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거두 한슬릭(Eduard Hanslik 1825-1904)은 치명적이고도 철저한 혹평을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여행 때마다 브로즈키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즐겨 연주하였고 종래는 인정을 받아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협주곡과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되었다.
이 협주곡이 일반의 이해는 물론, 연주자들도 싫어하였고 멸시했던이유는 기교적으로 어렵고, 전통과 관습에 젖어있던 당시 청중들 귀에는 전혀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진 때문이다. 이 작품의 소박하고도 거칠은 곡상, 그리고 러시아적 체질에 근대적이고 현란한 연주기교의 표현은 세련미에 심화되었던 당시의 감각에는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초연자인 브로즈키에게 헌정되었으며 연주시간의 약 34분이다.
하이페츠의 초절기교를 담은 연주에서는 옛 영화를, 그리고 정경화의 신작 앨범에서는 촉촉한 감수성을 느껴보기로 한다.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지만 정경화는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정말 놀라운 감수성을 보여준다.
96.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3중주 A단조 Op.50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이 작품에서 어느 위대한 예술가란 다름아닌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초대 원장이기도 했던 그는 차이코프스키를 이 학교에 불러 교편을 잡도록 주선한 장본인 이기도 하고, 간간이 혹평을아끼지 않기도 했던 스승이었다. 1881년 루빈스타인의 작고 소식을 들은 차이코프스키는 그때까지 한번도 쓰지 않았던 피아노 3중주의 형식을빌려 스승을 추모하기로 결심한다. 첫 악장은 비가적인 악장, 여기서는차이코프스키의 멜랑콜릭한 성품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첼로와 피아노,그리고 바이올린이 한번씩 선보이는 첫 주제는 절품이다. 둘째 악장이자마지막 악장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피아노 3중주곡의 연주는 각기 이름높은 세 사람이 모여 연주하는 것보다는 전문 트리오의 연주가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수크 트리오의연주를 추천한다.
97. 베르디 / 서곡집
<비바 베르디>란 말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1858년, 베르디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극장에서 그렇게 소리쳤다. 이 슬로건은 베르디의 오페라에 보낸 환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빅토리오 임마누엘 극장의 복위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바람이기도했다(베르디란 말이 이탈리아 국왕 임마누엘의 약자처럼 쓰일 수 있기때문이다).
베르디는 모든 면에서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어느 누가 그처럼굴곡이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인가. 무거운 주제로부터<팔스타프>와 같은 농익은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베르디의 능력은 끝간데 없이 펼쳐진다. 모든 오페라마다 각기의 막은 서곡으로 열리기 마련인데 그 해당하는 막의 음악적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모노 녹음으로서는 토스카니니의 녹음이 권위가 있고 스테레오 시대에선 카라얀의 연주가 '예상 외로' 나쁘지 않다. 이런 수식이 따라붙는 이유는 카라얀이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98. 베르디 / 오페라 <아이다>
1869년에 완성된 일조의 축제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 이집트가 세운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카이로에서 막을 올렸다. 이디오피아의 왕녀인 아이다와 적국의장군 라다메스와의 슬픈 사랑이 핵심이다.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 온아이다는 그 사랑을 질투하는 이집트의 공주 암네스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한다. 라다메스 또한 모든 영예와 부를 버리고 그녀를 뒤따른다.
<아이다>의 규모는 대단히 크다. 베르디가 스스로 그 규모를 의식했을 정도로 장대하고 호화로운 무대구성은 당시로선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출정 전 라다메스가 부르는 <정결한 아이다>와 그에 대한 응답격인 <이기고 돌아오라>는 이 오페라의 대표적인 아리아이다.
현역 최고의 라다메스는 물론 도밍고이다(파바로티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밍고의 몇가지 녹음에서 찾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아바도의 음반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99. 베르디 /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롯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3대 거성이 닦아 놓은 터전을 바탕으로영원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금자탑을 남긴 사람이 베르디(Giuseppe Fran-cesco Verdi 1813-1901)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소년시절,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가 되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장인이 된 바레티의 호의로 밀라노 유학을 떠나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베르디는 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애국심이 강하여 주위로 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부와 명예를 동시에 소유하였다. 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레퀴엠과 같은 종교음악과 몇곡의 성악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음악으로서 1839년부터 50여년간 32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베르디의 창작활동은 크게 3시기로 구분되는데 1853년까지에 해당하는 초기에 이미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넘친 곡들이 창작되고 있어서, 그의 음악적 생애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100. 비발디 / 협주곡집 <4계>
비발디는 1675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또한바이올린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그는 다작가로서 여러 장르에걸쳐 광범위하게 작품을 썼으며 협주곡은그의 작품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베토벤의 <운명>,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등과 함께 가장 많이 애청되고 있는 곡중의 하나인 <4계>는 1725년 암스테르담에서 <화성과 창의의 시도>란 부제로 출반된 작품 8의 협주곡집 12곡중 처음 4곡을 말한다.
작곡자 자신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간단한 표제를 붙여 <4계>라부르게 된 이곡은 각각 3개의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표제음악의 선구자적인 작품으로서 작자미상의 소네트(14행시)에 의해서 쓰여졌다. 4계절의 정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어 누구나 듣고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감미롭고 사랑스런 작품이다.
<4계>의 레코딩에는 워낙 훌륭한 것이 많아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거의불가능하다. 이 무지치의 몇종류의 녹음이 손쉬운 선택이다. 그렇지만<4계>가 이 무지치만의 전유물은 될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여행 때마다 브로즈키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즐겨 연주하였고 종래는 인정을 받아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협주곡과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되었다.
이 협주곡이 일반의 이해는 물론, 연주자들도 싫어하였고 멸시했던이유는 기교적으로 어렵고, 전통과 관습에 젖어있던 당시 청중들 귀에는 전혀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진 때문이다. 이 작품의 소박하고도 거칠은 곡상, 그리고 러시아적 체질에 근대적이고 현란한 연주기교의 표현은 세련미에 심화되었던 당시의 감각에는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초연자인 브로즈키에게 헌정되었으며 연주시간의 약 34분이다.
하이페츠의 초절기교를 담은 연주에서는 옛 영화를, 그리고 정경화의 신작 앨범에서는 촉촉한 감수성을 느껴보기로 한다.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지만 정경화는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정말 놀라운 감수성을 보여준다.
96.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3중주 A단조 Op.50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이 작품에서 어느 위대한 예술가란 다름아닌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초대 원장이기도 했던 그는 차이코프스키를 이 학교에 불러 교편을 잡도록 주선한 장본인 이기도 하고, 간간이 혹평을아끼지 않기도 했던 스승이었다. 1881년 루빈스타인의 작고 소식을 들은 차이코프스키는 그때까지 한번도 쓰지 않았던 피아노 3중주의 형식을빌려 스승을 추모하기로 결심한다. 첫 악장은 비가적인 악장, 여기서는차이코프스키의 멜랑콜릭한 성품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첼로와 피아노,그리고 바이올린이 한번씩 선보이는 첫 주제는 절품이다. 둘째 악장이자마지막 악장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피아노 3중주곡의 연주는 각기 이름높은 세 사람이 모여 연주하는 것보다는 전문 트리오의 연주가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수크 트리오의연주를 추천한다.
97. 베르디 / 서곡집
<비바 베르디>란 말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1858년, 베르디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극장에서 그렇게 소리쳤다. 이 슬로건은 베르디의 오페라에 보낸 환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빅토리오 임마누엘 극장의 복위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바람이기도했다(베르디란 말이 이탈리아 국왕 임마누엘의 약자처럼 쓰일 수 있기때문이다).
베르디는 모든 면에서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어느 누가 그처럼굴곡이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인가. 무거운 주제로부터<팔스타프>와 같은 농익은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베르디의 능력은 끝간데 없이 펼쳐진다. 모든 오페라마다 각기의 막은 서곡으로 열리기 마련인데 그 해당하는 막의 음악적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모노 녹음으로서는 토스카니니의 녹음이 권위가 있고 스테레오 시대에선 카라얀의 연주가 '예상 외로' 나쁘지 않다. 이런 수식이 따라붙는 이유는 카라얀이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98. 베르디 / 오페라 <아이다>
1869년에 완성된 일조의 축제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 이집트가 세운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카이로에서 막을 올렸다. 이디오피아의 왕녀인 아이다와 적국의장군 라다메스와의 슬픈 사랑이 핵심이다.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 온아이다는 그 사랑을 질투하는 이집트의 공주 암네스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한다. 라다메스 또한 모든 영예와 부를 버리고 그녀를 뒤따른다.
<아이다>의 규모는 대단히 크다. 베르디가 스스로 그 규모를 의식했을 정도로 장대하고 호화로운 무대구성은 당시로선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출정 전 라다메스가 부르는 <정결한 아이다>와 그에 대한 응답격인 <이기고 돌아오라>는 이 오페라의 대표적인 아리아이다.
현역 최고의 라다메스는 물론 도밍고이다(파바로티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밍고의 몇가지 녹음에서 찾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아바도의 음반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99. 베르디 /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롯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3대 거성이 닦아 놓은 터전을 바탕으로영원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금자탑을 남긴 사람이 베르디(Giuseppe Fran-cesco Verdi 1813-1901)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소년시절,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가 되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장인이 된 바레티의 호의로 밀라노 유학을 떠나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베르디는 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애국심이 강하여 주위로 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부와 명예를 동시에 소유하였다. 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레퀴엠과 같은 종교음악과 몇곡의 성악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음악으로서 1839년부터 50여년간 32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베르디의 창작활동은 크게 3시기로 구분되는데 1853년까지에 해당하는 초기에 이미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넘친 곡들이 창작되고 있어서, 그의 음악적 생애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100. 비발디 / 협주곡집 <4계>
비발디는 1675년경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또한바이올린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그는 다작가로서 여러 장르에걸쳐 광범위하게 작품을 썼으며 협주곡은그의 작품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베토벤의 <운명>,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등과 함께 가장 많이 애청되고 있는 곡중의 하나인 <4계>는 1725년 암스테르담에서 <화성과 창의의 시도>란 부제로 출반된 작품 8의 협주곡집 12곡중 처음 4곡을 말한다.
작곡자 자신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간단한 표제를 붙여 <4계>라부르게 된 이곡은 각각 3개의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표제음악의 선구자적인 작품으로서 작자미상의 소네트(14행시)에 의해서 쓰여졌다. 4계절의 정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어 누구나 듣고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감미롭고 사랑스런 작품이다.
<4계>의 레코딩에는 워낙 훌륭한 것이 많아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거의불가능하다. 이 무지치의 몇종류의 녹음이 손쉬운 선택이다. 그렇지만<4계>가 이 무지치만의 전유물은 될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