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내려와 우리에게 묵시적(默示的)인 언어로 그
향방을 가리켜 주고 있는 하나의 교회사적인 조명이다. 첫 시대에 대한 교회의 비평작업을
통해 교회는 타종교로부터 기독교의 성령론을 구분 지어냈다. 그리고 제 2의 성령운동
시대에 교회는 성령의 바람직한 은사관, 즉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하였다.
이제 교회는 도래하는 제 3의 성령운동에 대처한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온갖 범신론과
뉴에이지(New Age) 운동 그리고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의 혼탁한 혼합주의로부터
성령의 인격적 인도하심의 영역을 구별해 내야 할 때다.
앞에서 본 성령운동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성령론이 무속적이고 전래종교적
인 영성으로부터 점차 온건한 복음적 성격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성숙되어지는 신학적 비평의 결실로 인한 것이며 또한 교회사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
도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교회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신자
안에 실제적으로 내주(內住)하면서 친밀히 신자의 삶과 인격을 이끄시는 사역, 즉 '성령의
주(主)되심'(Lordship of Holy Spirit)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향방을 가리켜 주고 있는 하나의 교회사적인 조명이다. 첫 시대에 대한 교회의 비평작업을
통해 교회는 타종교로부터 기독교의 성령론을 구분 지어냈다. 그리고 제 2의 성령운동
시대에 교회는 성령의 바람직한 은사관, 즉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하였다.
이제 교회는 도래하는 제 3의 성령운동에 대처한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온갖 범신론과
뉴에이지(New Age) 운동 그리고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의 혼탁한 혼합주의로부터
성령의 인격적 인도하심의 영역을 구별해 내야 할 때다.
앞에서 본 성령운동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성령론이 무속적이고 전래종교적
인 영성으로부터 점차 온건한 복음적 성격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성숙되어지는 신학적 비평의 결실로 인한 것이며 또한 교회사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
도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교회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신자
안에 실제적으로 내주(內住)하면서 친밀히 신자의 삶과 인격을 이끄시는 사역, 즉 '성령의
주(主)되심'(Lordship of Holy Spirit)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