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한국음악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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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상고시대(上古時代)

2. 삼국시대

3. 통일신라시대

4. 고려시대

5. 조선시대

6. 근세와 현대

본문내용

1장의 박자수도 가곡보다 적어서 가곡을 단순화한 것이 바로 시조라 할 수 있다.
근세와현대
6. 근세와 현대
고종31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으로 대한제국은 급속도로 붕괴의 과정을 밟게 되고, 이후 한일합방과 일제 식민지시대로 접어들면서 음악문화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궁중음악은 왕실의 몰락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으며 궁중음악에 종사하던 많은 음악인과 궁중연회에 참여하였던 무기(舞伎)들은 생업을 바꾸거나 새로이 생겨난 공연장에서 공연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는 왕실을 위한 의식음악(연향, 조회, 동가(動駕), 군례(軍禮)의 중단, 제례음악의 중지, 궁중음악인의 감소를 가져왔다. 갑오경장 직후만 해도 772명이나 되던 악사들은 차차 문화 말살정책으로 1917년에는 겨우 50여명만이 남게 되었다. 서양음악이 들어왔는가 하면 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되고 국악은 또다시 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조 음악이 공연예술로 전환되는 시대적 변천과정을 겪으며, 『조선악개요(朝鮮樂槪要)』 『조선아악요람(朝鮮雅樂要覽)』 등 여러가지 악서의 출판, 경종보 대금보 피리보 당적보 해금보 아쟁보 단소보 현금보 등의 악보제작과 오선보로의 채보 음반취입 등의 작업이 이루어져 조선조의 음악전통이 현대로 전승되는 과도기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이왕직 아악부(雅樂部)의 전통은 해방 이후 후계자 양성을 위한 구황궁아악부로 존속하다가 1950년 국립국악원의 창설로 그 맥을 이었다. 조선조 중 상류층에서 애호되던 정악도 왕조의 몰락과 신분제도의 붕괴로 크게 위축되었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공연형태를 통해 대중에게 파고들기 시작한 민속악에 밀려나는 위기를 맞아, 정악 애호가들이 정악의 융성을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코자 1909년에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를 결성하게 된다. 이는 최초의 사설의 음악기구라는 역사적 의의와 전통음악과 양악을 동시에 교육시키는 음악교육기관으로 평가된다.
잡가는 오늘날 12잡가로 알려진 긴 잡가와 빠른 휘모리 잡가가 주류를 이룬다.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평양가>, <달거리>, <십장가>, <방물가>, <형장가>, <출인가> 등이며 휘모리 잡가는 <만학천봉>, <곰보타령>,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한잔 부어라>, <순검타령> 등이 있다. 특히 서울에는 잡가를 잘 부르는 '사계(四契)축 소리꾼'과 선소리를 잘 부르는 '오강(五江)의 소리꾼' 들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서울 노래의 맥을 이어 주었다.
창극은 판소리의 새로운 변형으로서 현대국악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 판소리를 각 등장 인물별로 그 역을 분담하여 분창하는 양식으로 출현하였다. 이는 외래 공연양식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이 시기의 사회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창극은 최초의 서양식 원형극장인 원각사에서 첫 선을 보였다. 판소리는 창극에 밀려 고유의 음악적 발전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성악연구회> 결성 이후 판소리 명창들은 대규모 창극공연과 판소리 공연활동을 벌임으로써 남도음악의 전승을 공고히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에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1960년에 접어 들면서 국악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져 중앙의 대소 연주를 비롯, 지방순회연주, 국외의 파견 연주, 국가 의식의 연주악, 문묘 종묘 등 연례적인 제악 연주 및 TV 라디오 방송을 통한 각종 연주회를 연 백회이상 실시하여 국악 보급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국립국악원은 아악이나 창작 국악 뿐만 아니라 민속악(民俗樂)부분, 즉 판소리 산조(散調) 민요(民謠) 민속무용(民俗舞踊)까지도 포괄한 범국악(汎國樂)의 종가(宗家)로 군림해 왔다.
현재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들이 다양한 곳에서 벌여지고 있다. 국악인들의 끈질긴 집념과 60년대의 탈춤부흥운동, 70년대의 마당극, 풍물, 마당굿, 대동놀이 등 연희성을 띠는 연행예술운동의 진행으로 우리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풍물의 대중화는 서양음악에 밀리는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우리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우리 국악을 세계속에 독특하고 훌륭한 음악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방송매체에서도 국악의 이론 등 다채로운 공연을 소개하고 있고, 이러한 폭넓은 활동은 현재 국악의 재평가, 정립으로 새로운 시도를 도모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 국악을 활성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모습은 국악의 해를 맞아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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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2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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