠질 위험을 방지했다고 볼 수 있는데 懷海의 이러한 노력으로 중국선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으며 그 생명을 길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홍주종의 계통과는 달리 靑原行思( ? -740)를 祖로하여 石頭希遷(700-790)으로 이어지는 남종의 또 다른 계열이 있었으니 그것이 이른 바 石頭宗이다. 행사는 강서성 盧陵 출신으로 속성은 劉씨이나 그의 전기는 자세하지 않다. 그는 혜능 문하에서 수학한 지 얼마 되지않아 강서지방으로 돌아와 선법을 전파하였지만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그의 선법을 전한 사람은 오히려 희천이었다.
希遷은 廣東人으로 《參同契》를 지어 남북선종의 頓漸문제를 회통시키고자 했다. 희천은 "인도의 큰 선인의 마음을 서에서 동으로 이심전심으로 비밀리에 전해 주고 받으니 사람의 근기는 영리하고 둔함이 있으나 도에는 남북의 조사가 따로 없다"
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人根有利鈍, 道無南北祖
고 했다. 이것은 육조단경의 "法無頓漸, 人有利鈍"이라는 말과도 부합된다. 돈점의 문제로 남북종이 서로 나뉘기는 했으나 법에는 돈점이 따로 없으므로 이른바 남북종이라 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조와 석두의 두 인물이 각각 강서와 호남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을 때 일반적으로 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이 두 파 사이를 왕래하면서 수행하였으며 선의 실천방법에도 機鋒
언어가 명확하지 않고 함축되어 있으며 상대방이 이해했는가 못 했는가를 시험해보는 것.
이니 機用
원칙과 활용을 말하는 것이다. 일문일답속에 전체적인 원칙과 활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모두 언어의 일정한 규칙임.
이니 하여 점차 고정된 법식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법식들을 후학들이 전파하고 어록으로 엮었는데 후대에는 그것의 하나하나를 公案이라 불렀으며 소위 公案禪이라는 흐름을 형성하며 선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12. 五家七宗의 分岐
五家란 禪風의 상위함에 근거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仰宗臨齊宗曹洞宗雲門宗法眼宗을 말한다. 여기에 다시금 宋代에 임제종에서 분리된 黃龍楊崎의 2종을 합하여 五家七宗이라 한다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慧能의 남종선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계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가칠종이 분기한 시초는 당나라 말기의 무종의 會昌(841-846)연간의 폐불사건 이후로 부터이다. 폐불에 의하여 승단이 해산되고 그들의 경제적 토대가 파괴되었는데 장원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북쪽 지방의 불교와 장안을 비롯한 도시의 불교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으며 수많은 경전이 일실되면서 敎學에도 큰 손실을 가져왔다. 그러나 각처의 산림에 흩어져 있던 선종은 원래부터 평민들과 함께 거주하였고 교리를 말하지 않고 경전으로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적었는데 특히 남방의 선종은 이 폐불사건이후 오히려 세력이 늘어나고 유파도 많아졌다. 이어서 五代에 접어들자 남북의 정치가 분열되었고 선종이 남방에서 성행하자 남방의 통치자들이 선종을 그들의 통치에 이용하고자하여 선종의 발전에 더욱 유리한 입장이 전개되면서 선종의 분열을 가속화 시켰다
呂 , 각소 譯 《中國佛敎學講義》 민족사 1991 p.361
. 이리하여 먼저 오가가 형성되었는데 이중 임제종만이 북방에서 성행하였고 다른 파는 모두 남방에 있었다.
임제종은 臨齊義玄( ? -867)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서 조동종과 함께 오래도록 중국선종을 대표하는 두 종파로서 오늘날 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의현은 曹州(山東省) 사람으로 처음에는 계율과 유식사상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결코 진실한 것과의 계합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黃檗 문하로 들어가 참선한 후 다시 그 친구인 大愚 문하에서 참선하여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10년간 대우를 섬기고 그 유언에 따라 황벽의 법통을 이었으며 유명한 《臨齊錄》을 남기고 있다.
임제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불법을 배우는 자의 최초의 터득이라고 하면서 모든 전통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언제나 지금의 생활현실에 입각한 불법을 주장했다. 임제는 이렇게 말했다.
도를 닦는사람들이여, 법다운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결코 사람을 미혹되게 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무언가 마주치는 모든 것은 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체의 사물에 구애되는 일없이 철저한 해탈자재의 경지를 얻는 것이다.
道流. 爾慾得如法見解. 但莫受人惑. 向裏向外逢著便殺.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始得解脫. 不與勿拘. 透脫自在. 《鎭州臨齊慧照禪師語錄》 《大正藏》권47 p.400b
임제는 이처럼 스스로 믿는 것 이외의 일체의 구속과 권위를 물리치고 지금의 이 현실에 있어서 자기의 본질에 대하여 자각하고 자기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것을 주장했다. 즉 임제의 선은 마조의 선을 보다 주체적인 방향으로 철저하게 규명한 것이었다.
조동종은 洞山良价(807-869)와 그의 제자 曹山本寂(840-901)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良价는 처음에 마조의 문하인 靈默(747-818)에게 배웠고 다음에는 南泉普願(748-835), 山靈佑(771-853), 雲巖曇晟(772-841)등 수많은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 임제가 북방의 武人사회에서 뿌리를 내린데 반하여 洞山은 온화한 강남을 무대로 선법을 폈는데 그는 선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大悟나 頓悟를 강조하지 않고 불교의 근본문제를 선적으로 파악하여 그 자신의 주체적 세계를 확립하려 하였다.
이하 운문종, 법안종, 위앙종등 기타 유파들은 결정적인 차이가 없이 유파를 형성했으며 송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선은 公案禪, 看話禪, 默照禪등으로 발전했다.
이리하여 인도에서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하여 지혜를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졌던 선이 중국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사회적 변동에 의하여 부침과 성쇠를 거듭하며 중국민족의 생활과 중국사상의 문물속에 뿌리를 내려 그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었던 "中國禪"이라는 특이한 불교의 한 흐름을 형성햇던 것이다.

키워드

중국선,   달마,   오가칠종,   능가종,   보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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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3.18
  • 저작시기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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