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의 선교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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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은 바로 이와 같은 좌뇌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우선을 두어온 서구문명의 열매다.
"수족관 시대"의 도래: 우뇌기능과 신경조직이 확대된 세계 멀티미디어 시대는 컴퓨터 없이 실현 불가능하지만, 컴퓨터의 좌뇌적 가치체계만을 가지고서는 완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멀티미디어는 문자와 언어의 세계를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감각활동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좌뇌기능을 극대화한 것이라면, 멀티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인간의 우뇌기능과 신경조직을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뇌적 사고는 장소에 제한 받지 않는 동시성을 우선으로 한다. 맥루언에 따르면, 미래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모든 것을 집합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 될 것인 바, 비디오와 연계된 기술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비디오 연계 기술의 쌍방향성은 멀티미디어 세대의 가치관을 우뇌중심적 사고에 의하여 형성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 때에는 사용자가 생산자가 되면서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뇌 지배의 사고는 중앙집권적 체계를 해체시키려 든다. 알파벳과 글쓰기의 발전은 힘과 자원을 집중화해 왔다. 문헌이란 중앙집권화 된 관료사회의 좌뇌적 전략물로서 오늘날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프린트에 근거한 에토스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이르러서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다중 전달체계'(multi-carrier telecommunication)에 의하여 더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게 된다. '인터액티브 이성'(interactive satellites)이나 무수한 '마이크로웨이브 유니트'(microwave units)를 통해서 국가간의 장벽도 간단히 넘나들면서 대량의 정보를 유출시킨다.
바야흐로 21세기 멀티미디어 사회의 인류는 이처럼 "수족관"(Aquarium)과 같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살 것이다. 이 때에 인류를 지배하는 가치는 '통시성'(diachronism)이 아니라, '동시성'(synchronism)이다. 수족관 안에서는 직선적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 뒤 좌우나 선후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동시적이며, 총체적이다.
이처럼 기계적 세계로부터 전자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은 유클리드 공간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의 공간으로의 전환과 같다. 이 때, 환경에 대한 인식은 '컨셉트'(concept)가 아니라, '퍼셉트'(percept)식이다. 인간의 시각, 청각, 촉각, 후각(미각) 모든 감각을 통한 총체적 파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서양보다는 동양의 전통에서 쉽게 발견된다. 서양인은 대체로 특정한 견해에 입각해서 자신의 권위체계를 확립코자 한다. 초기 플라톤 사상은 헬라의 부족의식(tribalism)의 동양적 편견을 파괴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은 좌뇌적 사고를 철저히 밀고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인은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모든 상황에 즉각적으로 적응하는 능력, 또는 그러한 자세를 지닌다. 그들은 삶을 다양한 감각의 평형상태로 보지, 어떤 우열의 순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맺는 말
정보화 시대의 주된 선교적 상황은 지난 선교 초창기 때와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옛 그릇으로 새 시대의 인간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교회가 대중의 한글 교육을 통해서 선교의 의사전달 매체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문맹"이 아닌 "컴맹"퇴치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뭏튼, 급속히 변화되어 가는 시대를 놓치지 않고 읽어감으로써 보다 능동적이고 영향력 있는 선교전략이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
존 네이스비트가 '하이테크' 시대일수록 '하이터치', 곧 "함께 있으려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한 것은 정당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중요한 점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그의 '하이터치'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바 있는 '가면문화'에서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네오-게젤샤프트에 들어선 대중은 이미 '인격적'으로 함께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멀티미디어를 통해서 현실과 방불한 '유사현실'을 창조하여, 마치 인격적 만남을 갖는 듯한 가면문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스비트가 "나이트클럽의 홀"이나 "영화관"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예로 들었지만, 그 대중들은 "함께 있으려는 욕구"를 드러낸 것뿐이지, 결코 그 가운데서 인격적인 만남을 창조코자 하는 용기나 의지는 없는 대중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중은 더 이상 인격적 연합으로서의 공동체는 아닌, 자기 충족적 개별자들의 이익집단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고도의 테크놀로지, 대중화, 정보화라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가치관 아래에서 끊임없이 컴퓨터식 사고를 해야하는 "테크니컬 애니멀"로 적응시켜 가고 있다. 라오쯔(老子) 오래전에 '도'(道)가 사라지면 '덕'(德)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더 내려가 '덕'이나 '의'가 부재하면 그 대신에 '예'(禮)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고 당시 도가 부재한 상황을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현대 21세기에 들어갈 세대들 역시 신의 계시를 제거하는 탈신성화의 현대적 흐름 속에서 신의 현존을 대신하는 완벽한 기술사회를 창조하여 거기에서 인류의 안식을 취하려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그러한 사회의 밑그림쯤 될 것이다.
기술사회 건설 이면에는 '신 없이도 완벽한 사회'를 추구할 수 있다는 메마르고 외로운 인간의 투쟁의지가 깔려 있다. 이러한 인류를 향하여 교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주는 존재이어야 한다. 멀티미디어 사회가 줄 수 없는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포스트 멀티미디어 시대가 오기도 전에 교회당은 텅텅 비는 날이 올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일이다. 성령이 주는 생명력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지배하는 제가치를 넘어 '호모 페카토르'로서의 인간을 참된 인격으로서의 '하느님 형상'으로 변화시키며, 뿐만 아니라 유사(類似)인격적 가면문화의 네오-게젤샤프트를 참된 인격의 코이노니아가 살아 있는 '하느님 나라'로서의 게마인샤프트 공동체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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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06.27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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