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성폭력의 실상 Ⅰ: 감추기와 드러내기
1)감추어진 성폭력의 실상
2)왜 성폭력은 은닉되는가
3)드러내기와 극복하기
2.성폭력의 실상II: 다양한 성폭력과 그 대응
1)피폐화된 여성의 삶
2)헝클어진 실타래
3)열쇠를 찾아서
4)자녀의 성교육은 이렇게 하세요~~
5)청소년의 성경험 세계
6)성에 관한 오해들
7)성교육 지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8)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9)사랑의 두 가지 의미
10)성, 그 미묘한 덫
11)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12)성폭력 피해-심각한 후유증 유발
1)감추어진 성폭력의 실상
2)왜 성폭력은 은닉되는가
3)드러내기와 극복하기
2.성폭력의 실상II: 다양한 성폭력과 그 대응
1)피폐화된 여성의 삶
2)헝클어진 실타래
3)열쇠를 찾아서
4)자녀의 성교육은 이렇게 하세요~~
5)청소년의 성경험 세계
6)성에 관한 오해들
7)성교육 지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8)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9)사랑의 두 가지 의미
10)성, 그 미묘한 덫
11)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12)성폭력 피해-심각한 후유증 유발
본문내용
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이중불안에 시달린다. 임신에 대한 불안과 남성의 변심에 대한 불안이다. 아무리 피임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경험 미숙일 수밖에 없으므로 임신의 불안은 떠나질 않는다. 임신불안은 여성들로 하여금 성관계를 꺼려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서의 성관계를 원하게 되기도 한다.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면 성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결혼 초기에는 여전히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성의 주도권을 남성이 잡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은 오히려 남성을 구속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임신과 변심의 불안에서 벗어난 여성은 이제 남성의 사랑과 능력을 성관계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더욱이 대중문화가 부추긴 성 상품화 현상은 안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여성은 성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쌓게 된다. 그리하여 성적 능력은 남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사랑이 배제된 성을 남성에게 허용함으로써 여성들을 괴롭혀왔던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결국에는 남성들에게도 억압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가장 자유로운 공간 이여야 할 사랑과 성,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까지 지나치게 신비화되어왔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물화되어왔다. 사랑과 성은 인간 사이의 가장 친밀한 만남이 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권력과 억압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극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무시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성의 권력관계는 대부분 누르는 자는 남성, 눌리는 자는 여성으로 도식화되어왔다. 사랑과 성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과 성의 제자리 찾기, 즉 사랑과 성을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장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마주보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재와 같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에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의 개혁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깨임과 실천이 없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어쩌면 기존의 사랑과 성의 신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쉬운 길이며 그렇게 순리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욕과 고통을 견뎌 내는 데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지 않는가. 그리고 지배와 소유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만약 우리가 영원히 그것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뭐가 그리 대수인가. 이러한 체념과 안일 속에서 우리의 사랑과 성은 갈수록 사고파는 물건처럼 되어가고 있다.
시장의 원리는 남녀간의 교환조건을 더욱 이해 타산적으로 정교 화시켜 이 시대의 왕자는 이제 공주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공주의 두뇌와 재산까지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 대신 왕자들은 점점 더 경쟁의 논리에 휘말려들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인격 따위는 서슴없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다. 혼인시장은 갈수록 물신숭배의 늪으로 빠져들어가, 혼수 때문에 아내를 때리는 지식인 남성들의 한심한 이야기들이 자주 화제에 오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이 웃돈을 얹어주어야 팔리는 불량품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교환된 남녀관계가 어떻게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사랑 타령은 집어치우고 원초적 본능이라는 성을 통해서 인간해방을 이루자는 소위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러면 과연 들어줄 만한 소리인가. 유감스럽게도 유사 이래 쾌락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치고 성관계에 내포된 남성우월주의를 인식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제 사랑과 성의 제자리 찾기는 사랑과 성을 실천하려는 남성과 여성 개개인의 구체적인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사랑과 성에 대한 숱한 신화와 미신을 과감히 깨뜨려나가는 용기 있는 젊은이로 살아야 한다.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숙명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을 구속하고 끝내는 남성까지도 비인간화시키는 성과 사랑의 언어를 새롭게 일궈나가야 한다.
거창하게 사랑과 성의 혁명을 운위할 필요도 없다. 각자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젊은이라면 그것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성의 주인은 두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과 성의 전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등한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사랑과 성은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며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로간에 인격적인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격적인 존중은 서로가 서로를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남성의 능력과 여성의 외모를 교환하는 식의 관계, 혹은 권력과 부를 교환하는 식의 관계는 시작부터 서로를 대상화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그 속에 빠져서 이성을 잃어야 하는 함정이어서도 곤란하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랑만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한 사람에게 소유되기 위하여 다른 모든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뜻이다.
여성에게도 사랑 성 결혼은 인생의 과정이어야 하며 더 이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자기를 확장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의 삶을 둘러싸고 잇는 사랑과 성의 신화에 당당하게 맞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남성도 자신을 도구적인 존재로만 몰아가는 문화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사랑의 본성을 자기희생이나 헌신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능력을 통하여 자신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사랑과 성은 이성과 감성의 통합, 정신과 육체의 조화 속에서 너와 내가 독립적인 존재면서 동시에 합일을 이룰 수 있는 열린 마당이어야 한다.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사랑과 성의 언어는 결국 둘의 관계를 영원한 평행선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만들 것이다.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면 성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결혼 초기에는 여전히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성의 주도권을 남성이 잡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은 오히려 남성을 구속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임신과 변심의 불안에서 벗어난 여성은 이제 남성의 사랑과 능력을 성관계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더욱이 대중문화가 부추긴 성 상품화 현상은 안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여성은 성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쌓게 된다. 그리하여 성적 능력은 남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사랑이 배제된 성을 남성에게 허용함으로써 여성들을 괴롭혀왔던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결국에는 남성들에게도 억압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사랑과 성, 제자리는 어디일까
가장 자유로운 공간 이여야 할 사랑과 성,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까지 지나치게 신비화되어왔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물화되어왔다. 사랑과 성은 인간 사이의 가장 친밀한 만남이 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권력과 억압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극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무시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성의 권력관계는 대부분 누르는 자는 남성, 눌리는 자는 여성으로 도식화되어왔다. 사랑과 성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과 성의 제자리 찾기, 즉 사랑과 성을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장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마주보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재와 같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에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의 개혁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깨임과 실천이 없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어쩌면 기존의 사랑과 성의 신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쉬운 길이며 그렇게 순리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욕과 고통을 견뎌 내는 데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지 않는가. 그리고 지배와 소유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만약 우리가 영원히 그것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뭐가 그리 대수인가. 이러한 체념과 안일 속에서 우리의 사랑과 성은 갈수록 사고파는 물건처럼 되어가고 있다.
시장의 원리는 남녀간의 교환조건을 더욱 이해 타산적으로 정교 화시켜 이 시대의 왕자는 이제 공주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공주의 두뇌와 재산까지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 대신 왕자들은 점점 더 경쟁의 논리에 휘말려들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인격 따위는 서슴없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다. 혼인시장은 갈수록 물신숭배의 늪으로 빠져들어가, 혼수 때문에 아내를 때리는 지식인 남성들의 한심한 이야기들이 자주 화제에 오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이 웃돈을 얹어주어야 팔리는 불량품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교환된 남녀관계가 어떻게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사랑 타령은 집어치우고 원초적 본능이라는 성을 통해서 인간해방을 이루자는 소위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러면 과연 들어줄 만한 소리인가. 유감스럽게도 유사 이래 쾌락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치고 성관계에 내포된 남성우월주의를 인식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제 사랑과 성의 제자리 찾기는 사랑과 성을 실천하려는 남성과 여성 개개인의 구체적인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사랑과 성에 대한 숱한 신화와 미신을 과감히 깨뜨려나가는 용기 있는 젊은이로 살아야 한다.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숙명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을 구속하고 끝내는 남성까지도 비인간화시키는 성과 사랑의 언어를 새롭게 일궈나가야 한다.
거창하게 사랑과 성의 혁명을 운위할 필요도 없다. 각자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젊은이라면 그것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성의 주인은 두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과 성의 전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등한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사랑과 성은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며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로간에 인격적인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격적인 존중은 서로가 서로를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남성의 능력과 여성의 외모를 교환하는 식의 관계, 혹은 권력과 부를 교환하는 식의 관계는 시작부터 서로를 대상화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그 속에 빠져서 이성을 잃어야 하는 함정이어서도 곤란하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랑만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한 사람에게 소유되기 위하여 다른 모든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뜻이다.
여성에게도 사랑 성 결혼은 인생의 과정이어야 하며 더 이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자기를 확장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의 삶을 둘러싸고 잇는 사랑과 성의 신화에 당당하게 맞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남성도 자신을 도구적인 존재로만 몰아가는 문화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사랑의 본성을 자기희생이나 헌신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능력을 통하여 자신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사랑과 성은 이성과 감성의 통합, 정신과 육체의 조화 속에서 너와 내가 독립적인 존재면서 동시에 합일을 이룰 수 있는 열린 마당이어야 한다.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사랑과 성의 언어는 결국 둘의 관계를 영원한 평행선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