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무엇인가?
본 자료는 6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해당 자료는 6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6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신학이란 무엇인가?

2. 계시와 삼위일체

3. 창조, 구원, 인간의 문제

4.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교회

본문내용

다.
우리가 성찬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나누어짐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주의 성찬은 하나님의 삶이 인간의 삶에 나눠짐을 뜻하는 성례전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 이전부터 자신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존재하시는 하나님이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사랑의 삶을 인간에게 나누어주신다. 신앙인은 성찬식에 참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교제의 삶 가운데 참여한다.
우리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세례와 성찬의 종말론적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세례를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볼 때, 세례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징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가운데 이 세계의 구원의 완성을 고대하며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과 연대를 이룬다. 성찬도 역시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희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한다. 우리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이 세계 속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 가운데 참여한다.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것이기에, 신앙인은 성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가운데 이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영적으로, 또한 육신적으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자각한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자연의 곡물과 열매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성찬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동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지시한다. 인간 뿐 아니라 자연도 역시 그리스도의 현존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역 가운데 봉사한다. 밀리오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주의 성찬은 개인적 구원, 공동체의 구원, 그리고 우주적 구원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아름답게 묘사해준다."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주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종말론의 주제들은 비록 조직신학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나, 종말론의 시각은 모든 기독교 진술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완성을 떠나서는 모든 기독교 교리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이해하지 않고 마치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인 듯이 간주한다면, 우리의 교회이해와 성만찬 이해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완성에 대해 무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이해와 성례전 이해를 전개함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기독교 신앙은 세계의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희망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 죄와 악과 죽음의 세계는 모두 정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피조물의 세계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개인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의 완성을 모두 포괄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삶이 완성되며 영화롭게 됨을 뜻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개인적인 완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공동체의 차원에도 적용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 사회적 차원을 넘어서 우주적 차원을 향한다. 즉 인간과 세계 뿐 아니라 자연 및 모든 우주가 영생으로 표상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한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충만한 삶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영생이 하나님의 충만한 삶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천국에서의 삶은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지루한 삶의 연장을 뜻하지 않는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천국에서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활동적으로 일하게 것이다. 물론 이 땅에서 맛보는 것과 같은 무익하고 지루한 일은 사라질 것이나 우리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들은 계속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우리가 고독한 영혼으로서 지루하게 무한정 오래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온갖 종류의 축복을 맛보게 된다. 우리가 종말에 맛보게 되는 영원한 생명은 영혼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새 하늘' 뿐 아니라 '새 땅'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 인간의 영혼들만의 교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삶과 교제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다스리심에 의하여 성취되는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노력과 업적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이해하는 것은 세계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세계로부터 도피함을 뜻하지 않는다. 기도하기 위하여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참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듯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희망하는 것은 현재의 과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중요한 과제가 자신들에게 부과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인간만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 맛보게 하는 작은 희망들의 실현을 위해 애써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희망 가운데 이 땅위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말론은 오늘의 세계를 향한 윤리적 도전을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Gabe)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동시에 과제(Aufgabe)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이 펼쳐가는 종말론적 희망은 인간의 실천적 행동을 마비시키는 도피적이며 피안적인 공상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에 불을 붙이는 참여적이며 구체적인 비젼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계 11:15)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02.10.03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11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