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미약한 해석은 끝이 났고,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과격한 교훈에 따라 애쓰고 노력해야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울러 이 16:16의 가르침은 앞에 나온 교훈이 (특히 16:1-13) 옳은 것임을 확증하는 역할과 더욱 순종키 위해 애쓰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다음에 나오는 비유를 그 기준, 즉 과격한 재물 사용의 윤리에 맞춰 해석하고 힘써 순종의 노력을 하도록 방향지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덧붙임>
이런 말씀을 덧붙일 자격이 전혀 없음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오늘의 교회를 위해 조금만 덧붙인다면, 너무나 많은 현대의 교인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새 시대의 과격한 가르침에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지 옛 시대의 미약한 교훈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재물이 하나님 축복의 증거가 아니며, 재물의 과격한 사용만이 새 시대의 바른 삶이며, 그래서 재물로 이웃을 도우려는 애씀과 그에 따르는 고생이 필연적이라고 하는 새 시대의 가르침보다, 많이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거기서 약간 남을 구제하면 최고의 선행이라고 생각하던 옛 시대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당신을 비웃는다고 꾸짖으신 그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 ?
아울러 이 16:16의 가르침은 앞에 나온 교훈이 (특히 16:1-13) 옳은 것임을 확증하는 역할과 더욱 순종키 위해 애쓰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다음에 나오는 비유를 그 기준, 즉 과격한 재물 사용의 윤리에 맞춰 해석하고 힘써 순종의 노력을 하도록 방향지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덧붙임>
이런 말씀을 덧붙일 자격이 전혀 없음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오늘의 교회를 위해 조금만 덧붙인다면, 너무나 많은 현대의 교인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새 시대의 과격한 가르침에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지 옛 시대의 미약한 교훈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재물이 하나님 축복의 증거가 아니며, 재물의 과격한 사용만이 새 시대의 바른 삶이며, 그래서 재물로 이웃을 도우려는 애씀과 그에 따르는 고생이 필연적이라고 하는 새 시대의 가르침보다, 많이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거기서 약간 남을 구제하면 최고의 선행이라고 생각하던 옛 시대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당신을 비웃는다고 꾸짖으신 그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