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절망의 시대
2. 행동하는 지식인
3. 『희망』
4. 진정한 자유주의자
2. 행동하는 지식인
3. 『희망』
4. 진정한 자유주의자
본문내용
스, 구에르니코) 등이지만, 이들의 현재의 목표가 달성된 다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말로 자신이 언제나 자유파의 편에 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자신이 {희망}을 통해서 그리고자 한 것은 이처럼 당파를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뿐만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이었다. 여기에는 하이메, 알베아르, 셈브라노, 발라도, 네구스, 푸이그 외에도 이탈리아인 스칼리, 마르첼리노, 카무치와 독일인 슈라이너와 부르츠, 백계 러시아인 카를리치, 알제리인 사이디, 영국인 하우스, 그리고 마넹을 비롯한 프랑스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거의 전체 유럽인들이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운동이 인류 전체의(적어도 유럽 전체의) 운동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어느 사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소설의 보다 큰 중요성은 그것이 소설기법상으로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말로는 이 소설에서 몇몇 인물들의 생애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章)을 바꿀 때마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집단을 서술함으로써 스페인 전역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연대기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익숙한 독자에게 이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술이 개인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데 적합하다면, 이처럼 스페인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을 기록하는 데는 그것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말로는 소설의 서술기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서 말로는 한 개인의 내면의 느린 변화,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집단들 상호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말로 자신의 소설적 기법에 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유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로의 예술적인 성격은, 그가 주인공들 가운데 예술적인 감수성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이유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선택하는 데 있어서 치밀한 의도성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치밀한 의도 때문에 말로의 작품을 읽는 데에는 독자의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 자체가 독자의 의식을 빠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소설기법의 사용은, 말로 자신이 인류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역사 속에서 변모하는 개인에게서 찾고 있는 사실과 함께 주목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로가 이 작품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은, 죽음과 운명과의 싸움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의 삶에 대한 의식(意識)으로 변형된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이들 공화파가 역사적으로는 실패하지만 그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 개인의 성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서로의 의지의 결합에 도달한 공동의 연대감을 느끼게 될 때 세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로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로는 자기 자신의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위협과 삶의 수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남성적인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말로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지 모른다.
말로는 분명히 20세기의 비극을 스스로 겪으면서 그것의 극복을 위한 남성적인 문학을 정립한 어쩌면 마지막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대문자로 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살고 쓰다가 자신의 일생을 마친 점에서 드골에 비유될 만한 프랑스 정신의 문학적 위대성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 자신이 {희망}을 통해서 그리고자 한 것은 이처럼 당파를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뿐만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이었다. 여기에는 하이메, 알베아르, 셈브라노, 발라도, 네구스, 푸이그 외에도 이탈리아인 스칼리, 마르첼리노, 카무치와 독일인 슈라이너와 부르츠, 백계 러시아인 카를리치, 알제리인 사이디, 영국인 하우스, 그리고 마넹을 비롯한 프랑스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거의 전체 유럽인들이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운동이 인류 전체의(적어도 유럽 전체의) 운동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어느 사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소설의 보다 큰 중요성은 그것이 소설기법상으로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말로는 이 소설에서 몇몇 인물들의 생애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章)을 바꿀 때마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집단을 서술함으로써 스페인 전역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연대기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익숙한 독자에게 이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술이 개인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데 적합하다면, 이처럼 스페인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을 기록하는 데는 그것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말로는 소설의 서술기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서 말로는 한 개인의 내면의 느린 변화,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집단들 상호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말로 자신의 소설적 기법에 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유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로의 예술적인 성격은, 그가 주인공들 가운데 예술적인 감수성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이유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선택하는 데 있어서 치밀한 의도성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치밀한 의도 때문에 말로의 작품을 읽는 데에는 독자의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 자체가 독자의 의식을 빠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소설기법의 사용은, 말로 자신이 인류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역사 속에서 변모하는 개인에게서 찾고 있는 사실과 함께 주목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로가 이 작품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은, 죽음과 운명과의 싸움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의 삶에 대한 의식(意識)으로 변형된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이들 공화파가 역사적으로는 실패하지만 그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 개인의 성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서로의 의지의 결합에 도달한 공동의 연대감을 느끼게 될 때 세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로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로는 자기 자신의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위협과 삶의 수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남성적인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말로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지 모른다.
말로는 분명히 20세기의 비극을 스스로 겪으면서 그것의 극복을 위한 남성적인 문학을 정립한 어쩌면 마지막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대문자로 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살고 쓰다가 자신의 일생을 마친 점에서 드골에 비유될 만한 프랑스 정신의 문학적 위대성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