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스스로의 구약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을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키고자 한다.
성경의 재물관은 단순히 '십분의 일'이라는 비율의 문제나, 구약의 십일조제도를 현대에 어떻게 그럴듯하게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만큼 거두어서 필요한데 쓸 수 있을 것이냐?"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일은 우선적으로 교회 내에서 성도간의 교제와 구제를 위하여 쓰여져야 할 것이며 교회 밖의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도 쓰여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재물관(혹은 청지기관)은 구약의 십일조의 연구를 통하여서도 얻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과 저주의 도식이나 필요성의 원칙에 따라 무리하게 현대교회에 적용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성경의 재물관은 단순히 '십분의 일'이라는 비율의 문제나, 구약의 십일조제도를 현대에 어떻게 그럴듯하게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만큼 거두어서 필요한데 쓸 수 있을 것이냐?"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일은 우선적으로 교회 내에서 성도간의 교제와 구제를 위하여 쓰여져야 할 것이며 교회 밖의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도 쓰여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재물관(혹은 청지기관)은 구약의 십일조의 연구를 통하여서도 얻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과 저주의 도식이나 필요성의 원칙에 따라 무리하게 현대교회에 적용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