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있을 것이다. 이렇듯 피조물 자연세계를 넘어서 역사의 자리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진술한 것이 구속사 신학이다. 이스라엘은 역사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속에 개입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역사를 만들고 이끄시며, 또한 역사의 자리에 찾아 오셔서 이를 행하시는 분인 것을 안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역사를 회상함으로 과거를 신학적으로 현재화 시키고, 기다림을 통하여 미래를 종말론적으로 현재화 시켰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출애굽이라는 구원사건에 대한 고백이며,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새 창조의 사건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능력은 회상과 기다림이라는 순환적인 구조하에서 종말론적 역동성을 띄게된다.
3) 예수가 보여준 창조신앙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중심적 세계관이다.
예수에게서 자연피조물은 결코 인간과 맞대결하는 대칭적인 대상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의 자리에 동참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복을 함께 나누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예수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자연세계를 통해서 인간을 생각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고하며 사는 인간이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여기에서 서구적 사고의 특징인 분리와 분석적 사고가 동양적인 지혜적 사고인 통합적이며 통전적인 사고로, 또한 주객도식적 개체적 관계성은 교제와 사귐의 만남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창조신학적인 전승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이 단순히 인간이 마구 사용해도 좋은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피조물안에서 함께 사귐과 만남 그리고 나눔을 가져야 할 대상이라는 통전적 인식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주체자라고 여겨왔던 인간들이 자연세계의 고뇌와 신음에 대해서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곧 기독론적인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성의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지키고 보존하며 보호하시는 것이다. 이를 바울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종말론적으로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의 고난과 신음에 동참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피조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사랑이다. 곧 예수의 고난은 인간을 향한, 모든 연약한 자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모든 피조물의 고난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우주적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구속을 기다리기 때문이다(롬 8,19 이하).
맺는 말
필자는 본 논고를 생태학적 위기를 맞는 우리의 현 상황으로부터 시작했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다시금 확인 하는 것은 예수의 창조신학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큼 생태학적 현상의 극복에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세계 경험의 영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발견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현 세계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의 지혜와 영으로 피조물의 자리에 동행하시고, 역사의 주로서 고난받고 신음하는 피조물의 자리를 찾아 오셔서 새 창조를 이룩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은 예수를 통해 피조물 모두에게 우주론적 부성으로 다가온다. 거기에는 단순한 거룩과 세속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의 샬롬속에 모든 피조물이 동거하며 동락하기를 바라고 행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성이다. 이것을 예수는 그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삶의 자리에서 실천한 것이다. 곧 첫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에로의 창조에 대한 본래성을 되찾은 운동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인 궁극적 안식의 샬롬을 모든 피조물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죄용서와 축사, 그리고 모든 치유의 기적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그가 지으신 피조물들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초월적인 자리에만 가두어 놓는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경험적 자리(자연과 역사)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창조 신학적 이해는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를 신학적으로 극복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제라고 생각되어 진다.(각주는 원문{장신논단} (1992년 8 집)에 실려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가 보여준 창조신앙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중심적 세계관이다.
예수에게서 자연피조물은 결코 인간과 맞대결하는 대칭적인 대상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의 자리에 동참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복을 함께 나누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예수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자연세계를 통해서 인간을 생각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고하며 사는 인간이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여기에서 서구적 사고의 특징인 분리와 분석적 사고가 동양적인 지혜적 사고인 통합적이며 통전적인 사고로, 또한 주객도식적 개체적 관계성은 교제와 사귐의 만남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창조신학적인 전승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이 단순히 인간이 마구 사용해도 좋은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피조물안에서 함께 사귐과 만남 그리고 나눔을 가져야 할 대상이라는 통전적 인식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주체자라고 여겨왔던 인간들이 자연세계의 고뇌와 신음에 대해서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곧 기독론적인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성의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지키고 보존하며 보호하시는 것이다. 이를 바울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종말론적으로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의 고난과 신음에 동참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피조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사랑이다. 곧 예수의 고난은 인간을 향한, 모든 연약한 자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모든 피조물의 고난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우주적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구속을 기다리기 때문이다(롬 8,19 이하).
맺는 말
필자는 본 논고를 생태학적 위기를 맞는 우리의 현 상황으로부터 시작했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다시금 확인 하는 것은 예수의 창조신학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큼 생태학적 현상의 극복에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세계 경험의 영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발견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현 세계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의 지혜와 영으로 피조물의 자리에 동행하시고, 역사의 주로서 고난받고 신음하는 피조물의 자리를 찾아 오셔서 새 창조를 이룩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은 예수를 통해 피조물 모두에게 우주론적 부성으로 다가온다. 거기에는 단순한 거룩과 세속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의 샬롬속에 모든 피조물이 동거하며 동락하기를 바라고 행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성이다. 이것을 예수는 그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삶의 자리에서 실천한 것이다. 곧 첫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에로의 창조에 대한 본래성을 되찾은 운동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인 궁극적 안식의 샬롬을 모든 피조물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죄용서와 축사, 그리고 모든 치유의 기적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그가 지으신 피조물들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초월적인 자리에만 가두어 놓는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경험적 자리(자연과 역사)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창조 신학적 이해는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를 신학적으로 극복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제라고 생각되어 진다.(각주는 원문{장신논단} (1992년 8 집)에 실려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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