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을 지향하는 기독교적 종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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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시작하는 글

II. 한국교회의 현주소

III. 기독교교육의 재개념화

IV. 기독교적 종교교육의 새로운 모형: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
1. 프락시스 접근들(praxis approaches)
2.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theopraxis approach)

V. 마치는 글

본문내용

나님의 나라를 계시하셨다(예: 마13:1-53).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언자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왜곡된 의사소통을 수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incarnation)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왜곡된 의사소통구조를 수정하는 대표적인 형식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적 프락시스를 통해 활동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의사소통적 프락시스에 대한 인간의 신앙적 응답과 참여는 수정주의신학자들과 해석학적 교육론자들이 중시하는 것처럼 해석학적 프락시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활동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구속적인 삶의 활동들은 '언어'(text)의 형식에 의하여 '성서'와 '전통'으로 우리에게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석학적 프락시스를 통해 텍스트에 접근함으로써 텍스트 앞에(in front of) 계신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게되고, 우리의 '존재 지평'이 전유와 초월의 과정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사소통적 프락시스에 해석학적 작업을 통해 참여하는 기독교교육의 활동은 다양한 형태를 고려할 수 있다. 특히 그룸(Groome)이 제안했던 '공유적 프락시스 접근'은 하나님의 의사소통적 프락시스에 참여하는 유용한 접근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룸의 방법론은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서 전통의 범위를 '성서'와 '교회의 전통'(특히, 가톨릭교회와 제1세계)에 제한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한국교회의 상황과 관계시킨다면, 의사소통적 프락시스에의 참여는 전통의 범위를 '성서'와 '가톨릭교회의 전통'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또 다른 텍스트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활동은 특징지역과 특정 문화에 제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사소통적 프락시스는 하나님이 인간 및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으로써, 기독교교육자는 성서와 전통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해석학적 프락시스를 통해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은 '영성적 프락시스'(spiritual praxis)의 차원을 갖는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세계를 향해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도록 격려하시는 분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영성적 프락시스'의 주체이다. 여기서 '영성적 프락시스'란 성령의 활동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고'(요16:13),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활동'(레 19: 2; 고전 12:4-11; 갈 5:22-25)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있게 만드는" 거룩한 성화의 삶으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프락시스는 각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성을 통해 '회심'(metanoia)를 촉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신앙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런 면에서 로너간(Bernard Lonergan)이 프락시스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게 위해 '인격적 변형'으로서의 '회심'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영성적 프락시스를 적절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성적 프락시스에 응답하기 위한 기독교교육의 활동은 적어도 다음 세가지 형태로 고려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영성적 프락시스이다. 기도와 묵상 등이 대표적인 개인적 차원의 영성적 프락시스이다. 둘째는 신앙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영성적 프락시스이다. 여기에는 신앙공동체의 예배 및 성례전에 참여하거나 선교 및 봉사에 참여하는 활동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셋째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영성적 프락시스로써, 사회의 구조가 정의와 해방을 지향하도록 실천하는 활동이다.
V. 마치는 글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결정을 해야할 전환기에 서 있다. 그것은 현상유지(status quo)와 도약이라는 선택의 길목이다. 만약 여기서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과거에 당연시되었던 기독교교육의 형태를 비판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기독교교육의 목표를 성장에서 성숙으로 전환하고, 기독교교육의 현장을 교회학교에서 평생교육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교육의 개념을 전도의 수단에서 기독교적 앎과 기독교적 삶의 통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연구자는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을 제안하였다. 이 접근은 적어도 세가지 프락시스(의사소통적 프락시스, 해방적 프락시스, 영성적 프락시스)의 통전성을 강조한 것으로써, 그 실천에 있어 프락시스 간의 균형성을 유지하는 것이 요청된다. 왜냐하면 과거의 프락시스 접근이 어느 하나에만 치우친 나머지 다른 프락시스 접근을 소홀히 한 결과, 왜곡된 기독교적 신앙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는 바른 앎과 바른 삶의 연결은 바른 신앙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그것이 '영성적 프락시스'를 통해 가능할 것임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박종천교수가 '바른경험'(orthopathy)이 '바른 앎'(orthodoxy)과 '바른 실천'(orthopraxis)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따라서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은 세가지 프락시스의 통전성을 중시하면서도 영성적 프락시스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하는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접근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관계로 어느정도 효율성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기독교적 앎과 삶을 연결시키는데에는 분명히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헤쉘이 암시한 것처럼,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은 하나님을 배제한 실천이 아니라, 창조와 해방, 그리고 성화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프락시스를 유비적으로 따르는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보람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존재의 유비가 아니라 '행동의 유비'(analogy of praxis, 연구자추가)로 해석되어야한다. 인간은 그 행동(실천)에서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그 분이 자비하듯 너희도 자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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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7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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