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로마의 위치역사
2.로마의 대표적 건축물
3.로마미술
4.로마 장례 문화
2.로마의 대표적 건축물
3.로마미술
4.로마 장례 문화
본문내용
로 장식하여 토장(土葬)하거나 화장시켰으며 마네스 (Manes) 신에 대한
예식으로 거행되었다. 처음에 로마에서는 토장을 하였으나 에트루리아인들의 영향으로 화장하기 시작하였고,
무덤에는 일상 때 쓰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는데, 남자에게는 무기나 일을 할 때 사용했던 도구, 여자에게는
화장품 및 화장실에서 쓰던 도구,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등이었다. 이것은 사후 세계에서도 생이 계속된다는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7권(악명 높은 황제들), 111쪽 참조
고대 로마에서 꽃은 살아 있는 사람을 축복할 때나 무덤 앞에 바치기 때문에, 죽은 직후에는 각자 자신의
재력에 맞는 물건을 불태우는 것으로 애도의 뜻을 나타낸다. 기독교 시대가 된 뒤에도 이 관습은 양초에
불을 켜서 바치는 형태로 계승되었다. … 유복한 사람들은 값비싼 몰약을 태웠고, 가난한 사람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서 태웠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6권(팍스 로마나)의 287쪽 참조
로마인의 사생관은 사생관이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질 만큼 비종교적이고 비철학적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건전한 사생관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을 싫어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인간’ 이라고 말하는
대신 ‘죽어야 할 자’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묘지를
만들고, 죽은 사람들만 그곳에 모아두지도 않았다. 교회 단독주택의 마당 한 켠에 묻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당이 있는 산장 주인도 일부러 길가에 무덤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아피아 가도나 플라미니아 가도를 비롯한
로마식 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온갖 사회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무덤이 가도 양쪽에 각양
각색의 형태로 늘어서 있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가도는 산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길가에
무덤을 만드는 것은 죽은 뒤에도 되도록이면 산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가는 사람의 수가 어디보다 많은 도시 근처의 가도는 양쪽에 무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무덤
사이를 걸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무덤들은 각양각색의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묘비에 새겨진 문장도
다양했기 때문에, 나그네에게는 좋은 휴식시간과 휴식처를 제공했을 것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 중에도 유쾌한
것이 적지 않아서, 로마인들의 건전한 사생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예식으로 거행되었다. 처음에 로마에서는 토장을 하였으나 에트루리아인들의 영향으로 화장하기 시작하였고,
무덤에는 일상 때 쓰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는데, 남자에게는 무기나 일을 할 때 사용했던 도구, 여자에게는
화장품 및 화장실에서 쓰던 도구,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등이었다. 이것은 사후 세계에서도 생이 계속된다는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7권(악명 높은 황제들), 111쪽 참조
고대 로마에서 꽃은 살아 있는 사람을 축복할 때나 무덤 앞에 바치기 때문에, 죽은 직후에는 각자 자신의
재력에 맞는 물건을 불태우는 것으로 애도의 뜻을 나타낸다. 기독교 시대가 된 뒤에도 이 관습은 양초에
불을 켜서 바치는 형태로 계승되었다. … 유복한 사람들은 값비싼 몰약을 태웠고, 가난한 사람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서 태웠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6권(팍스 로마나)의 287쪽 참조
로마인의 사생관은 사생관이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질 만큼 비종교적이고 비철학적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건전한 사생관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을 싫어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인간’ 이라고 말하는
대신 ‘죽어야 할 자’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묘지를
만들고, 죽은 사람들만 그곳에 모아두지도 않았다. 교회 단독주택의 마당 한 켠에 묻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당이 있는 산장 주인도 일부러 길가에 무덤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아피아 가도나 플라미니아 가도를 비롯한
로마식 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온갖 사회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무덤이 가도 양쪽에 각양
각색의 형태로 늘어서 있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가도는 산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길가에
무덤을 만드는 것은 죽은 뒤에도 되도록이면 산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가는 사람의 수가 어디보다 많은 도시 근처의 가도는 양쪽에 무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무덤
사이를 걸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무덤들은 각양각색의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묘비에 새겨진 문장도
다양했기 때문에, 나그네에게는 좋은 휴식시간과 휴식처를 제공했을 것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 중에도 유쾌한
것이 적지 않아서, 로마인들의 건전한 사생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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