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시대에 복잡한 논쟁에서 루터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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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용과 직무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율법과 행위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세우며 율법의 행위를 필요로 하며 두리가 율법은 선하고 유익하지만 전절하게 사용될 때 그러하다. 울법의 적절한 사용은 첫째로 시민적인 범죄들을 재갈물리는 것이요, 다음으로는 영적인 범죄들을 드러내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생명이 아니라 죄와 죽음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주고 드러내 주는 빛이기도 하다. 율법이 진정한 의미로 사용될 때 죄를 들러내고 진노를 불러오며 사람들을 고발하고 두렵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이것이 율법의 고유한 사용이며, 이러한 목적을 율법이 넘어서서는 안된다. 반대로 복음은 두려워하는 마음들을 비춰주고 깨어나게 하며 위로하고 일으켜 주는 빛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바울이 말할때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육체의정욕, 즉 육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교만, 분노, 침체, 조급함, 회의 등등을 느낄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하게 되는데, 이것은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다. 가끔 육체가 영과 새로운 싸움을 일으키는 것을 느낀다거나 점점 육체를 물리칠 수 없고 육체로 하여금 성령에 순종하게 만들 수없다고 하여 절망하지 말라. 이러한 자기의 육신속에 육과 영의 싸움이 있음을 느낄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실망하지말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죄가 거하는 육체를 벗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육체가 아니라 성령에 복종할 것이다. 나는 믿음과 소망으로써 그리스도를 붙잡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나는 스스로를 일으키고, 그렇게 일으켜진 나는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경건한 자는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신 화해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자신들의 육체 안에 있는나머지 죄가 그들의 책임으로 돌려지지 않고 값없이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이 소욕을 이루지 않기위하여 육체에 대항하여 성령으로 싸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그들 자신이 부분적으로는 육체를, 부분적으로는 성령을 갖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지배하고 육체가 복속되며 의가 지배하고 죄가 섬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을 느끼는 자들로 그들의 구원에 관하여 절망하지 않도록 하라. 이러한 성령과 육체의 싸움은 모든 성인들이 했었고 느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신다고 하여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돌리지 아니하심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속죄소인 그리스도를 부여잡는자들에게 그렇게 하신는 것이다.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모든 죄들이 사함을 받고 그들 속에 남아 잇는 죄들도 그들에게 돌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말함은 믿음을 받은 후 죄에 대하여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함이다.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주셨기때문에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속에 죄를 가지고 있고 날마다 죄를 범죄하지만 그는 여전히 경건하다. 이로써 우리는 누가 진짜 성도인가를 알 수 있다. 성도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이 움직일 줄 모르고 육체의 소욕이나 정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이나 돌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것 처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 있고 죄를 범할 수 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말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거스르며 우리에게 대항하며 싸우면서 우리를 괴롭히며 속박하는 육체의 소욕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원치는 않지만 죄를 느끼며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그러면 이것이야말로 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한다: 그러한 것으로 하여금 너희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라. 오직 너희가 성려의 인도함을 받도록 노력하라. 즉, 육체를 거스르고 그 소욕을 이루지 않는 바로 그 의지를 기꺼이 따르고 순종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이라(이것이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이끌리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율법아래 있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롬 7장에서 말한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 섬기노라, 즉 성령으로는 나는 어떤 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육체로는 나는 죄의 법을 섬긴다. 그러므로 신실한 자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고 성령안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를 느끼고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만 율법은 그들을 고발하거나 그들에 대하여 죽음을 선고할 수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지배의 권능은 아주 크기 때문에 경건한자들이 실제로 죄인 것을 범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고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윌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달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아무 죄도 없으시며 따라서 율보은 그를 고발할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율법으로 부너 자유롭다. 그러므로 그대가 육체와 성령의 이러한 갈등 속에 있을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의 눈앞에 두고 그 속에서 성령의 위로를 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따라서 육체의 충동들이 격렬할 때 유일한 치료책은 성령의 검, 즉 구원의 말씀(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회개하여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지니고 그 충동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요컨대 바울이 육체와 성령의 갈등 또는 싸움에 관한 이 논의에서 가르친 모든 것의 취지는 이것이다. 성도들 또는 신자들은 성령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없다. 영은 극히 순수하지만 육체가 영에 결합될 때 그러한 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죄사함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은 성령 안에서 걷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지 않는다. 즉, 율법은 그들을 고발하거나 두렵게 할 수 없다. 그렇게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율법은 결코 그들을 절망에 빠지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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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10.02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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