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유물론에 대한 논증
2. 어떤 종류의 이원론인가?
3. 반론들
4. 이러한 것은 부산현상론인가?
2. 어떤 종류의 이원론인가?
3. 반론들
4. 이러한 것은 부산현상론인가?
본문내용
에 의해 남기게 되는 자연 현상의 외형을 다시 요청해야 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유물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3장에서 논쟁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그것이 그렇지 않으면, 자연 현상의 외관이 전 세계의 이원론을 주는 것이다. 아마 물리적인 것과 현상론의 이중성이 더 거대한 일원론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아래에서 포함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물리적 일원론이 아닐 것이다라고 밝혀질지도 모른다.
3-3. 세 번째 반론은 Sealre(1992)의 제안이다. 의식이 단지 자연스럽게 비물리적인 것 위에 수반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좀비 복제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의식은 단지 두뇌 상태에 기인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좀비 세계는 단지 사람이 의식 없이 물리적 상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은 그것이 신체의 상태와 의식이 동일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논쟁을 오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정체성의 질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수반에 대한 것이 중대한 논쟁이다. 논쟁의 형태는 “사람은 의식 없이 물리적 상태의 P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은 물리적 상태의 P가 아니다” 논쟁의 형태는 더 있다 “사람은 견디고 있는 의식에 관해 사실 없이 유지하고 있는 모든 물리적 사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물리적 사실이 모든 사실을 다 써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오로지 다른 종류의 논쟁이다.
논리적 수반의 실패로부터 유물론의 실패를 끌어내는 단계에 대한 여러 반론들이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후험적 필연성”에 호소하는 반론이다. 예컨데, “상상 가능성”과 “진짜 가능성”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은 크립키의 예를 사용해서 물이 H2O가 아니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좀비는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일 그렇다면, 내 논증은 유물론을 구할 만큼 논증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크립키주의자들의 생각은 기껏해야 이 세계, 그리고 그와 관련된 특징들이 어떻게 적절하게 기술되어야 하는지를 말해 줄 뿐이다. 물리적으로 우리 세계와 동일하지만 우리 세계의 어떤 긍정적 사실을 결여한 상상 가능한 세계가 있다면, “의식"과 같은 개념들을 지시하는 것에 관한 어떤 생각도 세계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의 의미론을 간단히 잊어버릴 수 있고, 관련된 가능 세계가 명백히 어떤 것(우리가 그것을 ”의식“이라고 부르던 그렇지 않든 지간에)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수 있다.
4. 이러한 것은 부산현상론인가?
내가 옹호하고자 하는 이원론이 부산현상론이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 반론을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리적 세계가 인과적으로 닫혀 있고 의식이 물리적 사건들을 인과한다면, 의식은 물리적인 것에 논리적으로 수반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다면 단순한 의식의 자연적 수반은 의식이 부산 현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비록 그럴할지라도, 자연적 수반 논증은 충분히 받아들일만한다. 부산 현상론은 반직관적이고 그 대안들을 더하다. 의식의 문제로 돌아왔을 때, 모든 대안들은 안좋아 보인다. 자연적 수반이 참이라면 우리는 자연적 수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자연주의적 이원론을 위한 논증은 대략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제에서 추론된다.
1. 의식 경험이 존재한다.
2. 의식 경험은 물리적인 것에 논리적으로 수반하지 않는다.
3. 물리적 사실들에 논리적으로 수반하지 않는 현상들이 있다면, 유물론은 거짓이다.
4. 물리적 영역은 인과적으로 닫혀있다.
내 입장은 이러한 전제 모두를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의식은 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수반하지 않고서도 물리적인 것에 자연적으로 수반한다.”
유물론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이원론적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로 설명의 단순성, 귀납의 문제, 과학을 수호하려는 목적, 이원론이 가지는 불합리한 성격, 물리적인 것과 빗물리적인 것의 상화작용을 설명하는 문제, 의식의 진화문제등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는 내 입장에 대한 반론의 힘을 갖지 못한다. 내 입장은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의식이 물리적인 것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의 존재론적 함축을 가져오는 것이다.
3-3. 세 번째 반론은 Sealre(1992)의 제안이다. 의식이 단지 자연스럽게 비물리적인 것 위에 수반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좀비 복제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의식은 단지 두뇌 상태에 기인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좀비 세계는 단지 사람이 의식 없이 물리적 상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은 그것이 신체의 상태와 의식이 동일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논쟁을 오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정체성의 질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수반에 대한 것이 중대한 논쟁이다. 논쟁의 형태는 “사람은 의식 없이 물리적 상태의 P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은 물리적 상태의 P가 아니다” 논쟁의 형태는 더 있다 “사람은 견디고 있는 의식에 관해 사실 없이 유지하고 있는 모든 물리적 사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물리적 사실이 모든 사실을 다 써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오로지 다른 종류의 논쟁이다.
논리적 수반의 실패로부터 유물론의 실패를 끌어내는 단계에 대한 여러 반론들이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후험적 필연성”에 호소하는 반론이다. 예컨데, “상상 가능성”과 “진짜 가능성”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은 크립키의 예를 사용해서 물이 H2O가 아니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좀비는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일 그렇다면, 내 논증은 유물론을 구할 만큼 논증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크립키주의자들의 생각은 기껏해야 이 세계, 그리고 그와 관련된 특징들이 어떻게 적절하게 기술되어야 하는지를 말해 줄 뿐이다. 물리적으로 우리 세계와 동일하지만 우리 세계의 어떤 긍정적 사실을 결여한 상상 가능한 세계가 있다면, “의식"과 같은 개념들을 지시하는 것에 관한 어떤 생각도 세계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의 의미론을 간단히 잊어버릴 수 있고, 관련된 가능 세계가 명백히 어떤 것(우리가 그것을 ”의식“이라고 부르던 그렇지 않든 지간에)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수 있다.
4. 이러한 것은 부산현상론인가?
내가 옹호하고자 하는 이원론이 부산현상론이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 반론을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리적 세계가 인과적으로 닫혀 있고 의식이 물리적 사건들을 인과한다면, 의식은 물리적인 것에 논리적으로 수반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다면 단순한 의식의 자연적 수반은 의식이 부산 현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비록 그럴할지라도, 자연적 수반 논증은 충분히 받아들일만한다. 부산 현상론은 반직관적이고 그 대안들을 더하다. 의식의 문제로 돌아왔을 때, 모든 대안들은 안좋아 보인다. 자연적 수반이 참이라면 우리는 자연적 수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자연주의적 이원론을 위한 논증은 대략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제에서 추론된다.
1. 의식 경험이 존재한다.
2. 의식 경험은 물리적인 것에 논리적으로 수반하지 않는다.
3. 물리적 사실들에 논리적으로 수반하지 않는 현상들이 있다면, 유물론은 거짓이다.
4. 물리적 영역은 인과적으로 닫혀있다.
내 입장은 이러한 전제 모두를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의식은 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수반하지 않고서도 물리적인 것에 자연적으로 수반한다.”
유물론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이원론적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로 설명의 단순성, 귀납의 문제, 과학을 수호하려는 목적, 이원론이 가지는 불합리한 성격, 물리적인 것과 빗물리적인 것의 상화작용을 설명하는 문제, 의식의 진화문제등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는 내 입장에 대한 반론의 힘을 갖지 못한다. 내 입장은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의식이 물리적인 것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의 존재론적 함축을 가져오는 것이다.